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단체들이 근대군사문화유산 지키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 군예대 건축물. 제주도 모슬포에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근대군사문화유산 지키기 운동이 지역사회에서 활발히 펼치고 있어 주목된다.
제주도 내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한 근대군사문화유산 지키기 운동은 2003년 서귀포시가 6·25전쟁 당시 육군 제1훈련소 군예대 건물을 도시계획에 포함시키면서 시작됐다.
대정역사문화연구회와 대정역사문화 해설사회, 대정읍 재향군인회 등 3개 민간단체는 최근 도시계획도로 개설사업으로 철거 위기에 놓인 ‘군예대 건물’을 보존해 줄 것을 지난달 8일 제주도청에 청원하는 등 소중한 문화유산 지키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철거 위기에 놓인 이 건물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창설된 종군연예인 공연단인 군예대(軍藝隊) 탄생지로 소중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특히 국내 유명 작곡가와 연예인 등 160여 명이 전선으로 투입될 훈련병의 정신전력 강화를 위해 위문공연과 군가를 보급하는 데 앞장섰던 곳이다.
또 강병신문을 회당 1만2000부씩 발행, 전선으로 투입될 장병들에게 새로운 소식을 전하며 사기를 증진시키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 밖에 제주도를 상징하는 대표적 노래인 ‘삼다도 소식’도 이곳에서 탄생했으며, 이 노래를 히트시킨 가수 황금심이 직접 거처했던 곳으로 더 유명하다.
1910년대 지어진 군예대 건물은 근대식 2층 목조 건축물로 판자벽이 가로로 붙여졌으며 기둥이나 보 등이 나무로 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근대 군사 유적지 도로개설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4일 서귀포시 관계자 이주성(도시건축과) 씨는 “대정읍 하모리 도시계획도로 확장사업은 2003년부터 사업비 65억 원을 들여 400m 구간의 도로 폭을 10m에서 25m로 확장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도로 확장사업은 지난해 12월부터 협의 매수된 건물 철거작업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군예대 건물은 현재 집 소유주 명의로 상속등기가 돼 있지 않아 원만한 보상협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소유주는 시청에서 땅과 건물을 매입해 달라고 요청하지만 수개월째 친족 두세 명의 반대로 상속등기가 미뤄지고 있다.
읍이나 관공서에서 이의 제기가 없고, 현재 문화재로 등록돼 있지 않기 때문에 상속등기만 완료되면 협의 매수해 철거하겠다는 것이 시 당국의 입장이다.도로 확장사업 구간의 철거 대상 가옥은 총 30여 채. 대부분 30~40년 된 건물로 10여 채는 이미 철거 중이거나 철거를 완료했고, 20여 채만 남은 상태다.군예대 건물은 100여 년 전 가옥으로 제주도에서도 희귀 건축물이다.
2층 목조 건물이 상당히 훼손됐고 붕괴 위험도 있지만 보존가치가 있는 것으로 지역 민간단체들은 평가하고 있다.한 지역신문은 사설을 통해 “이 목조 건물은 1910년대 지어진 것으로 이미 건축역사가 100년을 헤아리고 있다. 제주도에 이만한 근대 건축물이 희소했던 점을 감안하면 군예대 건물은 제주지방의 근대 건축사적 의미가 크기 때문에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JIBS(제주 SBS) 방송은 지난 6월 25일 ‘6·25 59주년’ 특집으로 “군예대가 6·25전쟁 전적지로서 보호가치가 있지만 행정이 앞장서서 보호가치가 있는 유적을 허물고 있다”며 시 당국을 비난했다.2002년 문화재위원들의 근대문화유산 조사 보고서에서도 “이 건물은 장래 지역 근대사를 나타내는 좋은 유산”이라고 평가했다.
양상호(건축학 교수) 탐라대 부설 산업기술연구소장은 “군예대 건물은 어느 정도 훼손됐으나 복원·보수가 가능해 행정적인 보호조치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지역 내 시민사회단체들은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로 행정구역이 변경돼 남제주군이 서귀포시로 흡수 통합되면서 당시 남제주군에서 추진하던 사업들이 원활하게 이관되지 않아 이런 불상사가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신하(72) 대정역사문화연구회장은 “문화재로서 충분히 보존가치가 있는 건축물인데 행정 당국이 손을 놓은 채 수수방관하고 있다”면서 “직선으로 돼 있는 도로계획을 수정하면 소중한 우리의 군사 유산인 군예대 건물을 살릴 수 있다”고 열변을 토했다.
한편 모슬포 육군 제1훈련소는 6·25전쟁 당시 북한군에 밀려 퇴각하던 정부가 1951년 1월 21일 육군 제1훈련소를 설치하면서 장병을 육성했다. 이곳에서는 제주도 인구와 맞먹는 50만여 명의 장병이 훈련받고 전선으로 배치됐다. 1955년 12월 13일 해체됐으며 현재 훈련소 정문 기둥과 지휘소·막사·의무대 건물 등 일부만 남아 있다.
webmaster@ikorea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