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4 일 10:58
 
 기사/사진검색
> 뉴스 > 여성/문화
     
마티스와 야수주의
2006년 02월 11일 (토) 00:00:00 이승환 기자 ssstan@naver.com

마티스가 주도했던 야수파의 특별전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다. 생각보다 귀한 작품들이 많아서 시간 나면 한 번 가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현대미술에 관한 사전 지식이 전무하다면 웬만해선 관련 서적을 일독해야 할 것이다. 과거의 회화와 달리 현대예술은 '이론'없인 감상이 불가능한 인문학적 영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도르노의 말처럼 현대예술은 해석에 의존하고 철학과 상보관계에 놓여있다. 현대예술을 보고 "아무것도 모르겠어"라고 투덜대는 건 스스로가 무식하다고 자인하는 꼴이다.

현대회화는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화가의 직관에 의해 완성된다. 이성적인 것이 배제되므로 무의식도 개입한다. 화가는 자신의 직관을 살찌우기 위해 이론적 연구를 하고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기도 한다. 현대예술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건 화가의 독특한 이론과 체험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리라. 야수주의도 마찬가지다.

야수주의란 말은 1905년 미술비평가 루이 복셀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당시 그는 "샬롱 도톤" 전에 갔다가 알베르 마르케의 조각이 원색의 그림들에 의해 둘러싸인 것을 보고 "야수들에게 둘러싸인 도나텔로"라고 비꼬았다. 인상파와 마찬가지로 "야수파"의 어원도 다소 조소의 의미로서 씌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야수파는 현대회화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면서 훗날 칸딘스키로 위시되는 추상회화의 자양분이 된다. 과거의 회화와 궤를 달리하면서 마침내 전통회화를 구축한 것이다.

그전까지 회화는 대상에 대한 모사를 추구하였다. 하여 그림을 통해 이야기 혹은 상징적인 무엇을 담아냈다. 반면 현대예술은 사물의 모방을 포기하고 회화 자체의 독립된 세계에 주목한다. 가령, 여기 사과가 있다고 하자. 고전주의 화가는 대상의 위치와 질감과 색 등에 집중하여 사과와 최대한 "똑같이" 그려야만 했다. 회화의 재료(물감, 붓, 화폭 등등)는 대상을 묘사하기 위한 소품으로 씌였다. 하지만 현대회화는 더 이상 모방하기를 그친다. 사과를 그리되 굳이 똑같이 그리지 않는다. 회화의 재료들은 회화 자체를 표현하는 데 쓰이고 그리하여 대상과 그림은 불일치하게 된다. 미술관에 가본 적이 있다면 "대체 무엇을 그렸는지 모르겠는" 작품들을 한 번쯤 보았을 게다.

야수파 역시 모방의 중압감으로부터 회화를 독립시킨다. 야수주의라고 짐짓 험악한 그림을 떠올린다면 큰 오산이다. 물론 야수파 화가들이 거칠고 강렬한 필치를 선호하긴 했지만 그것은 "색의 해방"을 추구한 것이지 야만스러움을 표출하려 헀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색(色)은 대상에 구애받지 않는 진정한 "색의 유희"였다.

야수파의 대표주자는 단연 앙리 마티스다. 그는 고생의 원시성에 근거한 장식적인 색면을 더욱 발전시켰고, 색체의 "물질성"을 강조함으로써 야수주의의 존재를 알렸다. 인상주의에게 "빛"은 공간의 환영이었지만 그에게 빛이란 색체의 자식이었다. "빛은 공간의 환영물이 아니라 색의 창조물이다." 미술관의 벽에 그의 명언이 씌어 있었다.

사진의 <모자를 쓴 여인>은 그의 대표작으로 유명하다. 그녀를 표현해낸 색체들을 보라. 그야말로 "불협화음"이다. 여자의 얼굴에는 이른바 살색은 정작 외면된 채 전혀 관계없는 녹색, 하늘색 등이 뒤덮혀있다. 더군다나 그 색들의 배경도 버젓이 칠해져있다. 그러나 무정형하게 배치된 색체들은 마침내 모사에 대한 책무에서 해방되었음을 통보한다. 동료 화가인 모리스 드니는 이 작품을 보고 "고통스러울 만큼 현란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은가?

소재와 관심은 주변 사정에 따라 바뀌었지만 그는 "색의 가능성"만큼은 일관되게 매달렸다. 말년에는 특이하게도 색종이로써 그림을 그렸는데, <크리스마스 이브>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별, 나뭇잎, 시냇물 등 원초적인 형태가 강렬한 원색과 어우러져 크리스마스를 독특하게 그려냈다. "색은 단순할수록 내면에 더 강렬하게 작용한다". <크리스마스 이브>는 그의 견해를 유감없이 증명해준 작품이다.

마티스에게 색은 제 "자신"을 드러내는 고해의 공간이기도 한데, 이는 현대회화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전통회화는 주체(화가)와 객체(대상)의 위치가 뚜렷했지만 현대회화에선 이와같은 이분법이 기각된다. 대상은 장식적인 것일 뿐, 결국 그것을 통해 화가의 내면이 표현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주체(화가)가 객체(대상)을 그림으로써 다시 주체를 표현한다는 것. 마티스의 색체 또한 결국 그의 심적인 상태를 표출한 것이다.

마티스는 "색의 양이 아닌 선택과 조화"라고 주장한 적이 있는데 그의 그림이 무자비하게 색칠해진 것이 아니라 실제로 철저하게 계획과 의도 대로 씌었던 것이다. 그는 일곱 가지의 음조가 음악의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듯이 소수의 색체만으로 회화를 완성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대다수 작품들은 언뜻 화려해보이나 기실 많은 색들이 씌이지 않았다.

"예술은 숭고한 무엇이거나 도덕적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니다. 마티스는 예술이란 단순한 "유희의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즐겁거나 혹은 그렇지 않거나" 언제가 한 기자가 "당신의 그림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한 것인가"물었더니, 그가 한 대답이었다. 말그대로 예술은 즐겁거나 혹은 그렇지 않을 뿐, 그것에 지고한 가치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그는 꺼려했다. 예술은 유희를 추구해야 한다. 마티스는 예술의 즐거움을 색으로서 구현하려 했던 것이다.

이승환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회사소개  |  회사연혁  |  제휴안내  |  광고문의  |  불편신고  |  회원약관  |  저작권정책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1가 216-2 | [발행/편집인 朴勳映]
TEL:02.6397-6001  | FAX:02-6396-6001   | 등록일자2006년1/18
보도자료: phyy3623@naver.com| 기사제보: phy3623@ikoreanews.com, 010-8957-3998
웹하드: koreanews/ikn1472
Copyright   2003-2005 일간코리아뉴스(서울 아 00166). all right reserved. mail to webmaster@ikore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