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국현’ 띄워 ‘이명박’ 잡는다

이제 선거가 100일 앞으로 다가 왔다.

대통합민주신당 내에서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을 영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서서히 힘을 얻고 있다. ‘도토리 키 재기’식이 되고 있는 범여권의 대선 후보경선 판도를 뒤집을 카드로 그가 적합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속내에는 그를 이용해 자신의 지명도를 높여 보자는 계산이 깔려 있다.

고건 전 총리,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에 이어 ‘장외 대선주자’인 문국현 전 유한 킴벌리 사장을 놓고 범여권 내부에서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다. 당 지도부와 지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후보들은 그와 손잡기 위해 몸이 달았다. 하지만 이름 꽤나 났다는 후보들은 그의 합류를 노골적으로 반대한다. 대선후보는 자기차지라는 생각 때문이다.

오충일 대통합민주신당 대표는 계속해서 문국현 후보 영입과 관련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오 대표는 이날 대전지역 기자간담회에서 “당에서 공식적으로 거론한 것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함께 경선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문을 열어 놓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비공식적으로 권유도 해봤다”며 “그 분은 당의 틀이 지지층을 더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고, 새로운 지지층을 확보하는 게 본인의 사명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신당 지도부 잇단 러브콜
오 대표 “문 열려있다”
오 대표는 “사람중심의 경제정책이나 평화를 지향하는 남북관계, 서민의 삶을 더 낫게 하는 민생문제 해결 원칙이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아직 당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논의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정균환 최고위원도 “문국현 후보는 평화개혁세력이고, 냉전수구세력에게 이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점에서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아직 당 지도부에서 공식적으로 논의된 바가 없다”고 부연했다.
신기남 김두관 천정배 등 전경선예비후보들도 문 후보의 영입 필요성을 제기했다.

신기남 은 민주신당 대통령 예비후보 TV대담에 출연 “문국현 등 진보 개혁 후보들을 단일화해야 시너지 효과가 있다”며 “앞으로 진보 후보간 연대를 선도해볼 생각”이라고 밝힌적도 있다.

신 의원은 또 별도의 보도자료를 통해 “요즘 인터넷 언론 등을 통해서 문풍이 부는 것 같”며 “문풍(文風)이 신풍(辛風)을 만나 통풍(統風)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후보와는 뚜렷이 구분되는 그의 사람중심의 경제노선은 민주신당 내에서 외롭게 복지경제노선을 들고 싸우는 입장에서는 울타리 밖의 일이지만 오래간만에 비슷한 생각을 만난 듯하다”고 밝혔다.
김두관 전행자부장관도 TV대담에서 “대선 후보들이 합의해 민주신당 후보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정배  역시 “문 전 사장과 같은 개혁세력과 연대하는 게 유일한 대선 승리의 길이다”라고 강조했다. 천 의원은 “국민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는 대통합을 이뤄야 한다”면서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과 민주신당도 한시바삐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

정동영 후보 측도 “개혁성과 경영마인드를 갖춘 문 후보가 민주평화개혁세력과 반드시 함께 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영입에 긍정적 입장을 보였다. 추후 본 경선에서 최대 위협요인이 될 친노주자군을 견제하려는 전략적 포석이 깔려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이들 후보의 주장은 다분히 경선전략 차원으로 보인다. 예비경선 통과를 앞두고 개혁적 색채가 짙어 보이는 문 후보와의 연대를 강조함으로써 ‘개혁표’를 결집, 열세국면을 탈출하려는 포석이 아니냐는 것. 이들은 상대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 어려운 군소주자다.

이는 개혁적이라고 평가받는 문 후보를 언론에 노출, 경선국면에서 자신들의 개혁 성향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다. 민주신당에 이른바 ‘긴급수혈’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도 있다.

그러나 ‘문국현 영입론’은 개별후보들의 경선전략 차원을 넘어 신당내에서 의미있는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현재 신당주자들의 낮은 여론 지지도로는 국민경선을 치르더라도 ‘흥행몰이’가 어려운 만큼 새로운 후보를 수혈하는 일종의 충격요법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신당 내에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문 전 사장이 주목받는 이유는 “현재 뛰고 있는 범여권 주자들로는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를 이길 수 없다”는 위기감의 발로인 셈이다.

문 전 사장은 시민사회단체와 학계의 지지도가 예상보다 폭이 넓다. 조동성 서울대 교수,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 신봉호 서울시립대 교수 등이 적극 돕는다. 박원순 변호사,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도 지지그룹으로 분류된다. 그가 이처럼 넓은 인맥을 쌓게 된 데는 돈의 힘도 컸다. 유한킴벌리 시절 문 전 사장의 연봉은 8억원 안팎이었다. 이중 3억5천만원은 세금으로 내고, 집에 1억5천만원을 가져갔다. 나머지 돈은 시민사회단체와 각종 봉사단체에 기부해왔다.

