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사람 섬기기를 한울님 같이……”>

지난 4월 5일은 천도교(天道敎, 現 교령 김동환) 창도(創道) 150년이 되는 날이었다. 4월 4일, 5일 수운 최제우의 탄생지 경주에서는 다채로운 기념식이 열렸다. 이틀간 경주시 황성공원 등지와 수운의 탄생지인 현곡면 구미산 기슭 용담정에는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제 2차관, 김관용 경상북도지사, 백상승 경주시장, 이진락 경주시의회 부의장, 이성택 원불교 교정원장을 비롯, 천도교 신도와 시민, 관광객 등 5천여 명이 몰려 수운의 득도 150년과 천도교 창도 150년을 기념했다. 이 날 기념식은 문예대회, 학술세미나, 풍물놀이, 불꽃놀이, 기념 퍼레이드에서부터 동학마임놀이, 손병희선생과 3·1독립운동 퍼포먼스 등 다채롭게 진행되었다. 김동환 교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인류가 물질문명의 병폐에서 살아남을 길은 시천주·인내천 사상”이라며 이 시대에 다시 한 번 절실한 천도교의 종지를 널리 알렸다. “사람 섬기기를 한울님같이 하라”는 말 또한 잊지 않았다.

천도교의 교조(敎祖)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遇, 1824~1864)가 1860년 4월 5일 한울님으로부터 무극대도(無極大道)를 얻은 ‘천일(天日)’로부터 꼭 150년이 되었다. 서른 일곱의 나이에 크게 깨우치고 불과 4년의 짧은 기간 동안 조선땅 구석구석을 온통 동학(東學) 천하로 만들고 나자마자 가차 없이 순교한 세계역사상 전무후무한 각자이자 종교운동가가 바로 수운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한민족 고대정신의 새로운 부활, 天道敎

천도교에서 말하는 수운대신사(水雲大神師)는 1824년 10월 28일 경주의 한 가난한 선비의 집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도를 얻고자 천하를 주유하던 수운은 자신의 처가 동네인 울산에 머물고 있던 어느 봄날 한 신비한 이인(異人)을 만나 천서(天書)를 받게 된다. 천서의 내용은 전하고 있지 않지만, “하늘에 기도를 하라”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천도교에서는 이를 ‘을묘천서(乙卯天書)’라 부른다. 이후 수운은 양산 천성산 내원암과 적멸굴 등지에서 계속 수행을 하였고, 마침내 고향인 경주 현곡면 구미산에 위치한 용담정(龍潭亭)에서 한울님으로부터 무극대도(無極大道)를 받게 되는 결정적인 종교 체험을 하게 된다.
이때가 바로 1860년 경신년 4월 5일의 일이다. 천도교에서는 이 날을 천도교 원년(元年)으로 삼아 ‘천일기념일(天日紀念日)’로 기리고 있다. 수운은 무극대도한 이후 1년여가 흐른 후 1861년 신유년 6월에 비로소 포덕(布德)을 시작한다. 모든 사람이 다 한울님을 모시고 있으므로 양반도 천민도 없이 세상 사람은 근원적으로 모두 평등하다는 ‘시천주(侍天主)’의 가르침은 당시 새로운 질서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적극적인 호응을 얻게 된다. 그러나 결국 줄기찬 관의 탄압으로 무극대도 후 포덕을 시작한 지 3년이 되던 해인 1864년 3월 10일, 수운은 순순히 체포돼 대구 장대에서 좌도난정(左道亂正)의 죄명을 쓰고 참형을 당한다. 서른일곱에 크게 깨우치고 불과 4년만인 마흔 하나의 나이였다. 이후 관의 추격을 피해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등지에서 36년간을 숨어 지내며 포덕을 펼친 해월 최시형(海月 崔時亨)의 피나는 노력에 의해 천도교의 경전인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용담유사(龍潭遺詞)’가 세상에 나왔고, 이 때 또한 수운의 가르침은 갑오동학혁명이라는 새로운 운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수운의 죽음 이후 41년만인 1905년 12월 1일 의암 손병희(義菴 孫秉熙)에 의해 수운의 가르침은 ‘천도교’라는 이름으로 온 천하에 선포된다. 일제 치하 당시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15명이 천도교인이었을 정도로 천도교는 한민족 최대의 민족종교였다.

