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당신에게 ‘민주주의(Democracy)’를 말하면, 과연 당신은 무엇을 먼저 떠올리는가? 자유’인가 아니면 ‘책임’인가? 이도저도 아닌, 즉 제 3의 것을 떠올리는가? 당신이 무엇을 떠올리던 통상 민주주의하면 우리 모두 자유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따라서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 모두 민주주의하면 곧바로 ‘자유민주주의’를 떠올린다.
이 결과 우리는 늘 민주주의를 자유주의로 해석하려는 경향 속에 있다. 민주주의 해석에 대한 이런 경향이 문제될 것은 없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본래 자유주의를 대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근대시민 사회는 시민혁명을 통해 절대왕조를 붕괴시킨 후 (자유)민주주의를 정체로 채택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민주주의에는 자본주의 또한 반드시 결부되어 있다. 즉 자본주의 역시 자유주의에 기초해 있다.
사실 자본주의는 중세에 이미 그 싹이 텄으며, 이 자본주의 싹을 키우는 데에 필요했던 것이 새로운 국가질서로서 (자유)민주주의였다. 한편 자본주의는 소유의 문제와 연계된 개인(권)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발아했다.
18세기 서구에서 촉발된 시민혁명은 개인 권에 기초한 자본주의를 성숙시키기 위한 정치투쟁의 과정이었으며, 이로써 인류는 자본주의에 그 토대를 둔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정치체제를 확립하게 된다. 자연히 (자유)민주주의의 성립은 근대 시민국가의 성립과 그 맥을 같이한다.
따라서 근대 시민 사회가 성립되기 이전에는 정치체제로서 민주주의 제도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다만 집단지도 체제 내에서 의사결정 방법으로 민주적 방식이 존재했고, 다수결주의가 그 원칙이었다. 따라서 근대 시민 사회 이전의 집단 지도체제 내에서 의사결정 방식을 민주주의로 해석하는 것은 잘 못이다. 당시에도 국가 혹은 사회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이의 자유로운 의사만은 의당히 존중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는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이를 소수의 지배계층으로 한정했다. 따라서 이들에게 민주적 의사결정방식, 즉 다수결주의는 매우 합리적이었고, 실제로 잘 기능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시민사회가 성립된 이후 정립된 민주주의는 매우 포괄적인 의미로 새로이 개념 지어졌다. 즉 이제 민주주의는 그 의미를 확대했고, 여기에 더해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소위 평등주의까지 가미한다. 그러면서도 민주주의 역시 의사결정에 있어서 다수결주의를 여전히 대원칙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하면서 기본권으로서 (국민) 평등권 추구가 사회적 힘을 얻게 되고, 이로써 사회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에 제기되는 소수의 의견 또한 존중되어야한다는 새로운 원칙이 점차 강화되고 있다. 이로써 나타나는 현상이 다수결주의의 무력화이다. 이는 앞서 말한 것처럼 국민의 생존권으로서의 기본권이 강화되는 과정에 나타난 사회적 현상이다.
한편 민주주의 역시 사회관계의 변화와 함께 점차 진화하면서 약 간씩 그 모습이 변해가고 있다. 이 변화를 이끄는 요인 중의 하나가 바로 앞서 말한 국민의 기본권 강화와 맞물려 있는 개별 인권에 대한 존중이며, 이 또한 단순히 존중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보장으로까지 진전되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주의의 이러한 진화 경향은 공교롭게도, 앞서도 말했지만, 의사결정방식으로서 민주주의의 대원칙인 다수결주의를 스스로 무력화 시키고 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이는 사회내부의 의사를 결정함에 있어서 소수의견 또한 중시해야 한다는 논리가 다수결주의와 항시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인데, 이는 민주주의가 진화한 결과이다.
이처럼 민주적 의사결정의 대원칙인 다수결주의가 소수의 의견 또한 중시되어야 한다는 사조의 등장으로 점차 무력화 되자, 이 때 새로이 등장한 것이 바로 ‘소통(communication)중시’이다. 이제 ‘소통’은 단순한 대화의 의미를 넘어, 사회내부에서 너무도 자주 발생하는 상호이해의 충돌을 적극 조정해내는 도구로써 기능한다.
물론 소통의 주 수단은 ‘대화conversation’이다. 통상 대화는 특정 사안에 대해 ‘상호 이해(理解)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적극적 소통에 이르자면, 당사자 간의 이해와 타협, 그리고 관용과 포용의 자세가 그 대전제이다. 그렇지 않으면 소통을 위한 대화가 날선 공방(攻防,offense and defense)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현실에서 우리의 정치권은 늘 ‘소통’을 강조하면서도, 모든 정치적 행동을 언제나 상호 날선 공방으로 몰아가기 일쑤다. 이 결과 나타나는 정치적 행동이 바로 최근 우리 국민은 물론이고, 해외로부터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 쇠톱과 해머가 난무한 국회 폭력사태이다. 국회에서의 이런 파괴행위는 우리 모두를 위해 마땅히 근절되어야 한다.
사실 민주주의는 우리 모두로 하여금 (행동의) 자유와 책임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서 민주주의는 법치주의에 기초해 있다. 한편 법치주의는 양 측면, 즉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측면과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는 또 다른 측면으로 각기 기능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민주주의는 모든 사회관계의 기초로서 우리 모두 하나의 공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공리를 부정하는 듯한 정치적 작태들이, 사회내부 특히 입법권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아 행사하는 국회에서 자주 발생한다. 이는 민주주의를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해 모든 것을 자신의 논리에 꿰맞추려는 떼 법 즉 비열함으로부터 온다. 이제 우리 모두 민주주의를 솔직담백하게 받아들여야 하며, 사회를 유지시키는 힘의 근간인, 어느 누구도 결코 부정하지 못하는 공리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 때 비로소 우리의 정치는 제 모습으로 제 역할을 다한다. 2009.1.30 일평경제연구소 소장 정득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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