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산에 단풍이 지고, 차츰 더 내려가 기온이 냉랭해지는 늦가을이면, 우리에게 몰래 다가서는 것들이 있다. 고독, 방황, 우울 등과 같은 심리적 ‘허함’이 그것이다. 그 허함을 달래는데 가장 좋은 것이 독서다. 그래서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그렇다고 다들 무턱대고 독서를 하지는 않는다. 사람에 따라 독서를 하는 데는 제각기 또 다른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앞서 말한 ‘허함’을 달래거나 평정심을 얻어 내 몸에 살찌운다. 곧 독서를 통해 지식을 함양하거나 교훈을 얻거나 기타 재미 때문이거나 그도 저도 이도 아니면 또 다른 목적을 위해 독서를 한다.
다른 이들이야 어떤 목적으로 독서를 하던 내가 독서를 하는 데는 앞서 말한 이유 외에도 분명한 또 다른 목적이 있다. 바로 독서를 통해 더 좋은 어휘나 문장을 발견해 (글을 씀에 있어서) 더 나은 표현을 하기 위함이다.
좋은 글을 쓰는 능력은 타고난다기보다 훈련에 의해 채득된다. 제 아무리 글쓰기 재능을 갖고 태어난들 보고 듣지 않으면 좋은 (문장의)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그렇더라도 특별히 글쓰기 재능의 소유자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닐 게다. 어느 분야든지 간에 천재성을 발휘하는 이들이 드물게 있기 때문이다. 어느 작가가 말했다, 자신은 “(글을 쓸 때) 피로써 쓴다.”라고. 그렇다. 사실 글을 쓰는 일 역시 고되고 힘든 일이다.
작가들 대부분의 성격이 모가 나고 거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자신의 의지대로 글이 전개되지 않을 때 대부분의 작가는 자신의 가슴 속에 묻혀 있는 광기를 드러낸다. 폭음에 고성방가를 주저하지 않는다든가 길가 전봇대에 대고 오줌을 갈기는 등의 폭력적 행동 또한 주저하지 않는다.
온순한 작가를 본 적이 있는가? 글은 온순하지만 그 글을 쓴 작가의 성품까지 온순할 것이라고 여긴다면 그건 오판이다. 많은 작가들이 다중인격을 드러내는데도 그 만한 이유가 있다. 그건 바로 작가들 대부분이 지금까지 가보지 않는 길을 가려 하거나 아예 새로운 길로 가는데서 오는 갈등들 때문이다.
이와 함께 많은 작가들이 극적인 삶을 이어가는 데도 그 만한 이유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위험천만하다. 위험한 만큼 또한 혼란스럽다. 그 혼란에는 고통이 수반된다. 그래서 작가는 다중인격자가 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작가들에 비해 보통사람은 그 혼란을 피해 이미 나 있는 길을 간다. 보통사람들에게는 그 길 역시 충분히 재미있고 행복 또한 담보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들에게 이미 나 있는 그 길은 시시콜콜하고 미련해 보인다. 작가의 감성이라는 게 그렇게 작동한다. 뭔가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작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작가가 아니더라도 인간 내면에는 창조적 본성이 숨어 있다. 작가는 일반사람들에 비해 특히 그 같은 창조적 본성에 기대어 행동하려는 욕구가 강하다. 이에 비해 보통사람은 습관적 혹은 익숙한 것에 몰두하는 경향을 보인다. 기능공이나 장인 역시 예술인들로서 작가의 범주에 든다. 그들은 익숙한 것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그 범주를 벗어난 창작물을 얻는다. 장인이나 기능공의 창작물은 예술품이 되고, 그들을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아무튼 글을 쓰는 일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업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 새로운 문명의 등장으로 누구나 글을 쓰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는 인류사에 새로운 문명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이미 인류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도달해 있다. 지식이 이미 보편화 되는 시대를 맞았고, 그 지식을 온라인상에서 그것도 동시에 누구나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글쓰기 또한 그만큼 편해졌다. 상업용 작가 전성시대가 열린 것도 시대상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이로써 작가가 추앙받던 시대 또한 저물고 있다. 그렇더라도 작가의 삶은 계속되고 새로운 문장을 찾는 작가의 독서여행 또한 계속된다. 작가인 그 이유 때문이다. 작가는 창조적 본성의 야성을 숨기고 살지 못한다. 생각이 깊어지고, 마음이 허해지는 이 늦가을에 당신은 어떤 책을 잡고 씨름하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목적으로 독서를 하는가? 읽지 않으면 쓸 수 없고, 보지 않으면 좋은 묘사를 할 수 없다.
2201.11.20 |
iperi@iperi.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