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덕,박찬종,조순형,이철 그들의 그후 20년
1987년 11월. 온 국민의 염원이었던 야당의 후보 단일화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고, 김영삼측의 경선제안을 거부한 김대중씨는 동교동계 의원들을 거느리고 통일민주당을 탈당 평화민주당을 창당했다. 이때 끝까지 야당후보 단일화를 외치며 무소속으로 남은 다섯명의 국회의원이 있었다. 박찬종,홍사덕,이철,조순형 그리고 허경구의원. 13대 대선은 끝내 1노 3김이 모두 출마 4파전으로 벌어졌고 노태우 민정당 후보에게 대권의 영예가 안겨졌다. 한편 야당은 이듬해 4월의 국회의원 선거도 분열된 상태로 치렀고 후보단일화 5인방중 박찬종,이철은 금뱃지를 달았고 홍사덕,조순형,허경구 후보는 낙선했다. 지역감정이 거세게 분 13대 총선은 호남의 맹주가 된 평화민주당, 부산,경남의 태반을 석권한 통일민주당, 그리고 충청도에 거점을 확보한 신민주공화당까지 4당 체제가 되었다. 대구,경북을 권력의 기반으로 한 민주정의당은 여소야대의 난감한 정국을 이끌어가야만 했다.
5년단임제와 대통령 직선제가 골자였던 9차 개정 헌법 체제가 어느덧 20년째에 이르고 있다. 한편 87년 당시 야당후보 단일화를 외치며 이후엔 ' 지역할거 정치에 반대한다 '는 또 하나의 명분을 내세우기도 했던 무소속 5인방의 그후 20년은 어땠을까. 13대 총선에서 원내에 진출한 박찬종 의원과 이철 의원은 각기 ' 5.18 광주민주화 운동 진상규명 청문회 '와 ' 언론 통폐합 진상규명 청문회 '에서 눈부신 활약을 해 청문회 스타가 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5공 청문회 스타로 화려하게 데뷔했던 그때.
한편 홍사덕의 경우는 박찬종,이철과는 다른 또다른 의미의 스타로 대중들에게 자리매김하게 된다. 원외의 낭인이 된 홍 전 의원의 경우 당시로선 조금 보기드문 선택을 하게 된다. ' 홍사덕 칼럼 '이란 자신의 이름을 내건 MBC 라디오의 시사칼럼을 1년 넘게 진행했다. 3당합당이란 경천동지할 정계의 지각변동이 있은후 민자당 합류를 거부한 노무현,장석화,김광일등의 일부 통일민주당 의원들과 박찬종,홍사덕등은 잠시 힘을 합해 ' 꼬마민주당 '을 이끌어가기도 했고 그후 DJ의 평화민주당과 통합 ' 민주당 '을 탄생시킨다. 92년의 총선과 대선에선 DJ와의 통합을 거부하며 별도로 신정당을 창당한 박찬종 의원을 제외한 네명이 모두 통합민주당에서 한 배를 탔다.
김영삼의 문민정부가 탄생한 뒤, 5인방의 운명은 다시 엇갈리게 된다. 95년 민자당에서 퇴출당한 JP의 자민련 창당, 그리고 DJ의 정계복귀가 그들의 운명을 또다시 갈라놓았다. 이철 의원의 경우 DJ의 정계복귀와 국민회의 창당에 항의하며 민주당에 잔류했고, 허경구 전 의원의 경우엔 ' 나의 본래 정치 지향점은 보수 '라며 잠시 자민련 총재특보를 맡기도 했다. 조순형 의원은 국민회의를 따라갔고, 가장 뜻밖이었던 것은 홍사덕 의원의 무소속 잔류와 박찬종 의원의 신한국당행이었다. ' 이번엔 나 하나뿐일거요 '라는 말을 남겼던 홍사덕 의원은 하지만 어려운 승부가 될 것이라 다들 예상했던 서울 강남 을의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다.
무슨 운명의 장난이라도 되는걸까. 박찬종,홍사덕,이철,조순형 4인방의 운명은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04년 탄핵정국때 다시한번 엇갈리게 된다. DJ의 국민의 정부 출범후 한나라당을 선택한 홍사덕 의원은 원내대표를 지내며 민주당 조순형 대표와 함께 탄핵정국을 주도 둘 다 낙선했다. 한편 이철 전 의원은 열린우리당 후보로 부산에서 출마 낙선한 뒤 현재 한국 철도공사 사장으로 재직중이다. 박찬종 전 의원은 17때 총선때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이후의 보궐선거에선 경기도 광주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홍사덕 후보는 낙선하고 국민의 정부 이후 줄곧 ' 쓴소리 의원 '으로 불리며 주가를 높였던 조순형 의원은 지난해 여름 서울 성북을 보궐선거에 출마 국회에 복귀한다.
87년에 그들 네 사람이 한 목소리로 외쳤던 것은 양김의 후보 단일화였다. 하지만 문민정부는 '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 '는 논리를 폈던 김영삼의 3당합당 결단에 의해 탄생되었고, 김영삼 집권후 5.18 특별법이 발의되어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구속되었다. 그리고 이어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까지 출범하기에 이르렀다.
20년이란 긴 역사의 트랙 한바퀴가 돌았다. 20년전 후보단일화를 외쳤을 때 5인방의 나이가 4,50대. 실제 박찬종,홍사덕,이철의원의 경우엔 당시 차세대 지도자감 여론조사에서 자주 상위권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도 모두 환갑을 넘긴 나이다.
그들 네 사람에겐 어떤 공동첨이 있었을까. 언제부터인가 ' 쓴소리 의원 '이란 별칭이 붙은 조순형 의원, ' 독불장군 ' 박찬종 그리고 96년 국민회의 합류 거부후 한때 ' 돈키호테 '라 불리우기도 했던 홍사덕. 여하튼 각자 자기 고집과 개성이 있는 인물이었음엔 분명하다. 20년전 분명 국민 대다수의 여망은 양김의 후보 단일화였고 그들은 고집스럽게 한 목소리로 이를 외쳤다. 그리고 그후 20년 참으로 많은 일들과 변화가 있었다. 20년전엔 한배를 탔던 그들이 96년과 2004년엔 각기 다른 입장과 위치에 서 있었다는것만으로도 그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이제 그들의 나이로보나 지나간 정치연륜으로보나 한번쯤 87년의 양김후보 단일화 요구와 그후 20년의 행보를 냉정하게 평가해봐야할 시기가 온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후의 정치행보가 그들의 개성만큼이나 각기 너무나 달라 한웅큼으로 묶어 어떤 평가를 내리기도 참 힘들다. 김영삼도 김대중도 이제 모두 대통령을 했고 5년 단임제의 직선제 대통령제를 운용해온지도 어언 20년. 20년전의 그들 네사람은 지금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
kht1007@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