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자, 그리고 또 웃자  개그맨 조정현의 다시 시작하는 유쾌한 라이프스타일

 사람들을 웃게 하는 재주를 가진 개그맨이라는 업은 어쩌면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직업일지도 모르겠다. 괴롭고 힘든 상황에서도 무대에만 오르면 방금 전까지의 상황들은 잊은 채, 오로지 관객들을 웃게 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개그에 몰입하는 힘을 보여줘야 하지 않던가. 사람들의 근심과 걱정을 잠시라도 웃음으로 덜어주는 대신, 자신의 치부도 웃음으로 승화해야 하는 멋진 승부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던 개그맨 조정현. 그러나 그에게 잠시 시련이 찾아왔었다.
그가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뉴스가 전해졌던 1999년, 갑작스레 찾아온 불행으로 TV브라운관을 떠났고, 조금씩 비상하기 위한 준비를 아주 천천히 하며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가 내뿜고 있는 에너지는 여전히 밝고 기운 찬 것이어서 앞으로의 이야기에 더욱 큰 기대감을 품게 했다.

드디어 그와 만나다

한 시대를 풍미한 개그맨이었다는 수식이 조정현에게는 어색하지 않다. 그런 그에게 시련이 찾아오고 난 후에는 한동안 언론에의 노출을 피하기도 했는데, 이제 건강은 물론 열의를 쏟고 있는 사업도 많은 호전이 되었고 새로운 도약을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인터뷰 자리에 응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무조건 반갑다. 그의 개그를 보며 당시 청년이었던 나는 웃었고, 그로 인해 인생에 좌절하는 대신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곤 했으니까 말이다.
그가 사고처럼 갑자기 브라운관에서 사라지고, 많은 팬들은 그가 다시 돌아오리라 생각하며 기다렸고 시간은 어느덧 그로부터 14년이 흘러있었다.

이제 그가 걸어온 길을 차근차근 따라가며, 어제의 그를 만나고 오늘의 그를 응원하고, 내일의 그를 기대해보려 한다.

조정현은 어린 시절부터 개그맨에 대한 꿈을 품어왔다. 회상해 보면, 광주 충장중학교 시절부터 봄소풍마다 오락부장을 맡으면서 자신의 끼를 발산하곤 했다. 그의 열정적인 주도 하에 많은 친구들의 신나는 웃음 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렇게 흥겨운 오락 시간을 보내다 보면 마쳐야 할 시간이 아쉽기만 했다고. 이후 대동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자신의 끼를 좀더 펼쳐보고자 안양예고로의 전학을 감행했다.
그것이 그의 인생에 있어 첫 번째 전환점이 된 사건이었다고 말한다. 자연스럽게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하고, 개그맨의 꿈을 이루기 위해 TBC 1기 개그콘테스트에 참가하게 되는데. 여기서 동상을 수상하며 그야말로 혜성 같은 등장으로 연예계에 입문하게 된 것이다.
1984년 MBC 방송연기상 TV 신인상을 수상하며 <일요일 밤에 대행진>, <웃으면 복이 와요> 등의 인기 프로그램에서 간판 얼굴로 자리 잡아갔다.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함과 동시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개그 스타일로 대중에게 깊게 각인되어갔다. 그를 이야기하면서 빼 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바로 당시 인기의 척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유행어이다. 대표적으로 ‘어쩔 수가 없어~’, ‘사모님 제비 한 마리 키우시죠’ 등의 유행어가 히트되었는데, 조정현의 감칠맛 나는 표정과 연기와 함께 이 대사를 듣고 있노라면, 유쾌한 웃음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 초등학교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그의 유행어를 따라 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으며, 고된 일상에 지친 직장인들도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했었다. 그의 인기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재미난 추억일 테다.
뿐만 아니라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 대중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하던 코미디 프로그램이 가진 힘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때문에 조정현에게 코미디 프로그램은 여전히 꿈이고, 희망이고, 젊은 날 그를 지탱해주던 버팀목 같은 것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으리라.

또 한번의 성장을 말하다

사실 그의 개그맨으로서의 인생은, 한마디로 승승장구였다. 물론 남을 웃겨야 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테고, 개그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일도 다반사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함께 호흡하는 대중과의 만남이 즐거웠고, 힘든 세상에 웃음을 전하는 일에 대한 직업적 자부심 또한 컸다고.
하지만 그는 단순히 인기에 연연하지만은 않았다. 궂은 일도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았던 성격을 가졌다. 이 같은 성품의 그는 1986년부터 1995년까지 10여 년 동안 MBC코미디언 총무와 실장을 역임하며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모범적인 선배 개그맨의 표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93년 대전엑스포 당시 자원봉사 단장으로 임명되면서 백일 가량 봉사를 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들을 강구하기 시작했다고.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그는 젊은 시절부터 나눔을 실천하며 소외된 이웃에게 사랑을 전파하고, 마음을 보듬기 위해 항상 애써왔는데 그것의 구체적인 계획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셈이었다.

