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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출된 '‘익산문화재' 익산품으로 촉구
2022년 10월 23일 (일) 17:31:02 이상훈 leesh10000@hanmail.net
   
 
     
 

고백도시 익산, 유출된 '‘익산문화재' 익산품으로 촉구
익산독립운동기념사업회, 오는 6일 시민 포럼 개최

익산 독립운동기념사업회(상임대표 : 황성근)은 오는 6일 오후 2시부터 국민생활관 소강당에서 ‘유츌된 문화유산 되찾기’ 범 시민 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포럼은 지역의 귀중한 문화유산들이 외지로 유출되는 것을 막고 유출된 문화유산들을 되찾기 위한 시발점이 되고 마련되었다.

시민대토론회는 좌장으로 황성근 대표, 전주대 주명준 명예교수의 주제발표, 최무용 건국대 명예교수, 진형섭 익산시 의정회 이사장 등이 참석하였다. 
 
이번 토론회는 한 개인이 유출시킨 4,663점의 귀중한 문화유산들을 되찾아 오기 위한 방안모색과 시민운동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익산은 고대 마한시대의 금마를 일컬어 다른 이름으로 기준성이라 부른다. 금마에는 여러개의 성이 있었다. 지금도 그 유적이 남아전한다. 그리하여 그동안 익산시와 원광대학교 박물관,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서 지속적으로 금마지역의 문화유산 발굴에 힘을 기울여 왔다.
 
금마에는 중요한 성으로 익산토성, 미륵산성, 금마도토성, 학현산성이 있다. 익산토성은  사적 제92호이며 오금산성·보덕성이라고도 한다. 오금산의 능선을 따라 축조한 토석혼축의 포곡식 산성으로서 둘레는 690m이다. 

 미륵산성과 금마도토성은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미륵산성은 미륵산의 두 봉우리와 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포곡식 산성이다. 여기서 일찍이 무문토기 편 등의 청동기 유물이 발견되었다. 

조선시대의 여러 책들은 이 성을 기준으로 앃아져 기준성이라 적고 있다. 1990년에서 2006년까지 발굴 조사한 결과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와 원광대박물관에서 미륵산성은 마한시대나 백제시대가 아니고 통일신라시대에 처음으로 쌓은 성으로 확인되었다. 

금마가 기준에 의하여 마한의 도읍지가 된 것을 확실하게 알려주는 유적이 바로 금마의 미륵산성 즉 󰡐기준성󰡑 때문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미륵산석성 기록되어 있다. 둘레는 686보가 넘으며 안에 샘이 14가 있는데 겨울이나 여름에도 마르지 아니하며 군창(軍倉)이 있다.『세종실록지리지』 전라도, 익산군 라고 쓰여있다.  

 익산에 기준성이 있다는 사실을 일찌기 『동국통감』이 밝히고 있다.
 조선왕 준이 위만의 난리를 피해 바다에 떠 남쪽으로 와 나라를 열고 마한이라 하였는데 백제 온조가 마침내 이를 병합하였다. 지금 익주(益州)에 옛 성이 있고 사람들이 기준성이라 하니 마한이 백제가 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익산의 역사는 중국 사서「삼국지」와 우리나라「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등의 문헌에 잘 나타나 있다. 기록에 따르면 BC.194년 고조선 준왕의 남천 이후 마한의 건마국, 백제무왕의 천도지 금마저, 고구려 안승의 보덕국 등 4번의 도읍을 지낸 대한민국 유일의 지역이며,대한제국 국호“韓”의 태동과‘韓문화’의 발상지로 장구한 한민족 역사를 관통하는『이천년역사고도』임을 증명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익산은 고대 마한시대을 이어오면서 유서 깊은 곳이다.

금마를 사랑한 상산(常山) 송상규(宋祥圭) 교장
 익산 중학교에서 평생을 봉직하고 교장으로 정년한 고 송상규(1929-1998) 선생은 누구보다 금마를 사랑한 인물로 󰡐마한의 후예󰡑 혹은 󰡐백제의 후예󰡑이다. 그는 왕궁면 용화리 용화산 자락에서 출생하여 전북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한 후 익산중학교 국어과 교사로 재직하던 중 역사교사로 과목을 바꾸고 금마의 마한시대유물을 연구, 조사하고 그리고 스스로 수습하기도 하면서 주민들로부터 문화재를 끊임없이 사들기도 하였다. 

그는 수집한 익산지역의 유물을 익산중학교 2층 향토문화관에 전시하여 학생들과 주민들이 관람하게 하였다. 

 송상규 선생은 1960년대에 󰡐익산고적보존회를 설립하여 금마지역의 고적에 관한 관심을 제고하였다, 1973년에는 전북지방문화재 전문위원을 지냈고 1984년에는 󰡐익산고적보존회󰡑를 창립하여 초대 회장에 취임하였다. 1991년에는 익산문화원을 개설하여 초대 원장을 맡을 정도로 익산문화의 지킴이었다. 

  그는 금마와 왕궁지역 일대에서 출토되는 토기, 도자기, 기와, 청동거울 등과 서적, 고미술품 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은 유물을 소유하였고 그 값어치는 수억원을 상회하였다. 

익산 지역 인사들은 송상규 선생의 열정과 인품에 매료되어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던 마한, 백제시대의  골동품들을 혹은 팔거나 기증하였다. 

이렇게 수집되고 보관 되었던 유뮬이 현재는 익산지역이 아닌 청주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과 송호정 교수에 의하여 그 대학 박물관에 기증하게 되었다. 

황성근 상임대표는 “익산은 삼한의 대표 고장으로 마한의 중심 지역이였다.”이라며 “이번 포럼이 익산 문화의 귀중함을 알리고자 한다.” 며 “익산의 귀중한 문화유산 4,663점을 되찾아 오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한다.

 익산문화재는 익산에 돌아와야 한다는 시민들의 염원을 헤아려서 이미 정주교원대학교 박물관에 기증 되었지만 다시금 깊이 생각하여 학교와 상의하여 아버지가 남긴 익산의 유물을 다시금 익산으로 되돌리는 훌륭한 결정을 해 주기를 소망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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