천도교는 어느 날 갑자기 수운 한 사람의 무극대도에 의해 생긴 종교가 아니다. 농경중심의 왕권국가였던 중국과 달리 아득한 옛날부터 우리 한민족은 천제(天祭)를 드리던 신권국가였다. 단군의 홍익인간 사상은 삼국시대에 대륙의 유불선 사상이 들어오기 전부터 한민족의 뿌리 깊숙이에 숨 쉬고 있었던 한민족의 천도(天道)였다. 이러한 유구한 전통신앙 속에서 당시 조선조 말 유교의 쇠퇴와 사회의 부패, 그리고 서구 열강의 침략이라는 극도의 혼미한 시대적 상황은 다시금 우리 한민족 안의 천도를 일깨우게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한울님의 도가 다시 우리에게로 내려오게 된 것이다. 이것은 우리 한민족만의 살아있는 고대정신이자 주체적인 행동이었다. 수운에 의해 우리 민족의 옛 정기는 근대에 새롭게 살아 숨 쉬는 새로운 신념체계와 사회질서로서 부활하게 되었던 것이다.

‘시천주(侍天主)’, “무궁한 이 울 속에 무궁한 내 아닌가”

천도교의 종지인 ‘인내천(人乃天)’, 곧 “사람이 이에 한울님”이라는 뜻은 수운의 가르침인 ‘시천주(侍天主)’, 즉 “내 몸에 한울님을 모셨다”는 뜻에 그 연원을 둔 것이다. 한울님은 기독교의 유일신처럼 인격적인 어떤 존재가 아니다. 바로 우리 몸 안에 모셔져 있으며, 동시에 이 우주에 편만되어 있는 한 울 안의 도(道)이다. 용담유사와 흥비가에 보면 일찍이 수운은 “무궁한 이 울 속에 무궁한 내 아닌가”라고 노래하고 있다. 수운이 노래한 ‘울’이 크게 보아 우주 자체, 작게 보아 사람의 마음 안이라면, ‘한울님’은 천국과 지옥을 심판하는 기독교의 한 신이 아닌 울 자체, 우주 자체, 사람 자체, 세상 그 자체이다. 모든 것이 한울 아님이 없다. 해월은 “저 나무 사이에서 울고 있는 새소리 역시 시천주”라며 가르침을 폈다. 여기까지 볼 때 천도교의 신관이 기독교의 단순한 초월적 신관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모두가 신이라는 것에서 끝나는 합일적인 내재적 범신론 또한 아니다. 천도교는 거기서 한 발짝 더 들어간다.

천도교의 경전에서 우주를 나타낸 말이『용담유사』「흥비가」중에 나오는 “무궁한 이 울”이라는 것이다. 천도교의 ‘한울님’의 시작인 이 뜻은 “무궁하고,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한 이치”에 관한 것이다. 이 무궁하고 시작과 끝을 알 수 없게 우주를 이루게 하는 이치가 바로 우리가 모셔야 할 한울님이다. 한울님은 믿고 빌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 모시고 깨우쳐야 할 것이다. 이 한울님은 무궁하고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이치이기에 삼라만상을 존재케 한 하늘의 유일한 신이 아니라, 삼라만상에 언제나 편재되어 있었던 그 편재함 자체다. 그래서 그 이치인 한울님은 동시에 모든 존재 자체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모두, 인간과 자연과 우주와 모두는 “한울님 안에서” “한울님으로서” “한울님이 되는 것”이고,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무궁한 한울님이기에 한울님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수운은『동경대전』「논학문」에 있는 주문(呪文) 21자를 해의(解義)하면서 오직 ‘한울님’에 해당되는 ‘천(天)’에 대하여서만은 그 해의를 유보하고 있다. 고타마 싯다르타에 관하여 전해지는 한 일화를 보면 싯다르타는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은 직후 자살하려고 했었다고 한다. 그가 깨우친 바를 도저히 사람의 언어로 전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운 또한 용담정에서 일어난 경신년 4월 5일의 깨우침을 통해 받은 21자 중 ‘천(天)’만큼은 사람의 언어로 그 스스로의 깨우친 바를 어떻게 전할 수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울님의 뜻 안에는 그 자체적으로 우리 모두 한울님일 수 밖에 없고, 그리고 앞으로도 무궁히 한울님이 되어 갈 수 밖에 없는 자명한 사실이 한울님처럼 존재한다.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이에 한울님”

