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이상하게도 ‘이 나라가 누구의 나라인지’를 골똘히 생각하게 된다.

이 나라는 누구의 나라인가? 지독하리만치 일방적이었든 아날로그 식 정치가 우리사회를 지배하던 때도 이런 생각까지 들진 않았다. 그런데 국민소득이 크게 늘고 정치․사회적 자유 또한 크게 확대되었으며, 급기야 국민의 손으로 직접 선출한 대통령이 국정을 운영하는데도 ‘이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 왜 일까?

더구나 이 시대는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디지털 시대이다. 자연히 그 답은 먼 곳에 있질 않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나 국무회의 석상의 모습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뉴스를 통해 얼핏얼핏 보게 되지만, 대통령이 주재하는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나 국무회의 진행 모습을 보면,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주로 박 대통령이 강한 어조로 특정 사안을 지시하면, 그 지시를 메모하기에 바빠 보이는 것이 수석비서관들과 각료들의 모습이다.
조선시대를 관통하는 봉건왕정 기에도 국정을 논하고 결정하는 자리는 그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왕권이 추상같았던 시기에도 국정을 놓고 대신들이 논란을 벌였던 것은 그 복잡성과 함께 그것이 종래 민심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사실 국정은 대통령 혼자서 수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정운영은 매우 복잡하고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정치․외교적 사안들을 공정하게 풀어나가야 하는 복잡계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운영은 앞서의 예에서 보듯이 대통령 1인의 전유물인 것처럼 보인다. 내각의 각료, 수석비서관은 말할 것도 없고, 대통령의 정책적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는 대통령 직속 각종 위원회 역시 제 가능을 못한다. 더구나 박근혜 정권을 출범시킨 집권당인 새누리당 조차도 그저 ‘박 심’을 따라 움직이는 ‘로봇 정당’이 되다시피 했다.
이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 청와대 비서실 및 내각의 무능이다. 아니 능력이 있어도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정책은 혼선을 빚는다. 이 같은 정책 혼선을 최소화하고 방지해야할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다. 오히려 그 점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87년 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정치체제를 출범 시켜야 한다.

어쩌면 세월호 침몰 사고는 87년 체제의 한계를 보여 주는 상징적 혹은 전환기적 인재가 아닌가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관피아’라는 말을 사용했지만 관피아가 작동할 수 있는 배경에는 바로 87년 체제가 자리하고 있다.

87년 체제의 가장 큰 특징은 대통령 직선제의 실시와 함께 경제민주화 조항이 새로이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대통령을 ‘국정운영 컨트롤 타워’의 정점에 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관료사회의 경직성 곧 복지부동을 부르는 첫 번째 요인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관피아가 발생했고, 관피아는 기득권을 형성해 국가와 국민의 이익보다는 자신들의 이익 챙기기에 바쁜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대통령과 함께 국가의 모든 정보를 장악하는 등 국정운영의 장인 행정업무를 장악한다. 그런데 대통령을 포함해 그들이 내려다보는 그 행정집행의 장 전반은 마치 국가조직이라는 숲의 전경(全景)을 보는 것과 같다. 숲의 전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숲 전체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는 비교적 잘 엿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그들은 그들만의 기득권을 지속적으로 지켜 낼 수 있다. 이때 그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바로 국가라는 숲을 구성하는 인자들의 개별건강생태이다. 그 때문에 그들은 국가라는 숲의 전경을 살펴서 숲 속에서 일어나는 개별적 일들을 마치 다 아는 양 하지만, 정작 그들은 거기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이 때문에 국가라는 숲에서는 오히려 여러 형태의 문제들이 발생한다. 비록 모든 정보를 장악한 그들이라고 할지라도 직접 보지 않아 모르는 것을 마치 보아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가정하고, 행동해 버린다.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이 정도 선까지는 괜찮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을 갖게 한다.
특히 대통령이 이런 생각을 갖는다면, 그것을 정말 위험하다. 대통령 직무의 복잡성 때문이다. 대통령 직속 각종 위원회를 두는 것도 바로 이 점 때문이다. 대통령은 그 기구를 통해 국민이라는 숲의 개별생태에 대한 보고를 듣고, 만일 문제가 있다면 그 대책까지를 함께 제안 받아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은 그 내용을 잘 검토해 국정운영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

그런데 이 정부에는 이런 기능들이 죽어 있다. 가장 민주적인 대통령이 가장 비민주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즉, 박근혜 대통령은 역대 그 어떤 대통령보다도 국민의 마음을, 생활양태를 더 잘 안다. 이 때문에 개별국민은 박근혜 대통령을 존경하고 따른다. 그렇지만 이 정부에 대한 국민 전체의 생각은 다르다. 유능한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지만, 정부의 국민에 대한 행정기능은 혼란과 혼동을 연이어 연출하는 등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에 대한 눈치 보기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켜내려는 관피아의 행태는 관료사회의 경직성과 함께 부패의 고리를 수없이 양산하게 되는 것이다.

이 점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지난 4월 16일 오전 남해 진도 해상에서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 대책’ 곧 실종자에 대한 수색 및 구조 활동의 전개과정이다. 실종자 수색 및 구조 활동 과정에 정부가 보여준 것은 말 그대로의 ‘정부 무능’이다.

집권과 함께 박근혜 정부는 우리사회에서 기능하는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그 노력이 탁상행정의 전형이었음을 ‘세월호 침몰 사고’는 보여주고 있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소통 부재에 대한 국민의 지적을 박근혜 정부가 애써 무시한데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열이틀 만에 ‘정홍원 총리가 그 책임을 진다.’며 사퇴의사를 밝혔지만, 세월호 침몰 사태가 부른 사회적 파장이 그 것만으로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소통은 범국민적 협력을 이끌어내는 단초다. 소통 없이 이뤄지는 국정운영이야말로 독선이며, 국민의 마음을 담아낼 수 없어서 종래 탁상행정으로 이어지고 만다. 이 같은 이 정부의 소통부재는 이 나라가 국민의 나라가 아니라 대통령의 나라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디지털 시대에 그 같은 국정운영 행태를 국민이 더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대통령은 이 나라를 국민에게 돌려 줘야 한다. 이 나라는 대통령의 나라가 아니라 국민의 나라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87년 체제를 극복해 내는 일이다. 관피아의 발생 곧 경직된 관료사회는 87년 체제가 갖는 특징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2014.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