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종교지도자대회가 막을 내린지 90여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주최 측과 대순진리회 여주본부의 담합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 이에 대한 진상규명이 시급하다.
만해사상선양회(총재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 이하 만선회)의 주최로 "종교화합, 세계평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거시적인 슬로건을 내걸고 지난 6월8일부터 14일까지 개최된 세계종교지도자대회는 대순진리회의 잔치판으로 퇴색해 이를 지켜보는 종교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했다.
문제의 발달은 대회의 정통성 여부를 놓고 사법권의 판결을 기다리는 대순진리회의 여주본부만 단독으로 참여시켜 분쟁 중인 종단의 한 개 파에 손을 들어주면서 시작됐다.
대회가 열릴 당시 대순진리회는 중곡동본부와 여주본부가 나뉘어 직무정지 및 명의사용가처분(2004.8.19. 서울 고등법원 제30 민사부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이 전개되고 있고, 대푶자지위확인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계류 중인 상태였다.
세계종교지도자대회 준비위원회(위원장 연기영, 이하 준비위원회)가 대순진리회 여주본부의 참여를 결정함에 따라 여주본부는 공식적으로 '대순진리회' 명칭을 사용할 수 있었고, 여주본부 정대진'종단 대순진리회 중앙회 의장 선감'이라는 호칭을 쓸 수 있었다. 이는 행사 시 발간된 책자에도 명기돼 있다. 또한 대회 개막식, 학술대회, 폐막식 등 행사장마다 여주본부 신도가 대거 참석하는가 하면, 종교성지 순례 일정 중 대순진리회 여주도장 참관이 포함돼 있어 여주본부가 사회적으로 공인을 얻는 결과를 초래했다.
여주본부 참여와 관련 연기영(동국대 법학과 교수) 준비위원장은 "세계종교지도자대회 기원법회가 열린 직후인 5월 중순경 여주본부 측에서 참여의사를 밝혀와 후원금 지원과 인원동원을 약속받고 행사에 동참시켰다"며 "처음에는 대순진리회가 분쟁중인 사실을 몰랐으나 나중 소문을 듣고 알았고, 네이버 검색을 해보니 전개되고 있는 재판이 사법이 아니라 민법관련이어서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행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홍재 집행위원장이 먼저 여주본부 측에 행사참여를 제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양측의 만남을 주선한 이는 윤원호 열린우리당 의원이었다는게 행사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행사 주최 측과 대순진리회 여주본부의 담합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는 후원금에 대해 이견을 보였고, 행사장 의전에서 정대진 의장이 가장 노른자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연기영위원장은 대순진리회 여주본부터 3억원의 후원금을 받았고 주
장했지만, 여주본부는 공식적인 지원 사실을 부인했다.
대순진리회 여주본부 송현섭 보정은 "정대진의장 개인이 준 돈은 있을지 몰라도 대순진리회 여주본부가 공식적으로 전달한 후원금은 없었고, 개인적으로 준돈은 대외적으로 밝힐 수 없다"며 "공식적으로 후원금을 준 적이 없기 때문에 행사비 내역에 대한 감사도 필요 없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이와 관련 대순진리회 중곡동본부 법무팀은 "명의사용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인 상태에서 세계종교지도자대회 주최 측이 여주본부만을 단독으로 참여시키고, '대순진리회' 명의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한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개인적이든 공식적이든 여주본부가 대순진리회 명의로 세계종교지도자대회 준비위원회에 후원금을 준 것도 명백한 월권행위"라고 비판했다.
후원금 지원과 관련 이견을 보인 것은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뿐만이 아니다. 준비위원과 사무국 관계자들은 (재)용화미륵선도 김찬성 회장도 후원금으로 1천5백만원을 지원했다고 밝혔지만 연 위원장은 이를 전면 부인하다, 일부 몇백 받았다고 말을 번벅하고 있다.
(재)용화미륵선도의 행사참여는 어떤 공식력 있는 단체에도 등록돼 있지 않은 군소종단의 참여라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김찬성 회장은 원래 대순진리회 선감으로 활동하다가 1999년(재)용화미륵선도를 창종했다.
대회 이 후 김찬성 회장은 대회관계자 이모교수가 몽골에 명예박사학위를 받게해 주겠다고 하여 몽골에 동행하는 일도 있었다.
대순진리회 여주본부 정대진 의장은 행사의 개막식은 물론이고 많은 행사장에서 대회장인 지관스님의 옆에 앉아 준비위원회와 여주본부의 유착관계 의혹을 더욱 가중시켰다. 종교성지순례 중 연 위원장이 정 의장의 차에 장시간 탑승한 것도 의혹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다.
대순진리회 여주본부의 참여가 확정되면서 대회가 엉망진창이 돼버렸다는게 행사 관계자들의 평가이다. 준비위원회가 (사)종교지도자협의회(이하 종지협) 쇼ㅏㄴ하 7대 종단에 행사 협조를 요청한 시기는 개막식을 목전에 둔 5월 10일부터 20일까지이다. 준비위원가 뒤늦게나마 이들 종단에 공문을 방송한 것은 대순진리회 여주본부의 참여 독려를 위해 연 준비위원장은 지원스님을 찾아갔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지관스님이 종지협 회장이었고, 지원스님이 운영위원장 소임을 맡고 있어 조계종의 입김이 어느 정도 작용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7대 종단 대표 중 행사에 참여한 이는 지관스님을 제외하면 최근덕 성균관장뿐이다.
