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기 광주교대 교수. 미국피츠버그대학 객원교수

	대부분 미국 사람들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으로 가는 길은 강 반대편 둑에서 공사를 해오는 사람을 무시한 채 이쪽에서 일방적으로 쌓아가는 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불확실하고 짜증스런 일로 여긴다.

그는 브라운 대학 입학사정관으로 일 하던 때 단순히 대학에서 능력 발휘를 할 수 있는 지원자를 가려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건을 항상 염두에 둬야만 해서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것이다.

즉, 인기 대학스포츠 선수, 동문 자녀, 교수 자녀, 당장 큰 돈을 내는 가족의 지원자 뿐 아니라 그럴 잠재력이 있는 가정의 지원자를 위한 자리를 아주 많이 비워둬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젊고 열정적인 입학사정관은 자기 일에 대해 냉소적이 되고 좌절하기 쉽다는 것. 이러한 ‘특수 학생’들은 낙방한 수많은 학생들보다 제반 실력이 훨씬 못하다는 것이다. 대학 입학이 학생들의 자질보다는 전략을 세워야만 승리하는 게임처럼 되는 것은 큰 문제라는 지적인 것이다.


학생의 자질보다 전략을 세워야 승리하는 게임 논란

필자는 몇 년 전 세계 여러 나라 명문대학의 신입생 선발기준을 비교해 보고 싶어 자료를 수집했는데 미국 명문대학은 구체적인 기준은 대외비라며 일절 자료를 내주지 않았다. 당시 필자와 함께 피츠버그 대학에서 연구하던 하버드대학 출신 한 교수는 “미국 명문대학들은 아마 CIA가 달라고 해도 그런 자료는 내놓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 스탠포드대 체스터 핀 교수는 미국의 대학입학 선발제도를 고등학교에서 대학으로 건너가는 ‘다리 쌓기’에 비유한다.(Chronicle of Higher education, 2006년 3월 10일) 대부분 미국 사람들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으로 가는 길은 강 반대편 둑에서 공사를 해오는 사람을 무시한 채 이쪽에서 일방적으로 쌓아가는 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불확실하고 짜증스런 일로 여긴다는 것이다.

어찌됐든 강을 건널 안정적인 지름길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가지각색의 방법으로 그 강을 건너려 하고 일부는 중도에 포기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오늘날의 혼란스럽기까지 한 미국 대학 신입생 선발 과정을 엄청난 공적·사적비용 뿐 아니라 시간과 인력 낭비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미국의 대학 입학 제도가 송두리째 문제 덩어리라고 할 수는 없다. 신입생의 3분의 2 가량은 각 대학의 다양한 입학허가 기준에 따라 자율적으로 의미있게 선발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대학의 입학사정관들은 부모의 배경이 입학여부를 결정하는 '잘 알려지지 않은 다른 기준'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미국 명문 사립대학들도 한국의 서울대처럼 지역 안배를 하고 있다. 가능한 한 다양한 지역의 학생들이 대학에 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약간 실력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한 번도 들어온 적이 없는 고등학교의 학생이 지원할 경우 합격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어느 특정분야에서 아주 두각을 나타낼 경우, 그 하나만 가지고도 명문대학에서 뽑기도 한다. 모든 다른 부분은 별 볼일이 없는데 고등학생 수준에서는 거의 어려운 어떤 특정 분야 논문을 써냈거나 재능이 뛰어난 것으로 판단되면 그 잠재 가능성에 따라 입학사정관들은 그 학생을 추천하고, 대학 입시처에서는 회의를 거쳐 받아들이기도 한다.


앞문을 좁히고 뒷문을 넓혀간다면…

이미 잘 알려진대로 미국 대학이 학생 선발 자율권을 가지고 있지만 공개적으로 기부금 입학제도를 시행하거나 아니면 고교등급제라는 것을 시행하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케스키는 대학이 솔직하게 그러한 부분을 밝히고, 합리적인 수준에서 공개적으로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최근 우리나라 수시 입학 전형에서 같은 반에서 공부를 훨씬 잘 하던 학생은 실패하고 훨씬 못 미치던 학생은 오히려 합격하는 사례가 적지 않게 일어나면서 몇몇 대학에 의심의 눈초리가 모아지기도 했다. 자율성이 너무 없다는 대학들의 주장과 달리 입학선발기준이 대학별로 사뭇 달라서 학생과 학부모의 처지에서는 뭐가 뭔지 알기 어렵다는 불만도 터져 나온다. 최근에는 대학입학 전문 컨설턴트까지 등장했다.

만일 미국 대학처럼 우리나라 대학들도 다양성을 통해 선발한다는 명분만을 앞세워 앞문을 좁히고 뒷문을 점차 넓혀간다면 어느 순간, 중산층 이하 저소득층 가정의 교육열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사회 전반적인 교육열 냉각은 그래서 나라의 인적자원의 질을 걱정케 할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할 수 있다.

