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27일 오후. 나는 시공을 뛰어넘어 80년 5월 18일 계엄령 속에 광주시민이 폭도와 반란군이란 이름으로 사살되는 광주에 있었네.

전남도청이 시민군의 피로 물든 현장에 있었네. 비록 영화 속이었지만 그 속에서 나는 울고 있었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졌어도 관객들은 그냥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었네. “화려한 휴가”는 광주진압 계엄군의 작전암호라네.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젖은 손수건을 꽉 쥐 채 영화가 끝난 스크린을 바라보는 텅 빈 머리 속에 남은 것은 부끄러움이었네. 그냥 살아 있는 게 부끄럽다는 것이었지. 살아 있는 게 내 탓이 아닌데도 그냥 부끄러웠네.

“화려한 휴가”를 봤네. 5·18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네. 정권을 장악하려는 정치군인의 비열이 선명하게 들어나더군. 광주시민을 피의 제물로 정권을 잡아 보겠다는 전두환의 동물적 욕망이 그대로 배어 나왔네.

‘영화는 사실의 절반도 표현하지 못했다’는 5·18 체험자의 증언은 내가 영화를 보면서 눈물로 손수건을 흠뻑 적신 것 보다 얼마나 더 잔인하고 처참했단 말인가.

문득 인간이 잔인해 질 수 있는 최대치는 어디까진가. 인간과 동물의 한계는 무엇인가. 영화를 보면서 내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던 의문의 결론은 결국 인간은 두 얼굴을 가진 괴물이라는 것이었네.

아직 발포명령자가 밝혀지지 않았네. 하지만 당시 군부를 장악하고 있던 전두환이나 노태우를 비롯한 군 지휘부에게 “화려한 휴가”를 보여 준다면 뭐라고 할 것인가. 무슨 변명을 할 것인가.

늘 그랬듯이 상황논리를 펼 것인가. 당시 발표했던 것처럼 빨갱이가 배후에서 조정을 해서 국가의 위기상황이었다 할 것인가. 그래서 군은 당연히 폭도들을 소탕해야 할 의무를 다 했다고 할 것인가.

“저기 철조망 넘어 총을 든 폭도들이 서성거리고 있다”고 역사적 오보기사를 쓴 조선일보 김대중에게 “화려한 휴가”를 보여 준다면 지금쯤은 가슴이 저릴까.

광주시민들의 응어리가 조금은 풀릴 수 있도록 언론은 공개사과를 할 수 없을까. 이런 바보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화려한 휴가’를 보면서 절절했던 느껴진 광주시민들의 고통 때문이라네.

박 군.

우리는 1960년 자유당독재 타도를 위해 궐기했던 4·19혁명을 함께 겪었지.

버스와 소방차에 매달려 을지로 입구와 광화문 경찰무기고 앞, 그리고 동대문 경찰서, 성북경찰서, 소공동경남극장 옆 506특무대 앞을 달리며 경찰이 난사한 총탄에 맞아 낙엽처럼 떨어지던 젊은이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네.

“화려한 휴가”에서 버스에 탄 시민들에게 무차별 총을 난사하는 계엄군의 모습과 4·19당시의 학생들에게 총을 쏘는 경찰들의 모습은 왜 그리도 닮았는지. 4·19발포명령의 책임자인 최인규는 “총은 쏘라고 준 것이다.”라고 했네. 그래서 경찰은 쏘았을 것이네.

5·18민주항쟁에서도 계엄군은 분명히 명령에 따라 총을 쏘았겠지. 명령 없이 병사가 마음대로 총을 쏠 수가 없네. 그런데도 발포명령자는 없다네. 귀신이 명령을 내렸나.

영화를 보며 훌쩍이는 젊은이 모습에서 ‘역사란 교훈’이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달았네. “화려한 휴가”의 광주학살은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영화 이상으로 보여 주는 것이 없을까.

4·19와 5·18을 교과서로만 알고 자신과 상관이 있는지 관심도 인식의 필요도 못 느꼈을 젊은이들이 “화려한 휴가”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교훈인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자리에서 일어설 줄 모르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그들의 생각은 어디에 머물고 있을까. 이제 그들은 ‘화려한 휴가’의 뿌리가 박정희 군사독재에서 전두환의 “화려한 휴가”로 이어지는 이 땅의 비극임을 알게 되었을까. 시민군의 피로 채워진 시뻘건 화면을 보면서 민주주의는 피를 마시고 자란다고 생각했을까.

5·18의 영웅은 빨갱이의 조종을 받고 난동을 벌린 폭도들이라는 거짓말로 사살된 채 한 마디 조사도 없이 망월동 황토에 묻혔고 광주시민은 입도 뻥긋 못하며 강요된 거짓의 시대를 살았네.

이제 5·18은 “화려한 휴가”란 이름으로 비극적 모습을 드러냈네. 영화를 보면서 내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것은 왜 저렇게 국민을 죽여야 했느냐. 왜 광주였느냐는 것이었네.

역사를 보면 권력에 미친 인간들의 인면수심을 많이 볼 수가 있네. 자식도 부모도 안중에 없네. 5·18은 폭동진압도 폭도의 난동도 아니었네. “화려한 휴가”를 즐길 이유가 전혀 없었네.

