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 곱다.”

  우뚝하다. 이파리는 하나도 없다. 뭉툭한 꽃대가 하나 높이 솟았다. 그리고 그 끝에 양 옆으로 커다란 꽃 두 송이가 활짝 피어났다. 꽃의 색깔은 온통 붉은 빛이다. 불타오르는 느낌을 받는다. 완전히 피어난 꽃의 한 가운데에는 노란색의 암술이 마음을 잡아끈다.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이다. 시나브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하루도 빼지 않고 내리고 있던 비가 지쳤는지, 잠깐 멈추고 있다. 무거운 구름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어서 언제 다시 내릴 것인지 예측하기 어렵다. 더위를 몰아내주어서 고맙기는 하지만, 이제는 지루하다. 몸도 마음도 함께 축 늘어져버린다. 자연의 위대한 힘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힘을 낼 수가 없다.

  가라앉은 기분에 다가서는 꽃의 향기는 힘을 불어넣어준다. 온몸이 물에 잠겨 있는데 꽃의 힘으로 한쪽 끝에서부터 활기를 되찾아가는 느낌이다. 그만큼 꽃의 위력은 대단하였다. 처음에는 의식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한번 보고 두 번 보게 되니, 달라진다. 자꾸만 시선이 그쪽으로 향해지고 싱그러운 기분으로 바뀌게 된다.

  비로 인해 우울해져 있었을 때의 기분은 무기력하였었다.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정체되어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모두가 회색빛이다. 색깔이라고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꽃을 통해 싱그러워진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완전히 달라진다.

  보이는 것마다 힘이 넘쳐나고 있다. 회색빛은 힘을 잃고 물러나고 총천연색의 올 칼로의 세상이 나를 감싸버린다. 색깔을 통해 힘을 낼 수 있었다. 흑백의 세상과 칼라의 세상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상이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상황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 것인지를 확연하게 알 수 있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삶의 목적을 생각하게 된다. 무엇으로 살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의식적인 사고의 결과가 아니라 흑백의 세상과 칼라의 세상이 다름을 깨달음으로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의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게 되면 인생은 무미건조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목적을 분명하게 하고 살아간다면 달라질 것이란 생각에서다.

  삶의 목적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것들의 공통점을 추출하면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태어나는 순간부터 숙명적으로 전진하게 되어 있다. 어쩔 수 없이 걸어가야 하는 길이라면 목적의식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달리는 것이 현명한 일이 아닌가. 삶의 주인으로서 주도적인 도전정신을 가진다면 행복한 삶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걸어가는 데에는 필연적으로 가로 막고 있는 장애가 있다. 언덕도 있을 것이고 냇물이나 강이 있을 수 있다. 어디 그 뿐인가. 발을 푹푹 빠지는 진흙의 수렁도 있을 수 있고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거친 눈보라와 비바람도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앞으로 전진 하는 데, 이들이 방해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재미있게도 해준다.

  아무런 장애가 없이 평탄한 길을 걸어간다고 생각해보자. 얼마나 재미없고 심심하겠는가. 어제가 오늘이고 내일 또한 오늘 같을 것이란 생각이 단조로움의 매너리즘에 빠지게 할 것이 분명하다. 그 것은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기쁨을 느낄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 삶에서는 아무런 행복도 느낄 수 없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장애가 있기에 스릴이 있고 위험을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삶의 활기를 만끽할 수 있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더 중요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장애를 넘어서는 순간에는 고통도 있고 참아내기 힘든 역경도 있지만 그 것을 넘어선 뒤에 맞는 기쁨은 이루 말로는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성취감이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산의 꼭대기에 오르기까지는 숨이 차고 땀으로 범벅이 되지만 정성에 서서 맞는 바람의 시원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신이 된다. 그 때의 느낌은 행복으로 직결이 되고 그런 체험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인생은 풍요로워지고 행복으로 넘치게 된다.

  활짝 피어난 꽃은 그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꽃을 피워낼 때까지의 과정이 그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워내기 위하여 소쩍새가 밤새 울었다고 노래한 시구처럼 행복은 다른 사람이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아무리 크고 우뚝한 것이라도 스스로 성취하지 않은 것은 의미가 없다.

  삶의 목적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그런 과정을 통해서 시련을 극복해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넘어야 고개가 높고 험해야 얻을 수 있는 행복도 커진다. 낮은 고개를 넘으면 그만큼 작은 크기에 만족해야 한다. 시련은 분명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 꽃은 그 것을 모두 극복하였기에 화려하고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가을을 꽃처럼 아름답게 채워가고 싶다.<春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