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비보를 듣고 순간적으로 노 전 대통령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장난질치는 게 아닌가 하면서도 하지만 곧, 세(勢)를 형성하지 않고 정도(正道)로 국면을 타개하려 노력했던 노 전 대통령 입장에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설핏 들었다. 

루머로 여겼던 노 전 대통령의 사망소식이 현실화 되면서 세인들의 입에서 고인의 명복을 빌기보다는 두 가지 뚜렷한 관점에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하나는 부딪혀 조금만 고생하면 사면될 것을 왜 대통령이나 한 사람이 그래야 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었고, 두 번째는 군인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보다 대가 세지 않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자질이 없는 사람이 대통령이 된 게 아니냐는 의견이었다.

노 대통령의 현임시절엔 TV에 나오는 것조차 뵈기 싫다며 바로 TV룰 끄고 도외시함은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함자를 빌어 ‘놈현’이라고 빗대어 쌍욕하길 하루 이틀이 아니었던 TK의 지역정서다. 그렇지만 대통령에 대한 비칭(卑稱)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 한 가지 사실을 놓고 봐도 탈 권위를 위해 노력했던 노 전 대통령의 업적은 가름이 되고도 남는데 참으로 우이독경(牛耳讀經)이다.

서거한 대통령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증명하려 했다. 무릎 꿇느니 서서 죽겠다는 지난 민주항쟁 시절의 정신으로 그는 스스로 목숨을 거두어버렸다. 그런데 자연인 노무현이 아니라 전직 대통령이라는 특수신분에 있으면서 왜 자살의 길을 가야 했을까?

문제는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보수파의 역사인식에 있다. 보수 인사들은 건국 이래 6.25로부터 조국을 지켜냈으며 경제개발을 주도했다는 자긍심으로, 나날이 다변화되어가는 글로벌 시대의 이념까지 보수라는 이름으로 지켜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또한 그들은 국가와 조국, 그리고 민족의 개념보다는 지극히 유교적이게 느껴지는, 더 심각하게는 ‘우리’라는 집단 이기주의적 의식을 정치이념화 하여 조직적이고도 적극적으로 노 전 대통령 흠집 내기에 일관하느라 바빴다. 그들의 우리가 아니면 적이 되고 마는 철저한 이분법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의미에서 “정치보복이다, 정치 살인이다”라는 소리까지 들린다.

더군다나 고슴도치도 제 살(肉) 친구가 있다는데 정치적 동지와 친구, 식구까지 줄줄이 수감되어야 하는 현실 앞에 전직 대통령이라는 위신을 대변하기조차 여의치 않았음은 자존심의 무참한 붕괴를 가져왔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완전 중립을 선언하고 나름 흠결 없는 자연인으로 향리에 돌아가 편히 살기를 원했지만 세상은 그를 곧이곧대로 놓아두질 않았다. 어쩌면 지난날 권력의 무딘 칼을 휘두르는 것을 극도로 자제했던 노 전 대통령이 뒤늦은 자괴감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했던 건 아니었는지 고개를 갸웃해 본다.

한편, 국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불도저 식 밀어붙이기로 경제는 물론 국정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 욱일승천하는 대한민국 시대를 활짝 열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며 조금씩 실망이 늘어가는 추세다.

지난 정부의 도덕성 흠결을 통해 현 정부의 비전을 거양(擧揚)시키려 하기보다 정치적 화해와 당파를 초월한 협력을 도모했더라면 한나라당 내부의 내분에 가까운 힘겨루기도 없었을 것이고 더욱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도 없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노 전 대통령은 가고 노 전 대통령의 비운을 안타까워하는 국민들의 눈은 권력기관과 한나라당에 쏠려있다. 비주류에 휘둘리는 한나라당의 주류들이 수세적 입장에 있기는 하지만 원내대표 선거에서 보았듯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권력은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책임을 이명박 정부에게로 일순간에 전가(轉嫁)시키고 말았다.

자칫 대처에 미온적이거나 고인의 업적을 깎아내리려 하다가는 심각한 국론분열에 따른 파국(破局)이 올 수도 있다. 그 기회를 틈 타 어부지리(漁父之利)를 노리고 더욱 혼란을 부추기거나, 자신들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뒤에서 숨어 무언가 획책하는 세력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특히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 주류들의 모양새가 나빠진다고 해서 한나라당 비주류와 야당의 모양새가 좋아지는 것으로 정치인이든 정치에 관심 많은 국외자(局外者)이든 착각해서는 안 될 것이며, 노 전 대통령을 잃은 원망과 분노 그리고 허탈감을 마음속 깊이 새겨 가신 분의 고귀한 정신을 기려야 할 것이다. 

말로 다할 수는 없지만 눈 뜨고 제 살이 파 먹히는 것 같은 아픔과 충격을 이겨내고 이명박 대통령은 이제라도 내려놓을 건 미련 없이 내려놓고 자신의 길을 홀로 가야 한다. 아울러 노무현과 이명박 두 대통령을 놓고 후세수칭(後世誰稱) 누가 나은 대통령이었다고 평가를 할까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보다 나은 다음 정권을 들어서게 하고 대한민국을 반석 위에 올리는 길이라고 믿는다.

끝으로, 가뭄으로 말라터진 논바닥 같은 마음, 비바람 몰아치는 텅 빈 벌판에 홀로선 소나무 같은 마음이었을 노 전 대통령께서 어두운 그림자 같았던 마음의 짐을 훌훌 벗고 특유의 너털웃음을 껄껄 웃으시며 승천하시길 삼가 고인의 명복과 함께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