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신채호는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고 규정했다. 단재의 역사관을 정립(鼎立)시킨 시대는 일제강점기로 우리민족에게는 국권이 유린당한 암물한 시기였다. 자연히 당시 우리민족의 최대 염원(念願)은 국권회복을 통한 자주독립(自主獨立)의 달성이었다.

  이처럼 우리민족이 외세(外勢)인 일본으로부터 식민지배(植民支配)를 받게 된 데는 당시 세계사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세계사의 큰 흐름은 제국주의(帝國主義)가 그 지배권을 확대해 나가던 시기로, 서구 열강들은 더 많은 식민지 확보를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같은 세계사의 흐름은 인류에게 끝내 비극적인 ‘피의 전쟁’을 불렀다.

  바로 제1,2차 세계 대전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세계사를 새롭게 변혁시키는 계기로 작용했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단초가 되기도 했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각국의 전쟁 관련 기술개발은 종래 사회를 변혁시키는 혁명적 신기술 발명을 이끌어 냈다.

  휴대용 라디오가 등장한 것도 이 시기다.

  지금 세계인의 손에 들린 핸드폰 역시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발명한 컴퓨터 기술을 비롯한 전쟁 관련 군사기술이 그 단초다. 이후 컴퓨터는 단순히 데이터 분석 도구가 아니라 그 정보를 수집 저장하고, 그것을 전달할 수 있는 통신기술과 결합되면서 나타났다. 그리고 그 신기술이 현대의 정보화 사회를 열었다.

  더 나아가 세계는 지금 기술융합의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세계인의 손에 들린 핸드폰은 가장 대표적인 기술융합 제품으로, 이후 더 많은 각종 (신)기술들과 결합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등장하는 새로운 형태의 핸드폰은 인류 삶의 형태을 완전히 뒤바꿔 놓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변화와 혁신의 시대와 마주서 있다. 이제 역사는 투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서로 협력을 요구한다. 대결을 통한 투쟁보다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협력이 훨씬 더 생산적이다. 그것을 통한 생산성의 신장은 세계인의 삶을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할 것이다.

  이처럼 이제 역사는 아와 피아가 협력할 때 더 큰 생산성을 발휘한다.

  단재 역시 이 점을 통찰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러나 그의 앞으로 가리고 있던 그 장벽 곧 일제강점기라는 시대를 극복하자면, 피의 투쟁이 불가피하다고 보았을 것이다. 이처럼 단재 신채호의 역사관은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단재는 단순히 역사관의 정립에만 몰두한 것이 아니라 많은 저술을 통해 민족적 자긍심을 더높이고, 이 땅을 지배할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염원했다. 그런 이유로 그는 ‘조선상고사’, ‘조선상고문화사’ 등의 저술을 통해 민족사를 재정립하고자 했고, 새로운 역사를 이끌어갈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수군제일위인 인순신전’, ‘을지문덕전’ 등의 위인전기를 저술하기도 했다.

  단재의 염원에 힘을 입어 이 땅은 독립과 함께 새로운 역사를 전개할 새시대를 열었다. 불행하게도 그가 염원했던 이 땅의 광복을 그는 끝내 직접 맞이하지 못했고, 1936년 그는 눈을 감고 말았다. 그가 이승을 떠난지로부터 9년 뒤인 1945년 8월 15일 비로소 우리민족은 일제의 압제로부터 독립했다.

  비록 단재는 독립이라는 영광의 순간과 직접 마주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남긴 발자취는 이 땅의 역사가 되어 현대사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의 염원대로 그가 떠난 후 이 땅에 역사를 창조한 수많은 영웅들이 명멸했다. 내가 영웅이라고 표현했지만, 동시대를 살아간 모든 이들이 곧 이 땅의 영웅들로써 역사의 주인이며, 그들의 삶이 곧 역사다.

  우리는 그것을 되새기는 한편 미래의 지평으로 삼는다.

  이런 역사이행과정을 통해 현대사 곧 보통국민의 새시대가 열린 사실을 우리는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시 사회저변에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물론 그것의 지향점은 ‘더 나은 국민의 삶’이다.

  우리사회는 지금 그 영웅들이 남긴 발자취를 어떻게 기술하여 후학들을 가르쳐야 하는 지를 놓고 큰 논란을 벌이고 있다. 바로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논란’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 기저에는 정치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더군다나 이 정치주의는 누가 미래의 국가권력을 장악할 것인가의 문제와 연계 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보수와 진보라는 서로 다른 이념추종세력이 이 땅의 역사를 각기 자신들 나름대로 해석하고자 하는 분열주의가 그 단초다.

  이런 점은 우리사회이 민주적 역량을 시험하는 것으로 다분히 소모적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사회의 민주적 역량을 믿어도 좋다. 좌편향의 교육을 한다고 하여, 교육받는 학생들 모두 좌파가 되는가? 이미 이 땅을 지배하는 주류사상은 이념이 아닌 행동주의로서 자유민주주의다. 이 땅의 모든 국민은 그 바탕위에 서 있다.

