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것 좀 봐요.”

  집사람의 말에 모두가 시선으로 그쪽으로 향하였다. 널따란 들녘아 온통 꽃으로 덮여져 있었다. 그 것도 아주 고운 주홍빛으로 치장한 홍연들이니, 더욱 돋보인다. 초록의 널따란 이파리들과 잘 어울려 피어 있었다. 꽃들의 손짓에 달리고 있는 차를 세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동차를 멈추고 꽃들 앞에서 섰다.

  안내판에는 자세한 내용이 나와 있었다. 전라남도 나주시 공산면 동촌리 1039 - 번지로서 공산 우습제(牛拾堤)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소소리 방죽이라고 불리었다는 연방죽은 소들 방목지로 널리 이용되었다고 한다. 말뚝을 박을 때마다 가물치가 잡힐 정도로 물고기가 많았다고 한다. 우습제를 보면서 과거를 생각하게 된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풍요로움을 선물하는 방죽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물은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연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안내판에도 예전에는 연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주변 환경이 달라진 것이다. 물론 현재의 모습도 내일에는 분명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어제가 있기에 오늘이 있고 또 내일도 다가온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보다는 어제를 내일보다는 과거에 더욱 더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오늘은 진행 중이니,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 그리고 내일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일이니, 실감을 가질 수 없다. 반면에 과거의 일은 체험한 일이니, 생동감이 넘칠 뿐만 아니라 아쉬움으로 더욱 절실해지는 것이다.

  온 몸에 접착되어버렸기에 안타까움이 커지고 그 것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살아가는데 있어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늘의 일은 잘못되었다고 판단이 되면 수정할 수가 있다. 내일의 일은 얼마든지 그 시작부터 고쳐나갈 수가 있다. 그러나 과거의 일은 돌이킬 수가 없다.

  엎질러진 물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 접착성으로 인해 잊어버릴 수가 없다. 과거의 일은 이미 현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느끼기에는 더욱 더 생생하여 떨쳐버리기가 어렵다. 어리석음의 극치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미래의 일이 아직 다가오지 않은 허상인 것처럼 비록 직접 체험한 일이기는 하지만, 과거의 일도 허상인 것은 분명하다.

  허상을 허상으로 직시할 때 지혜를 얻을 수 있다. 허상을 실상으로 여기고 그 것에 집착하고 그 것으로 야기된 상처와 문제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면, 그 것은 더욱 더 큰 고통을 수반하게 된다. 과거의 일로 인해 일어나는 모든 아픔과 통증은 모두 다 집착에서 일어나는 것들이다. 그 것의 해결책은 간단한다. 그냘 내버려두면 된다.

  과거를 내버려두는 것은 집착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를 버린다고 하여 버려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 체험을 통해 의식에 박혔으니, 잊어지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버린다는 것은 말뿐이라는 뜻이다. 과거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버려두는 것이 옳은 것이다.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은 마음을 과거에 두지 않고 오늘에 중점을 준다는 말이다.

  마음을 과거에 두지 않고 현재나 내일에 중점을 두게 되면 과거는 자연스럽게 내버려두게 되는 것이다. 과거는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그 것이 아무리 큰 고통을 야기하는 아픔 일이라 할지라도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무심한 마음으로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바람에 흩날리고 있는 홍연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과거를 바라볼 수 있게 되면 마음은 편안해진다. 그 어떤 흔들림도 있을 수 없다. 편안하고 느긋해질 수 있다.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면 세상을 관조할 수 있게 되고 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집착만을 놓아버리게 되면 만사형통이 되는 것이다.

  바탕스란 ‘텅 비운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비운다는 것은 지우개로 과거를 모두 지워버린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람의 의식에서 과거를 지워버리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더욱 더 큰 문제다. 치매이기 때문이다. 비운다는 것은 내버려둔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를 비우고 그 자리에 내일을 채우면 활기찬 삶이 될 수 있을 것이다.<春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