무차별 살육이었네. 비무장의 시민을 도살하는 모습에서 동족임을 인정할 수가 없었네. 그러면서 또 다른 분노가 끓어오름을 금할 수가 없었다네. 왜 광주였는가. 왜 광주가 선택되어야 했는가.

왜 군은 권력을 탐하게 됐는가. 정치가 대답을 해야 하네. 거부하면 대신해 주지. 정치가 정상적 가치 판단력을 파괴해 버렸네. 무슨 짓을 해도 정권만 잡으면 된다는 정치꾼들의 가치전도가 군으로 하여금 본분을 잊도록 한 것이네.

전두환의 12·12쿠데타로 정권을 잡으려 한 것도 무능한 정치인들이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 아니겠나.
무능한 정치꾼들 보다는 차라리 명령으로 통치하는 자신들이 낫다는 오만과 과신이 작용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정치인들이 책임은 져야 하네. 그러나 과연 정치인들이 무슨 책임을 지는가. 책임 질 능력은 있는가. 진실성은 가지고 있는가.

요즘 다시 소용돌이치는 대선정국에서 온 갓 정치꾼들이 광주를 들먹이고 5·18을 팔고 있네. 너도 나도 5·18과 “화려한 휴가”를 입에 올리며 아첨을 하더군. 눈꼴이 시어서 안과를 찾아야 하네.

지지자들을 몰고 다니며 “화려한 휴가”를 감상하더군. 5·18 광주학살의 후계인 한나라당에서 13년을 포식하고 살아 온 정치인도 광주에서 5·18을 찬양하며 추파를 던지네.

쥐나 개나 5·18을 찬양하며 “화려한 휴가”로 몰려드네. 그 덕으로 영화는 대박을 터트린다고 하네. 정치인들이 좋은 일 한번 하는군.

광주에 추파를 던지는 정치인들의 진심은 무엇인가. 표겠지. 표가 있는 곳이면 똥통에라도 뛰어든다는 생리라면 그들은 고통받던 광주시민들 을 위해 어디서 눈물을 흘렸는가. 무엇을 했는가.

“화려한 휴가”를 떫은 눈으로 보는 한나라당이 정권을 차지한 듯 기고만장하는데도 민주세력이란 집단은 사분오열되어 대의와 명분은 사라지고 이기주의에 매몰된 공염불만 난무하네.

한나라당이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을 찾아 갈 때 이 땅의 민주주의는 1980년 5월로 되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기나 하는지 대답 좀 해야지.

국민의 생각은 아랑곳 하지 않고 대선후보 되겠다고 출마부터 선언하는 나이 든 철부지들과 대의와 대세가 뭔지도 모르고 대통합을 거부하는 세력들은 누구에게 정권을 상납하려 하는가.

5·18 항쟁에서 목숨을 잃은 영령들을 기억한다면 지금 대세를 거스르는 행위가 어떤 죄악을 의미하는지 분명히 알아야 하네. 5·18을 입에 올리는 사람들은 망월동 국립묘지 박관현 열사의 묘 앞에서 깊이 생각해 보기 바라네.

이제 망월동 국립묘지는 성역으로 위엄을 갖추었네. 1982년 5월이었네. 동지들과 국립묘지가 되기 전에 망월동을 찾았네.

번듯한 묘비 하나 없고 황토가 들어 난 묘지는 눈물이 앞을 가렸네. “님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묘역에는 전국에서 모여 든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슴을 뜯으며 울었네.

억장이 무너진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 황토 분묘를 쓰다듬으며 하염없이 눈물짓는 늙은 어머니의 통곡을 죽은 자는 들을 수가 없네.

그러나 부끄럽게 살아 있는 우리들의 가슴에는 어머니의 눈물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박혔다네. 정치인들이 그들을 잊으면 천벌 받네.

영화 선전하다고 욕 할지 몰라도 말 좀 해야겠네. “화려한 휴가”는 온 국민이 함께 봐야 할 영화라고 생각하네. 가해자나 피해자나 모두 봐야하네. 가해자는 참회하고 피해자는 다시는 저런 일을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각오를 해야 하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당사에서도 상영을 하고 대학에서도 틀어줘야 하네.

외신기자들이 시사회를 보면서 눈물을 흘린 “화려한 휴가”는 국민의 민주의식을 높여주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네.

영화의 마지막 즈음에서 “나는 폭도가 아니다” 외치며 총탄을 맞아 벌집이 되어 쓰러진 민우를 보며 내 심장을 총알이 관통하는 전율을 느꼈네.

민우의 애인 신애가 확성기를 들고 “광주시민 여러분, 저희들을 잊지 말아 주세요” 외치는 애절한 목소리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네.

분노와 증오로 매 말랐던 가슴이 눈물로 흠뻑 젖었네. 영화를 보는 동안 앞에서도 울고 옆에서도 울고 뒤에서도 훌쩍이는 소리를 들었네.

그리고 내 가슴속에서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며 얼굴을 가리고 통곡하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보며 내 뺨에서도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네.

7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