그리고 그들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생산성을 신뢰한다.

  그렇다고 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우리 국민의 행복한 삶을 반드시 보장하는 완전한 제도 혹은 도구인가? 내 견해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또한 비교우위가 있을 뿐 완전하지는 않다. 그 때문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또한 보완할 점이 있다.

예를 들면, 개인차에 의해 발생하는 소득격차의 문제를 국민의 자유의지에 맡겨두면, 결코 해소되지 않는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국가의지며, 소득격차 때문에 발생하는 제반 사회문제를 고려하고 그 기회비용까지를 생각하면,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국가의 개입을 통해 해소하는 것이 충분히 더 생산적이다.

  이와 관련해 정의 곧 무엇이 옳은가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점은 국민의 다양한 의견의 수렴을 통해 더 생산적인 방법을 찾아내는 일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 땅의 미래를 위해서는 자라나는 세대인 초중고생들에게 다양한 스펙트럼의 역사교육과 함께 삶의 규범으로서 이념교육을 또한 실시해야 한다.

  이념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의 규범 곧 틀이다. 그 이념을 담고 있는 것이 역사이다. 자라나는 청소년은 미래세대로서 이 규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그들로부터 합리적 경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더구나 자유민주주의는 다양성(多樣性)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 다양성이 압제당하면, 자유민주주의는 그 기능을 상실한다.

  그렇다고 모든 국민이 자유주의를 너무 신봉한 나머지 자유주의에 함몰 되어서도 안된다. 더구나 그 때 그것의 불합리성 곧 부의 집중과 같은 사회적 불평등의 확대를 시정하지 못하면, 국민은 그것에 갇힌 채 살아가야 한다. 그곳은 곧 지옥이다. 다시 말해서 그 폐해는 너무나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배를 곯도록 할 것이고, 더 많은 국민이 충격적 좌절 속에서 자살을 택할 것이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제 사회비용의 크기를 우리는 꼭 염두에 둬야 한다.

  역사란 시대에 대한 기록이다.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실증적 기록이다. 자연히 역사를 바로 기록하고 후대에 전하는 것은 제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역사를 통해 국가적 정체성을 올바르게 확립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런 이유로 역사가 이념에 의해 엇갈리는 등 왜곡되어서는 안된다. 거듭 말하지만, 역사는 실증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기에도 한계가 서리기 마련이다. 역사를 기록하는 글자 자체에 기록하는 자의 관념이 심어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역사를 실증적으로 기록하기란 정말 어렵다.

단재가 역사를 ‘아와 비아와의 투쟁’이라고 규정한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단재 신채호의 역사관에는 식민지배를 당하는 국가의 국민으로서 독립과 애국심이 그 토대다.

  나는 위에서 역사는 실증적 기록을 중시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그것은 단지 역사적 사실만을 기록하는 것은 실록이며, 실록에 덧붙여지는 것이 있다. 그것들이 시대변화에 끼친 영향까지 함께 기술해야 바로소 역사로 완성된다. 즉, 역사는 사실에 대한 단순한 기록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그것이 사회에 끼친 영향까지 함께 기술될 때, 비로소 진정한 역사다.

  이 때문에 역사기술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고, 지금과 같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 또한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초중고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해서 국가의 정체성 확립과 남북통일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야당은 이 같은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주장에 대해 민주적 다양성을 말살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그 같은 주장을 한데는 분열보다는 협력이 더 생산적이는 데에 방점이 찍혀 있다. 다만,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이들의 생각이 이처럼 충돌하고 있는 본질적 이유를 국민은 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것을 충정이라고 말하고 있고,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그 같은 견해를 독재자의 아집이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역사는 단순히 특정인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땅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이들은 이들 소수의 정치인들이 아니라 온 국민이다.

  남북분단을 놓고 보자. 우리 모두 통일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행위야말로 오히려 더 분열적이다.. 지금의 분단은 소수의 사람들이 주도한 제도적 혹은 정치적 압제가 빛는 촌극일뿐이다. 따라서 현재의 분단이 곧 영원한 분열은 아니다. 분단은 역사가 아니라 현실이다. 현실은 묵혀야 역사가 된다. 묵은 역사의 시대에는 분단이라는 말이 사라져 있을 것이다.

  오늘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또한 현실이며, 역사가 아니다. 현실은 조만간 국민에 의해 그것의 옳고 그름이 판단된다. 그 판단을 두려워 하는 측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판단의 시기를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된다. 그 때 비로소 역사가 완성된다. 역사는 국민 삶의 온전한 기록인 동시에 역사철학으로 완성될 때 비로소 국민 삶의 새길을 여는 지평이 된다. 더구나 역사는 정치가나 역사가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다. 즉, 올바른 역사의 기술이란 국민의 의한 역사, 국민을 위한 역사, 곧 국민의 역사여야 한다. 이 때문에 역사는 역사적 사실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반드시 이어진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역사철학 곧 역사 해석이다. 그 중심에 언제나 국민이 서 있다.

  201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