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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아티스트의 창시자 백남준
72세,서거
2006년 02월 07일 (화) 00:00:00 이수연 기자 seyyi@naver.com

3년 전 미국 유학 시절, 첫 학기 멀티 미디어학과에서의 필름 Film 수업시간이었다.

내 나이 또래의 젊은 비디오 아티스트였던 미국 교수와 미국 학생들 속에서 동양인은 나 혼자.

낯선 땅, 내음, 다른 수업 분위기에다 비디오 수업 또한 내게 생소한 미디어였기 때문에 나는 더욱 긴장되고 조심스러웠었다. 처음 수업시간  비디오 아트의 역사로 수업의 첫 단추를 채울 때, 백 남준 아티스트의 이름 석자는 내 작아진 마음에 매우 큰 힘이 되었었다. 2시간 동안에 걸친 백 남준에 대한 소개와 그의 비디오 작업 그리고 그의 미국 제자들의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나은 백남준의 세계적 위상을 다시 절감하였다. 한국인으로서의 자랑스러웠으며 비디오 아트를 공부하는 학도로서 존경심을 금할 수 없었다.

 

백남준은 비디오 아티스트의 아버지, 창시자, 조물주. 이 모든 호화로운 수식어들이 세계 아티스틀의 입을 통해 전해지며 정의되고 있다. 40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는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아트는 과거형 현재형 미래형은 없다. 라는 미술의 영원성에 대해 이야기 한 피카소의 명언이 떠올랐다. 포스트 모던 예술의 특징 중 순간성을 대표하는 매체인 비디오 아트에서 백남준의 작업은 영원의 순간성으로서 해석된다.

 

뉴욕 타임즈는 백 남준, 73, 서거: 문화적 장벽을 무너뜨린 비디오 아티스트의 선구자 라는 타이틀로 그의 죽음을 매우 아쉬워하며 그에 대한 기사를 특집으로 실었다. 그의 행적, 예술 작품들, 그리고 그와의 인터뷰들은 60, 70년대의 문화의 커다란 변화의 흐름을 이해하는 척도가 되기 때문에 단지 비디오 아티스트로서의 위상 뿐 아니라 포스트 모더니스트의 선두자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백남준는 주로 해외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자료와 관심은 한국보다 외국에서 더욱 크다. 때때로 한국에서는 그에 대한 작품의 평가가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지 않나라는 의구심을 갖는 이들도 있지만, 그렇게 단정하기 전에 한국인으로서 그의 작품을 통해 외국인이 미처 관찰하지 못한 점을 발견해 동양의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남을 수 있도록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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