그는 이내 쑥스러운 듯, 봉사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풀어놓았다.
“사실 도움을 드리고자 시작한 일이지만, 그렇게 봉사를 하고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다 보면 오히려 제가 더 큰 배움을 얻게 되지요. 주어진 그 시간에 마음을 다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나면, 성취감 또한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예요. 그것이 제게 행복감을 안겨주었으며, 그것이 원동력이 되어 다시 제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 다니게 했습니다.”
다시 시간을 거슬러 1995년.
대구도시가스 폭발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도 그는 기꺼이 자원봉사활동을 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대구광역시장 감사패’를 수상하며 고향인 광주인 그는 영호남 지역을 가로지르며 지역화합을 위한 가교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같은 해, 지금도 안타깝고 가슴 아픈 사건으로 기억되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한 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뛰쳐나가 구조와 자원 봉사에 적극 나서게 되었다고. 오히려 더 많은 이들을 구할 수 없어서 안타까웠고, 여전히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고 말한다. 조정현은 이를 통해 ‘한국연예협회 특별상’을 수상하며 사람들에게 봉사를 실천하는 개그맨으로 깊은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항상 주변과 주변의 어려운 이들을 먼저 돌보던 그에게 1999년 여름, 예기치 못한 시련이 찾아오게 된다. 코미디 계 동료 및 선후배들은 물론 그의 팬들에게도 안타까움을 자아내며, 그의 안위를 걱정했다. 바로 뇌출혈로 쓰러지게 된 사건이었는데, 장시간의 수술 끝에 목숨을 구했지만 3개월간의 입원, 이후로도 후유증으로 인한 오랜 재활 치료 등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 했던 시련의 시간이었다.

1999년 이후의 인생은 나에게 선물

그에게 찾아온 후유증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후 피눈물 나는 노력과 기적이 더해져 장애 2급 판정을 받기는 했지만 지금은 말을 하는데 조금의 지장을 받을 뿐이라고 한다.
지금도 떠올리면 고통스러운 기억이겠지만, 천천히 그간의 심정에 대하여 풀어놓기 시작했다.
“뇌출혈로 쓰러진 지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당시에는 참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지요.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것은 말할 수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감당하기 버거웠던 것은 제가 장애인이 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쓰러지기 전과 후의 삶이 너무 달라졌지요. 인정하는 일이 쉽지 않았어요. 한참 방송에서 무한질주로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말 한마디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니 얼마나 상실감이 컸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슴 아프고 답답해서 사실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물론 지금은 이 정도의 건강을 남겨주신 하느님께 감사 드리는 마음입니다. 기도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렇게 병상에 누워 지내야만 했던 시절, 몸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말도 뜻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정신은 온통 방송국에 쏠려 있었다고 한다. 마치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면 거짓말처럼 훌훌 털고 일어나 방송국으로 향할 것 같았단다. 당장이라도 방송국에서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대본을 쓰고, 녹화에 참여하게 될 것 같았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잠들기 전까지 대본을 썼다 지웠다 반복하는 날들이 계속 되었어요. 병상에서 개그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고 깊은 곳에서 뭔가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아 힘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지만, 이렇게 마음 먹기까지 참 오래 걸렸어요. 요즘은 가끔씩 후배들의 연기를 보며 모니터링도 해주곤 하지요. 직접 연기할 수 없지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 또한 뜻 깊은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시련을 겪고, 회복 기간을 거친 이후 그의 봉사활동 영역은 더욱 넓어졌다. 특히나 장애인 봉사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이들이 진정으로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한다. 누구보다 그들의 아픔과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을 가깝게 느낀 바, 실질적인 후원자가 되고 싶었던 마음이 크단다.
“제 도움이 조금이나마 장애인 여러분들에게 힘과 희망의 촛불을 밝힐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힘 닿는 데까지 도울 생각입니다.”
이 같은 맥락에서 2001년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모임’의 회장에 취임,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3년 ‘장애인의 날’을 맞아 이명박 서울시장으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
장애가 그의 봉사활동에 결코 장애가 되지는 못했다. 한 예로, 태안기름유출 사건 당시에는 현장을 직접 찾아 봉사활동을 펼쳤다고 한다.
심지어 실의에 빠진 태안 주민들에게 이렇게 말해 감동을 자아냈다는 후문.
“내가 너무 늦게 왔어요. 다음에 봉사활동이 있으면 첫 번째로 갈 겁니다.”
뿐만 아니라 매년 그가 운영하고 있는 ‘정현탑웨딩홀’에서 김흥국, 김정열, 황기순, 김상호 등 동료 연예인들과 함께 지역 어르신들을 초청, ‘효 나눔 잔치’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현재 그의 상태는 조금씩 더 호전이 되고 있다. 오른손의 거동이 조금씩 편해지는 것도, 말을 하는 것 역시 예전보다는 수월해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심지어 인터뷰 도중, 천천히 대답을 하는데 무심결에 굉장히 정확한 발음으로 말을 하기도 해, 그도 기자도 깜짝 놀라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분명 긍정적인 마음과 늘 도전을 멈추지 않는 그의 패기로 인해 앞으로는 더욱 상태가 좋아질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대중과 다시 만나게 되는 날도 머지 않았음을 예감해 본다. 
 
‘정현탑웨딩홀’ 대림역 랜드마크로 자리잡아
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