필자가 볼 때 아랫목은 타들어갈 정도로 교육열이 뜨겁지만 윗목은 얼어붙고 있는 많은 나라와 달리 그래도 우리의 대학입학 선발제도는 온방이 고루 따뜻하도록 유지돼왔다. 그것이 가능토록 한 연료는 부모나 가정의 배경이 당락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최대한 막아온 대학입학제도, 대학 입학 선발기준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토록 한 선발 제도였다.


“소외계층 껴안지 못할 때 그 사회는 파국 맞게 될 것”

최근 들어 여러 가지 이유로 온방 덥히기 방식 대학 입학 선발제도 기반이 위협받고 있다. 이미 교육열 냉각 계층이 점증하고 있음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우리 국민은 다른 국민에 비해 공평성 기준에 민감하며, 고등교육 기회가 한 학생의 앞날에 끼치는 영향력을 돌이켜 볼 때 이에 민감한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대학은 고등학교와의 긴밀한 논의를 통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오는 학생들이 꼭 갖추어야 할 능력을 명확히 하고, 그 능력이 대학 이전의 학교교육을 통해 꾸준히 길러질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교육열을 유지하는 순수연료에 약간만 불순물이 섞여도 교육열이 급속히 냉각되거나, 아니면 사회적으로 강한 소용돌이가 일게 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대학의 학생선발권 논쟁이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소외계층을 껴안지 못할 때 그 사회는 파국을 맞게 될 것’이라는 프랑스 석학 자크 아탈리의 경고를 우리사회는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대학 입학선발제도는 고등학교에서 대학으로 건너가는 다리다. 대학은 고등학교와의 긴밀한 논의를 통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오는 학생들이 꼭 갖추어야 할 능력을 명확히 하고, 그 능력이 대학 이전의 학교교육을 통해 꾸준히 길러질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이러한 논의를 진행할 때 일부 명문대와 인기 학과로 건너는 다리만 초만원인 상황임을 감안하여 초점을 체증이 심한 다리들에 맞추어야 한다. 미국도 4000여 개의 다양한 대학 중에서 학생들의 입학 경쟁이 치열한 대학은 200개 남짓에 불과하다고 한다. 경쟁이 심한 다리들에 대한 합리적 기준과 방향을 만들되 초중등교육과의 관련성이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


교육열 뜨거운 학부모 집단 학교제도 안으로 끌어들여야

다음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녀교육에 대한 정서, 해외 유학이 갈수록 개방되는 세계화 흐름 등 큰 배경을 도외시 할 수 없다. 현행 대학입학제도나 고교평준화 등 교육 정책에 대한 불만 세력 가운데는 현행 제도로는 충족시킬 수 없는 교육욕구를 가진 집단이 분명히 있다.

자녀를 이른 바 좋은 고등학교에 보내고 싶고, 필요하다면 많은 교육비를 지불할 의사도 있는데, 자녀가 특목고나 자사고 등에 합격할만한 실력은 되지 못하는 학부모 집단이 그들이다. 이들의 교육수요를 지금처럼 사교육기관에 의존하거나 해외로 흘러가도록 할 것인지, 아니면 학교제도 안에 받아들일 방안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 대학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도록 하려면 대학 자체의 노력이 우선이겠으나 우리 사회의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대학에 대해 질 높은 졸업생을 내놓으라고 요구만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이를테면 기업체들이 세계적 대학 만들기 운동에 앞장설 때가 되었다.

최근 ‘3불정책’에 관한 논쟁이 동시다발적으로 나오면서 사회적 이슈화 한 이유는 대학들이 안고 있는 저마다의 어려움도 한 몫을 한 것일 테지만 더 큰 이유는 다른 나라와 달리 대학 입학에서 부모의 사회적 배경(재력가, 권력가, 대학교직원 자녀, 동문 자녀, 이사회 자녀 등)이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없도록 막고 있는 데 대해 힘 있는 소수의 목소리가 더 증폭되어 발현된 결과라고 느낀다.

힘 있는 소수의 큰 목청에 맞대응을 반복하는 것보다는 온 국민의 관심사인 대학입시제도에 대해 국민 대토론회라도 열 시점이 되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교육 수준이 높고 깨어있는 우리 국민들의 마음과 지혜를 모으면 서로가 이해하고 인내하며 수긍할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해낼 수 있지 않겠는가.

※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 : 현재 미국 피츠버그대 대학원에서 세계 고등교육의 핫이슈를 비교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박사과정 강의를 맡고 있다. 교육혁신위원회 전문위원이며, 교육청 평가위원, 전세계비교교육학회연합회 부회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