한국기독교연합회.천주교주교회의.원불교.천도교.한국민족종교협의회의 공식대표들은 행사기간 내내 얼굴조차 비추지 않았다. 비록 함세웅 신부와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 박경조 주교.박원근 한국기독교 장로회 총 회장.박종화 목사 등 불교계 밖의 인사들이 행사장에 모습을 보였다고는 하지만 이는 종단차원이 아니라 개인적인 차원의 참석이었다.
특히 14개 민족종교단체의 모임인 한국민족종교협의회(회장 한양원)는 산하 이사회에 대순진리회 중곡동본부 대표인 이유종 종무원장이 이사로 등록돼 있어 불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한국민족종교협의회와 대순진리회 중곡동본부는 준비위원회로부터 행사관련 문의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행사취지를 얼마나 살렸는가 하는 것도 세계종교지도자대회의 문제점 중 하나이다. 지난해 열린 세계시인대회의 경우 노벨문학상 수상자 월레 쇼잉카.미국 계관시인 로버트 핀시키 등 세계시인 1백 10여명이 세계평화와 남북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금강산까지 방문합으로써 행사의 본래취지를 다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거창한 이름에도 불구하고 세계종교지도자대회에는 세계종교계를 대표할 만한 인물은 고사하고 국내종교 대표자조차 참석하지 않았다.
만선회의 주최로 잇따라 열린 두 행사가 평가의 극단을 달리고 있는 이유는 행사준비 관계장의 역량과 준비과정의 노력여부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세계시인대회의 경우 2년 동안의 준비기간과 1년 동안의 참석자 섭외기간을 거쳤고, 예산집행에 있어서도 회계담당을 따로 둠으로써 재정의 투명성을 확보했다.
반면 세계종교지도자대회는 올해 2월에서야 사무국이 꾸려졌고, 국내 종교단체의 공동주최여부를 놓고 시간을 낭비하다가 개막식이 눈앞으로 다가온 5월 중순경 만선회 단독 주최 결정을 내렸다.
많은 성직자나 종교학자를 제쳐두고 상업인인 들뫼바다 대표 이홍재씨가 집행위원장직을 맡은 것과 연기영 준비위원장의 단독적인 결정에 의해 행사전반이 좌지우지된 것도 납득이 안가는 대목이다.
준비가 미흡하다보니 대회는 졸속운영의 비판을 면치 못하게 진행됐다. 외국 종교지도자들이 축하 메시지를 발표할 때 동시통역이 이루어지짖않았고, 학술대회 자료집의 번역도 엉망이었다.
연 위원장의 독주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준비위원회는 물론이고 세계종교문화연구원.아시아태평양교수불자연합회 등 대회에 깊숙히 관여한 단체들의 회장 및 대표직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행사의 준비를 맡은 준비위원회 위원은 연기영 준비위원장을 비롯해 김용해 동국대교수.동국대 정각원장 진월스님.이치란 불교문화연구원장.최용춘 상지대 교수.변진홍(KCRP 사무총장) 목사.연규홍 한신대 교수 등 총 7명이었으나, 행사계획부터 집행까지 연위원장의 독단적인 결정에 따라 진행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 진월스님은 "대순진리회 여주본부의 참여 여부는 준비위원회 회의에서 결정된게 아니었다"며 "뒤늦게 통보형식의 말을 듣고 대순진리회 여주본부의 참여계획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의혹으로 점철된 가운데 행사가 끝을 맺다보니 재정 감사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는 높아만 가고 있다.
권영민(서울대 교수) 전 세계시인대회 준비위원장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시인대회의 총 예산이 6억원이었던 것으르로 집계돼, 세계종교지도자대회의 효율적 예산집행에 대한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세계종교지도자대회의 공식적인 행사비용은 서울시 5억원. 강원도 인제군 1억원. 만선회 3억5천원. 대순진리회 여주본부 3억원 후원 등 총 12억 5천만원 이다. 이중 시드머니인 만선회 후원금 3억 5천만원을 제외한다 해도 세계종교지도자대회의 예산은 세계시인대회보다 월등히 많은 금액이다.
특히 세계종교지도자대회는 국민의 혈세인 국고보조금이 투입됐고, 행사관계자들조차도 '공식적인 후원금'과 '비공식적인 후원금'을 나눠 생각할 정도로 재정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관계자들에 대한 대질심문을 통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세계지도자대회가 남긴 가장 큰 문제점은 향후 세계종교의 화합이라는 명목 아래 종교단체와 대회주최 측의 담합을 낳을 수 있는 근거를 남겼다는 것이다. 연기영 교수는 지난 6월5일 설립한 (사)세계종교문화연구원의 명의로 향후 격년제로 '서울포럼'이라는 제목으로 세계종교지도자대회를 열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사)세계종교문화연구원의 주소지가 만선회 만해마을에 위치해 있어 대외적으로 불교계 단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고, 단체의 이사 중 대순진리회 인사도 포함시킬 계획이어서 '서울포럼'은 세계종교지도자대회의 재탕이 될 것이라는 걱정을 낳고 있다. 불교계로부터 왜색불교라고 비판받는 SGI와 기독교계로부터 이단이라고 비난받는 통일교를 서울포럼에 참가시키겠다는 게 여 교수의 계획이다. 이들 종단들은 국내 종교계로부터 외면 받고 있는 상황인데다가 막대한 재력을 자랑하는 종단이어서 얼마든지 주최 측과의 유착관계가 가능하기 때문에 대회에 대한 철저한 감사가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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