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안개를 밀어 그 위치를 변경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제 아무리 거센 바람이라고 할지라도 안개를 결코 걷지는 못한다. 안개를 걷는 것은 조용한 태양 빛이다.

제 아무리 짙게 낀 안개일지라도 뜨는 태양(太陽)만은 당해내지 못한다.

어제(21일), 박근혜 대통령은 장고 끝에 제44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황교안 현 법무부 장관을 내정했다. 청와대의 그 인선배경에 대한 설명의 내용이나 황교안 총리 내정자의 총리후보 지명에 대한 인사말에는 공통점이 담겨있다.
즉, 현재 진행 중인 ‘사정정국의 칼날’을 더 벼리겠다는 함의(含意)가 그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황교안 국무총리후보자 내정을 통해 정부가 꿈꾸고 있는 국민연금개혁을 포함하여 공공, 금융, 노동, 교육의 4대 부분에 대한 개혁작업에 속도를 더 내는 한편 우리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비정상(非正常)의 정상(正常)화’를 위해 노력을 더욱더 경주하겠다는 의지를 재천명한 셈이다. 더 나아가 박 대통령의 의중에는 차기정권을 이끌 뉴리더로서 황교안(58)을 꼽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나 황교안 국무총리후보의 경우 그의 이력이나 기타 법무부 장관 임명을 놓고 벌인 국회 인사청문 과정에 드러난 사실들을 종합할 때, 이완구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시대가 요구하는 국무총리상을 구현하는 데는 역부족이지 십다. 즉, 신임 국무총리상에 대한 시의(時宜)는 여야를 아우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더 나아가 범 국민적 대 화합과 통합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뉴-리더십의 소유자여야 한다.

국민 또한 그 같은 뉴-리더십의 소유자가 신임 국무총리로 내정되기를 은근히 바래왔다.

어찌보면 이 같은 국민의 바램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또 엇박자를 냈다. 대통령으로서 견지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들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성찰(省察)이 여전히 부족한 게 아닌가 한다.

민주화가 진전된 나라의 대통령은 통치자로서의 권능을 발휘하기보다는 국민의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절하는 균형자로서의 역할에 보다 더 충실해야 한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국무총리의 역할 역시 마찬가지다.

안개가 시야를 가린다고 해서 커다란 환풍기를 돌려 만든 바람으로 안개를 밀쳐냈다고 치자. 조금만 더 진행하면, 그 안개와 다시 마주치기 마련이다. 안개가 걷히지 않는 한 안개는 자리만 바꿨을뿐 그 모습을 유지한다. 안개가 걷히기를 바란다면, 힘샌 환풍기를 돌릴 것이 아니라 조용히 태양이 떠오르기를 기다려야 한다.

지금 우리사회는 분명 진화해 나아가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 같은 사회진보가 순조로히 제 길을 가도록 그 뒷받침만 하면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사실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더 높아졌으면 한다.

이 땅에 끼인 안개를 걷는 것은 소리나는 바람이 아니라 소리없이 늘 뜨고지는 태양이다.

2015.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