원혜영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이명박 후보가 뜨고 있는 것도 경제”라며 “문 전 사장은 이 후보와 방법론에서 대비되고, 철학과 업적에서 대비된다”고 말했다. 문 전 사장이 말하는 이른바 ‘진짜 경제’와 ‘가짜 경제’의 비교우위론이다. 건설중심의 경제와 사람중심의 경제를 대비시키고, 재벌과 탄탄한 중견기업 CEO, 불도저와 나무심기 등을 대비시킨다는 전략이다.

범여권에서는 문 전 사장의 진로를 둘러싼 논란이 진행중이다. 크게 보면, 민주신당 본경선에 영입하는 방안과 독자세력화를 통해 11월말 민주신당 후보와 단일화하는 방안 2가지다.

찬성파 천정배·정동영
친노주자군 견제 포석
그럼에도 아직 범여권 내부에는 문국현 대망론보다는 회의론이 더 많다. 민주신당 한 의원은 “고용이나 경제 등 개별적인 콘텐츠는 있는 듯하다”며 “그러나 대선을 4개월 앞두고 바람을 일으킬 대선주자인가라는 질문에는 ‘글쎄’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도 약점이다.

영입론과 관련해 민주신당내 목소리도 엇갈린다. 손학규 정동영 천정배 측은 찬성에 가깝고, 다른 후보들의 반응은 대체로 싸늘하다. 특히 상대적으로 세가 불리한 것으로 평가되는 후보들은 ‘무임승차’를 지적하며 형평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여론 지지도 1위의 손학규 후보 측은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을 노골적으로 견제하고 있다.

답보상태인 지지율과 정체성 시비 등으로 최근 ‘위기의 손학규’로 까지 거론되고 있는 손 후보 측으로서는 ‘범여권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문 전 사장이 반가울 리 없기 때문이다.

손 후보 측 우상호 대변인은 ‘문국현 사장을 어떻게 보냐’는 질문을 받고, “평소 좋은 사람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민주신당이라는 판에 개입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비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우 대변인은 이어 “대통령 후보는 정당의 후보가 되야 하는 것 아니냐”며 “문 사장이 정치권에서 무임승차를 하려고 하고 있다”고 컷오프 등 경선과정에 참여치 않은 채 후보로 참여하려는 문 전 사장을 비판했다. 손 후보 측 인사인 전병헌 의원도 “취지는 공감하지만 합류 방식은 정정당당한 절차와 방식을 따르는 것이 좋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영입 논란에 대해 문 후보측은 말을 아끼면서 일단 여론의 추이와 정국 상황을 주시하는 분위기다. 영입과 독자세력화 모두 문 전 사장이 추석전까지 지지율 5% 이상은 확보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 전 사장은 참모들에게 “끝까지 가겠다. 대선 이후 총선도 본다. 차기 대선도 본다”고 말했다고 한다.

문 전 사장 측 인사인 원혜영 의원은 “현재로서는 독자노선, 독자세력화가 기조이고 문 후보도 심정적으로 그쪽에 마음이 가있다”면서도 “그러나 의미있는 지지율을 확보한다면 어떤 상황과 시점, 경로를 통해 (범여권과) 결합하지 않겠느냐고 보고 있다. 그것이 범여권에게도, 문 사장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전 사장은 일단 범여권과 거리를 두겠다는 취지의 발언들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그는 얼마 전 “나를 범여권으로 몰아가면 그 분들은 좋을지 몰라도, 국민들은 혼돈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신당과의 후보단일화 논의에 대해 “(민주신당은) 비전과 구호로는 서민들을 위한다고 했으면서 양극화를 심화시킨 사람들 아니냐”며 “정책이나 비전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단일화 논의를 하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국민들은 기회를 안 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문 전 사장은 또 “계속 독자 행보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기존 세력 가운데 자신의 능력이 우리의 비전과 가치관, 정책에 쓸모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의 합류를 환영한다”고 역제안하기도 했다.

손학규·유시민 등 극렬 반발
추미애·한명숙도 ‘무임승차론’
특히 “가치관의 응집없이 세력만 모이는 것은 일시적이고 일회용 정치”라며 “지금 있는 일부 정당은 대통령이 안 되면 없어지는 당”이라고 말해, 민주신당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최근 지지율이 오르고 있는 것과 관련 “인터넷에서의 열기를 보고 놀랐다”며 “우리 사회에 불이 붙고 있다. 잠잠하고, 죽어있던 영혼이 다시 불타오르려 하고 있다”고 소회를 피력했다.

그는 유시민 후보가 ‘정치 시장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말한 것과 관련 “기존 정치 세력이 내가 만만하게 본다고 하는데, 정치를 만만하게 보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국민을 섬기지 않고, 국민을 만만하게 보는 것은 구 정치세력들은 만만하게 본다. 국민을 섬기고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면 실패한 정치인”이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