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한국교육단체총연합회가 전국의 교사 137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절반이 넘는 54.6%가 본고사를 허용해야 한다고 답해 눈길을 끌었다.
본고사는 대학이 별도의 시험을 치러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다. 본고사는 목적이 선발에 있기 때문에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어려운 문제를 낸다. 과거 본고사의 경우 합격자의 점수가 채 50점도 넘지 않을 정도로 고난이도 문제를 출제하곤 했다. 당연히 학교 교육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로 구성됐다.
이로 인해 1981년 이전 본고사가 폐지되기 이전과 본고사가 잠시 부활했을 때 고교교육과정은 파행적으로 운영됐고, 사교육은 확산됐다. 고등학교는 영수학관이라고 불렸으며, 과외비는 천정부지로 뛰었다.
본고사 때는 폐지하라! 본고사 금지때는 허용하라?
1980년 과열과외대책 연구에 따르면 당시 도시근로자 가구 평균소득은 월 24만원인데 고교생의 연평균 과외비가 20만원에 달했다. 당시 언론은 "고교생의 연평균 과외비가 20만원에 서울대 신입생의 60%가 과외 경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자녀의 교육기회가 부모의 빈부에 의하여 결정되고 있음을 입증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본고사가 치러지면 대학이 내는 문제에 따라 고등학교 교육이 좌우되고, 명문대학 진학을 위해 학생들은 사교육 시장을 찾아 헤맬 수밖에 없다. 현재 학교 교육과정에서 남들보다 앞서나가기 위해 학원을 다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1995년 5·31 교육개혁안을 마련하는데 참여했던 김신일 교육부총리가 "국영수 중심의 본고사 대신 학생부 중심의 대입제도 운영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쳐온 대입제도의 일관된 원칙"이며, 정권이 바뀌어도 본고사를 포함한 대입 3원칙은 지켜나갈 것이라고 자신하는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김 부총리의 확신을 뒷받침 하는 통계는 또 있다. 지난 9일 교총의 설문조사 결과와 달리 막상 본고사로 중등교육이 파행화 될 경우 교사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본고사가 치러지던 1996년 교총이 전국교사 175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77.6%가 국영수 위주의 본고사를 금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대학별 입시 본고사가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화와 자율성을 크게 침해했다는 반증이다.
교사들이 나서 교육의 자율성을 침범해 달라?
최근 한 시민단체는 조선, 중앙, 동아일보 등 보수언론들이 공교육 정상화 3원칙을 '정부규제' 대 '규제철폐'의 구도로 보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소위 '3불 정책'을 다룬 기사에서 '강제', '규제', '금지', '간섭', '왜곡', '강요', '획일적인 평준화' 등의 부정적인 용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했다는 지적은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이들 보수언론이 사용하는 단어는 사태를 객관적으로 분석 보도한다기 보다 신문사의 입장을 독자들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말이다. '3불'의 '불(不)'이 갖는 부정적 이미지로 사안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을 흐리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대학입시를 놓고 수십년 전 우리와 비슷한 논란이 벌어졌다.
당시 이들이 내린 결론은 대학의 자율권이 소중한 것처럼 중고등학교의 자율권도 소중하다는 것이었다. 중고등학교가 나서서 대학과 여론을 압박해 자율권을 지켰다. 학생에 대한 평가는 가르친 스승이 가장 정확하게 할 수 있으니 대학은 이를 토대로 선발하라는 주장이었다.
지금도 미국과 유럽의 대학은 고등학교에서 평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학생을 선발하지 본고사처럼 별도의 시험을 치르지 않는다. 과거의 소중한 경험을 수십년이 지났어도 잊지않고 지키는 것이다.
과거의 경험, 즉 역사가 자산이 될 수 있는 것은 이를 토대로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행착오의 값비싼 경험이 잊혀질 때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애써 자리 잡아가는 중등교육이 다시 파행화되는 악순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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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un121212@daum.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