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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의 시(詩), 가재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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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외면받고 있다. 사람들은 시 읽기를 게을리하고 방치한다. 어느 시인(詩人)은 "시는 이미 죽었어요"며, 사실상 시에 자조적인 종언을 고했다. 왜 사람들은 시를 읽지 않는가. 그것은 더 이상 시가 현실과 어울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의 패러다임는 '속도와의 전쟁'을 요구한다. 우리는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세계 각지의 다양한 문화를 망라하여 본다. 우리는 1초에 30여개의 영상들이 폭풍우처럼 들이닥치는 영화의 속도를 따라간다. 우리는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유행성 상품에 처지지않고 대응한다. 이 엄청난 '속도전'에 외려 시인들은 현실과의 '타협'을 거부한 채 지극히 개인적인 시를 썼다. 나르시즘적인 개인의 과도한 욕구, 관습적인 고독과 허무, 추상과 관념으로 얼룩진 시어(詩語)들을, 속도와 유행에 민감한 도시인들은 감당할 수 없던 것이다. 현실은 쉴새없이 변화하는데 시인은 변화하길 거부했으니, 당연히 시가 죽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시의 위기는 단순히 시인의 위기가 아니라 인류의 위기라고", 한 김용택 시인의 말을 나는 전적으로 긍정한다. 시는 때론 증오와 슬픔을, 분노와 절망을 어둡게 표현하지만, 그 근본의 자리에는 사랑이 위치하고 있다. 사랑이 없다면 시는 쓸 수 없는 것이라서 도덕과 인간성이 파탄난 사회에서 시의 사랑은 절실한 것이다. 시의 위기는 인간사(人間事)의 위기다. 그리하여 독자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없이 과도하게 내면적인 시작(詩作)을 하는 시인이 문제다. 하지만 조잡하기 이를 데 없는 싸구려 '글귀'에 빠져 정작 진정한 사랑을 외면하는 무지몽매한 독자도 책임에서 피해갈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문태준 시인의 출현은, 김주연 선생의 말대로 "시의 새로운 쇄신'으로서 반갑다. 문태준이 '2005년 미당문학상'의 당선자로 선정되자 문단은 술렁거렸다. 인맥과 경력을 중시하는 문단의 정서상 젊은 시인의 수상은 적지않은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어느 원로시인은 문태준의 수상을 가리켜 "새로운 시인의 도래"라고 하였는데, 문단 역시 새로운 시인의 출현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관념적인 언어의 유희나 추상적인 이념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기존의 시인과 문태준는 무관하다. 문태준의 시는 일상적이고 투박하며, 변화하고 움직여서 현실의 궤적을 추격한다. 그의 시는 현실이고, 현실적인 그의 시는 날카롭고도 모호하다. 현실적인 그의 시는 그러나 구체적으로 현실을 얘기하지 않는다. 모호하고도 상징적인 시어로서 사물을 친절하게 설명하기보다 문태준은 독자를 그 모호함 속으로 끌어들인다. 좋은 시는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고 한다. 문태준의 시들이 그러하다.
그 중에서 <가재미>는 단연 돋보이는 것으로 동료 작가들로부터 최고로 꼽힌 시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을 지켜보는 남자가 삶과 죽음을 가재미로서 얘기하는, 슬픈 시다. 삶을 피해갈 수 없는 남자는 죽음 앞에 선 여자에게 무력하다. 어류인 가재미는 한쪽 몸이 하얗고 다른 한쪽 몸이 검은데, 가재미의 두 눈은 검은 쪽을 향해있어서 여자는 죽음이외의 세상을 볼 수 없다. 남자는 하얀 쪽을 보며 여자의 파랑 같은 날들을 떠올리지만 하는 수 없다. 그는 다만 죽음 옆에 누워 다른 한 마리의 가재미가 되어줄 뿐이다.
가재미는 전 연안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어류다. 그러나 그것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흔치않다. 문단의 파란, 문태준이 말하는 죽음은 그런 것이지 않을까. 그럼 파란의 시 <가재미>를 읽어보자.
<가재미>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
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 같은 날
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
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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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tan@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