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 개나리가 피었네.”

  집사람의 호들갑에 눈길을 돌리니, 노란 개나리꽃이 쏙 들어온다. 경상북도 경주의 오릉에 심어져 있는 개나리들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이상 난동으로 인해 꽃들이 착각을 한 것이 분명하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으니, 봄이라 생각하고 조급한 마음을 참아내지 못한 결과이리라.

  꽃을 바라보면서 착잡한 심정이 된다. 예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한편으로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개나리는 봄에 피어야 제격이다. 봄을 기다리고 있는 마음을 충족시켜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겨울에 피어난 꽃은 봄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모두 알기에 힘을 줄 수가 없다.

  소한 추위라고 하였던가. 대한을 앞두고 피어난 개나리꽃은 다른 사람을 위하여 피어난 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 것은 순전히 자신만을 위하여 피어내고 있을 뿐이다. 성급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결과이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렇게 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위하여 피어나게 되면 그 것은 이타심이다. 자신을 위하는 마음이 앞서 있다면 그 것은 이기심이다. 한 겨울에 피어난 개나리꽃에서 ‘곱다’라는 생각이 줄어드는 이유일 것이다. 물론 있어야 할 그 곳에서 그 때를 맞추어서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 그렇지 못하면 실망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기심과 이타심.

  己와 他의 차이다. 글자 한자의 차이지만 그 간격은 실로 엄청나다. 하고자 하는 욕심의 방향이 다를 뿐이지만, 그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보다도 더 크다. 이기심은 욕심의 방향이 안으로 향해 있고 이타심은 그 욕심의 방향이 밖으로 향하고 있을 뿐이다. 미세한 차이처럼 보이지만 절대로 작은 차이가 아니다.

  이기심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다. 반대로 이타심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환영과 함께 협조를 받게 된다. 한 겨울에 피어난 개나리꽃은 이기심의 결과임으로 결코 그 결과가 좋지 않다. 그 결말을 지켜볼 필요조자 느끼지 못한다. 겨울 삭풍이 짧게 스쳐 지나가기만 하여도 꽃을 시들어버릴 것이 분명하다.

  노란 개나리 꽃 옆에는 우람한 소나무가 서 있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소나무의 자태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기심은 보이지 않고 넉넉한 가슴으로 그 자리에 서 있다. 소나무는 그 자체로서 이타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촐랑대며 피어난 개나리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개나리와 소나무는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지만 배어나는 향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애쓰고 있는 개나리꽃에서는 초라함이 넘쳐나고 있지만, 소나무는 그렇지 못하다. 자신의 욕구를 채우지 않고 모두를 위하여 오지랖 넓은 마음으로 지키고 있는 소나무에서는 그윽한 향이 배어나고 있다.

  노란 개나리꽃을 바라보면서 내 안을 들여다본다. 욕심으로 그득 차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는 소나무를 올려다본다. 살아온 과거보다는 살아갈 미래가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여유 넘치는 소나무를 바라보면서 앞으로 소나무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은은한 향이 배어날 수 있는 그런 삶을.<春城>

* 사진은 경북 경주 오릉에서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