인류 역사상의 모든 종교는 언제나 그 내세관을 젖줄 삼아 생명을 이어왔다. 비록 싯다르타가 최초로 기존의 신관과 내세관을 뒤엎는 인간 내면의 영원한 우주적인 본성을 깨우쳤다 하더라도, 이후 불교는 또 하나의 내세적 종교로 섞인 지 오래다. 그러나 천도교의 신관과 우주관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유일신관과 이분법적 내세관을 벗어던진 종교의 혁명을 가져왔다. 이것이야말로 인류 최초의 종교혁명이다. 현세와 내세는 절대적인 한 신에 의해 따로 만들어진 결과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한울님으로서 한울님이 되어가는 과정의 일환이며, 한울님으로서 한울님이 되어가는 똑같은 삶의 이치다. 여기서 천도교의 신관과 우주관, 그리고 사후관은 궁극적으로 새로운 인간관으로 자연스레 태생된다. 바로 한울님으로서 인간이 주체가 되고 인간이 스스로 신의 정의를 새롭게 쓰는 ‘인내천(人乃天)’, 곧 “사람이 이에 한울님”인 것이다. 이 ‘인내천’ 안에는 모든 인류 역사의 종지부를 찍고 다시 모든 인류 역사를 새롭게 쓰는 인류 역사의 위대한 여명이 들어 있고, 동시에 새로운 한울님이 이미 들어와 있다. 어리석은 인간이 교만하여 신의 화를 자초한 기독교의 옛 바벨론 신화는 진실로 기우일 뿐이다. 모두가 한울님이기에 모두가 평등하고, 또 모두가 한울님이 되어 가기에 모두가 조화로울 뿐이다. 또한 거기에는 인간을 비판할 신 또한 없다.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무궁한 이치인 한울님이기에 그저 그 이치인 한울님 자체로 존재해 왔고, 지금도 존재하며,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인간은 이제 한울의 가르침을 따라 저마다 한울님으로 따로 또 같이 성장해 궁극의 이치인 한울님을 다시 새롭게 만들어 갈 것이고, 그 안에서 또 다시 한울님으로 저마다 존재해 나갈 것이다. 새로운 질서는 그렇게 계속된다.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히, 무궁히 말이다.

천도교 150년을 맞은 오늘의 의미

올해는 우리나라 최대의 민족종교이자, 세계최초의 ‘인간종교’인 천도교가 창도 150년이 되는 해이다. 김동환 교령은 말한다. “현재로서 인류를 살릴 방안은 없다. 인류가 살 길은 오직 천심으로 돌아가는 것 뿐이다. 사람 섬기기를 한울님같이 하라. 평등의 예우를 잊지 마라”고. 나아가 김동환 교령은 “세상을 살리는 것은 천도교 뿐”이라고 말한다.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 나라의 절체절명의 위기와 절망 속에서 분연히 일어나 인간세상을 구하고 홀연히 사라진 한 예지인이 있었다. 오늘날 세계자본주의와 시장경제는 이제 더 이상 인류의 살아갈 바에 대해 올바른 길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스스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이러한 때에 천도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흐려지고 있는 한민족의 정신을 심어주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이 잊어서는 안 될 정신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동학 정신이다. 동학 정신이야 말로 약육강식으로 변해가는 이 나라를 천심으로 돌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고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동귀일체가 되게 하는 수단이 될 것임이 틀림없다. 천도교 150년을 맞은 오늘이야말로 진실로 ‘인내천 한울님’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