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밀려와 네온사인이
거리를 조잡하게 비출 때 밤하늘에 걸려있는 십자가의 수를 헤아리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파트 고층에서 사는 나는 내 방 창문을 통해 선혈하게 빛나는 무수한 십자가들을 보면 어쩐지 그것이 정말 피 같아 종종 섬뜩하다. 그럴 때마다 기독교 사회라고 불리는 미국에서조차 한국에 있는 교회를 보면 당황한다고, 한 미국에서 유학 중인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한국에는 너무 많은 교회가 있다.
교회가 많다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십자가에 목 박혀 죽은 예수가 부활하여 신(神)이 되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그의 가르침은 일관되게 '사랑'이었다. 교회가 많다는 건,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사랑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고, 그런 세상은 사랑으로서 결국 윤리적인 사회일 터이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에는 이 윤리가 부재돼 있으므로 많은 교회는 문제가 된다. 어느 맹렬한 기독교 신자는 "기독교는 하느님이 만든 종교이기 때문에 윤리적 책임없다고"말한다. 즉 기독교는 '사람이 만든 종교'가 아니기 때문에 '사람으로 구성된 사회 윤리'를 지킬 책임이 없다는 얘기다. 아마 대부분의 기독교 신자들은 직·간접적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언제 예수가 그렇게 가르치던가. 기독교 신자들의 그런 생각은 예수의 가르침과 전혀 관계가 없는 데다 오히려 예수를 정면으로 배반하는 행위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 하여 미국의 비정한 총알에 이라크의 연약한 아이들이 쓰러져갈 때, 한 기독교 목사는 인공기를 태우며 미국의 침략을 찬양하고 있었다. 그 목사는 동남아를 집어삼킨 쓰나미를 '예수의 심판'이라며 그를 추종하는 신도 앞에서 열렬한 설교를 하기도 했다.
예수라면 과연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그런 행동을 했을까? 예수가 과연 무참하게 살육되는 아이들을
보며 나의 심판이요 나의 의지라고 얘기했을가? 기독교 신자라면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야하는데, 이 당연한 것을 기독교인들은 이상하게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입으로 부르짖으나 정작 예수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지 않는다. 예수는 생전 몸으로 실천하는 혁명가였다.
예수가 당시 유대교의 다른 종교 지도자들과 많은 공통점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행동하는 모습에서 그들과 극명하게 갈렸다. 그리하여 훗날 그는 '나사렛 유대인 왕'이 되었던 것이리라. 예수가 많은 지지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배경에도 그의 급진적인 성향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크로산 저서의 『역사적 예수＿지중해 지역의 한 유대인 농민』에서 예수는 지중해 지역의 한 혁명적 유대인 농민으로 표현되고 있고, 이 역사적 예수는 지배세력의 도덕 파탄과 이에 대한 투쟁을 점화시켰던 인물로 묘사되기도 한다. 예수가 설파하던 "신의 통치"란 지상의 삶을 떠난 초월적 세계(천국)만을 뜻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는 팔레스타인을 착취하고 학살한 로마 제국을 보며 불같이 분노했고, 힘없는 농민들의 저항 운동에 무관심했던 성전의 제사자들과 학자들을 거침없이 비난했다. 다른 지도자들과 달리 예수는 당대의 정치적 부패와 사회적 타락을 방관하지 않았다.
『마태복음』제 25장 제 35절 이하에서 나와있듯이 그가 선포한 신의 왕국은 '가난한 자들'을 위한 나라였다. 여기서 예수는 스스로를 가난한 사람들과 동일시하였고, 가난한 예수는 '가진 자'의 폭압과 충돌하였다. 예수는 당대의 사회·정치 권력구조에 대항하였고, 그의 비판은 언제나 '집단적'인 대상을 표적하였다.
지금 한국 교회는 예수가 비판한 그 '집단적인 대상'이 되고 있다. 기독교의 십자가 아래 살고있는 그들은 십자가 바깥의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오로지 예수을 찬양하고, 다른 종교인과의 결혼을 불가하고, 온갖 비리를 저지른 정치인도 기독교인이라면 옹호하고 감싸준다. 그들이 추종하는 '예수'는 내가 아는 예수와 너무 달라 혼란스럽다. 내가 생각하는 예수는 다른 종교의 신들도 사랑으로써 감싸주고, 타종교인과의 결혼을 사랑으로써 축복해주며, 정치인의 윤리 파탄에 극렬하게 분노했을 터이다. 쓰나미를 기독교의 심판으로 설교한 그 목사는 정치인들과 유착하여 부(富)를 확장하였는데 예수라면 분명 그를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에는 정말 무수한 교회가 있다. 그 중에서 그 목사는 가장 많은 신도를 거느린 사람이라고 한다.
p.s
이 글은 임철규 저서의 <눈의 역사 눈의 미학>과 류상태 저서의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를 참고하였습니다. 그 구별은 확실치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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