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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독립운동가 선정 및 전시회 개최
2017년 05월 30일 (화) 20:51:49 박훈영 기자 phy3623@ikoreanews.com

 독립기념관(관장 윤주경)은 개관3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장덕준을 2017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다음과 같이 개최한다.

기간 : 2017. 6. 1. ~ 6. 30. (한 달간)
장소 :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제5·6관 통로)
내용 : 장덕준 관련 사진 11점

장덕준은 1892년 6월 황해도 재령군 북률면 나무리 빈농 집안에서 태어났다. 동아일보 창간 당시 주필이자 후에 정치가로 활동하는 장덕수가 그의 동생이다. 장덕준은 명신중학교에 진학하여 1911년 졸업하였으며 그후 모교 교사로 2년 간 봉직하였다.

1915년에는 일본 유학을 떠나 세이소쿠(正則)예비학교에서 공부하였다. 동시에 재동경조선인유학생 학우회 평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유학생들이 발행한 잡지인 ‘학지광(學之光)’에 기고하기도 하였다. 그는 이 시기 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와 같은 자유주의 지식인과 교류하였으며, 귀국 후 신문을 발행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3·1운동 이후 장덕준은 동아일보 창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20년 4월 동아일보 창간 당시 장덕준은 논설반원과 통신부장, 조사부3장을 겸하였다. 그는 1920년 4월 2일부터 4월 13일까지 ‘조선소요에 대한 일본여론을 비평함’이라는 논설을 써서 3·1운동을 왜곡한 일본여론을 비판하였다.

장덕준은 지병인 폐결핵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동아일보 기자 생활을 계속해나갔다. 특히 1920년 여름에는 동아시아를 방문하는 미국의원단을 취재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특파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안창호와 함께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인 포터를 만나 한국의 실정을 설명하였고, 의원단장인 스몰을 인터뷰해 기사로 실었다.

한편 같은 해 10월, 간도에서는 청산리대첩에서 독립군에 패한 일본군이 그 보복으로 한국동포를 무차별 학살한 간도참변이 일어났다. 당시 장덕준은 폐결핵으로 혈담을 토하는 상태였지만 간도참변 취재를 위해 혈혈단신 만주로 떠났으며 그곳에서 곧 실종되고 말았다. 당시 나이 29세였다.

장덕준이 실종된 지 10년이 지난 1930년 4월 1일 동아일보는 그를 기리는 추도식을 거행하였다. 이 자리에서 한 기자는 “의에 대한 용기, 봉공(奉公)의 정신, 이 두 가지 귀한 교훈을 우리에게 끼친 데 대해서 나는 씨를 과거의 모든 의인보다도 별달리 사모코저 하는 것이다”고 추모했다. 정부는 그의 공을 기리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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