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0년 동안 우리는 이 땅을 뒤덮고 있던 ‘가난과 질병’을 물리치는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 같은 우리의 노력은 큰 성과를 냈고, 불과 50여년 만에 국민소득 70달러의 나라에서 국민소득 24,000달러의 나라로 발전했다.

이 같은 한국경제의 장족적인 성장을 두고 세계는 놀라워하며, 그것을 일러 ‘한강의 기적’이라고 칭송했다. 그러나 이 기적의 이면에는 ‘불합리한 점’이 또한 자리하고 있었다. 바로 우리 몸에 밴 ‘성장지상주의’다.
이 성장지상주의는 우리로 하여금 탐욕의 눈을 더 크게 뜨도록 했다. 그리고 물질만능주의와 함께 그것을 충족시킬 탐욕을 실현하는데 피아를 명확히 구분하며 격한 경쟁을 촉발시켜왔다.

이러한 사회풍조는 그 동안 미덕으로 여겼던 주요덕목을 오만으로 여기게 되었고, 급기야 그러한 행위를 반시대적 덕목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이 같은 반시대적 덕목은 몇몇 재벌기업의 성장에 기여를 하는 한편, 소위 ‘관피아’를 생성시켰고, 그들은 사회적 부를 지배하며 모든 것으로부터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적 강자가 되었다.
급기야 그들은 국민 위에 군림하기까지 하며, 그들 중 일부는 위정자로 진출하여 그들과 결탁하여 기득권 세력을 구축했다. 그리고 그들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회구석구석에 부정과 부패라는 병폐와 적폐를 쌓아 사회위기의 기폭제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대참극’은 그것을 보여 주는 한 예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이 만든 악순환의 고리다. 즉, 몇몇 재벌기업과 위정자는 결탁을 통해 지속적으로 부를 지배하고 그 부는 권력을 내고, 권력은 다시 부를 생성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놓았다. 이 악순환의 고리는 너무나도 강력한 나머지 좀 채 끊기 질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계급을 만들어 사회를 경직시키고 있다. 특히 그 악순환의 고리는 우리들로부터 존경심과 명예를 앗아갔다.
이로써 우리사회에서 부 곧 돈은 그것을 가진 자의 명예요 품격의 상징이 되고 있다. 부가 지배하는 사회에 나타나는 이런 경향은 가난한 시인이나 학자를 더는 존경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무능의 상징으로 본다.
이로써 가난 한 삶은 흉이 되고, 슬프고 아픈 것이 되었다. 그런데 지난 시기 그들은 가난한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가난한 삶의 애환을 달래주는 기둥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들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이 땅의 서민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그들과 서민의 봉사정신은 국난의 시기마다 빛을 발했다. 지난 97년 말 국가부도 사태 때에도, 이번 세월호 사건에도 많은 서민이 봉사의 대위업을 보여 주었다.

이렇듯 역설적이게도 우리사회를 떠받히고 있는 중심세력은 여전히 돈 없고 뒷배가 없어 서럽고 아픈 서민들이다. 이처럼 역사는 언제나 이들에 의해 버겁지만 추동되고 있다. 그들과 서민은 이점으로부터 위안을 받는다. 이 땅의 분명한 주인으로서 역사의 주체라는 사실이 그들 모두에게는 감출 수 없는 자부심이요, 자긍심이다.
앞서 지적했지만 국난의 위기 때마다 그들의 활동은 눈부시다. 그들의 이런 마음은 그 어떤 충격적 역사 속에서도 늘 굳건히 이 땅을 지켜 역사를 이어 온 것이다. 일제 강점기 36년을 버텨 낸 것도 그들이었고, 참혹했던 6.25 동란의 비극을 극복해낸 이들 또한 그들이었다. 거듭 말하지만 지난 1,000년의 역사기 동안 이 땅 한반도에서는 무려 1500회에 달하는 각종 전란이 일어났다. 그 숱한 전락 속에서도 역사를 도도히 지켜 이어온 이들은 다름 아닌 이 땅에 사는 그들이었다. 이 땅의 그들은 그 어떤 고난 속에서도 아이를 낳고 길러 자자손손 대를 이어 그 긴 역사를 면면히 이어 온 것이다.

지난 역사의 시기에 일어났던 수많은 전란과 사건들은 일단 잠시 제쳐두자. 그렇더라도 온 국민에게 통절한 아픔과 슬픔을 부른 지난 4월 16일 오전에 발생했던, 전란에 버금가는 ‘세월호 대참극’ 역시 서민의 역사며, 서민이 안고가야 할 등짐이다. ‘고양터미널 화재 사건’과 ‘전남 장성의 요양병원 화재 사건’ 역시 지난 역사의 시기에 일어났던 비통한 사건들과 함께 서민의 등짐으로 남을 비극이다.

어쩌면 최근 연잇는 대형 참사는 우리사회가 그만큼 낡고 늙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모두에서 말한 대로 산업화 시기 곧 고도성장의 시기 60년은 이제 그 수명을 다했다라고 봐야 한다. 국가개조와 함께 사회개조가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그 주체가 위정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위정자가 나서서 반복되는 사회적 위기를 해결하겠다고 떠들어대지만 그것은 단지 그들의 호언일 뿐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큰 출혈을 요구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그들은 결코 끊지 못한다. 그들은 기득권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위정자들 역시 서민에 의한 서민을 위한 서민의 정치를 꿈 꿨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서민으로부터 세금을 쉬이 걷기 위한 술책이었으면, 집권의 시기가 끝나면 그들이 어떤 행태를 보였는지 모두 드러내고야 만다.

그들은 국민을 위해 일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달과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 일했다. 이를 통해 그들은 비인간적인 역할을 오히려 강화해 왔다. 그렇게 해야만 부를 축적할 수 있고, 그 부를 그들의 자손에게 고스란히 물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이 땅의 위정자들을 우리역사의 주인으로 섬기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 동안 위정자들은 이 땅의 희망을 일구는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 시대조류에 야합하는 위선자들이었다.

나는 이런 위정자(爲政者)들에게 위선의 가면을 벗을 것을 권유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역사의 주체로 나아갈 수 있다. 그들이 역사의 주체로 나아가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면, 우리는 관용과 포용이 기능하는 아름다운 사회를 구현할 수 있다. 세월호 사건으로 등장한 국가개조론의 경우 관료사회가 쌓아온 권위주의에 기초한 사회적 적폐를 해소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차별을 해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렇게 될 때 우리사회는 가난해도 서럽지 않은 서민의 세상을 열 수 있다. 진정한 국민행복의 새 시대는 서민들 곧 가난해도 서럽지 않은 세상이 열릴 때 비로소 달성된다.

2014.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