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을

비는 겨울을 데리고 왔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지만 물리칠 수는 없다. 싫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손님이다. 더위는 그런대로 견딜만한데 추위는 겁부터 난다. 해가 쌓여질수록 따뜻한 것이 좋아진다. 그만큼 삶에 대한 활기가 줄어들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삭풍은 생각만하여도 몸을 움츠려들게 한다.

▲ 화려한

“야 ! 예쁘다.”
짧아진 겨울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다. 구름 사이로 해님의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해넘이의 화려한 색깔이 황홀하게 빛나고 있다. 자연의 위대한 힘을 실감하게 된다. 자연이 아니라면 어찌 저리 곱게 장식할 수 있단 말인가. 서쪽 하늘에 그려진 해님의 그림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 지혜

밤이 되니, 신호가 온다. 몸과 함께 한 세월이 많아지니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이상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 지체하지 않고 준비되어 있는 상비약을 먹었다. 가볍게 생각하고 장량의 반만을 먹었다. 예방차원에서 먹었으니, 반만으로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것이다.

▲ 고통

세상에 쉬운 일이란 없다. 교만한 마음이 앞서다 보면 낭패를 보기 일쑤다. 그런 경험이 많으면서도 실수를 반복하는 것을 보면 어리석다하지 않을 수 없다. 약을 먹었으니 괜찮을 것이라고 믿고 있던 마음에 경고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몸은 나의 허점을 알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 자유

시나브로 밀려오는 통증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밀려오는 통증은 다리를 움직일 수조차 없게 만들었다. 어느 쪽으로도 움직이기만 하면 고통이 밀물되니, 죽을 맛이었다. 어찌나 참기가 힘들었는지 신음소리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주체하기 어려운 통증으로 인해 온 몸에서는 식은땀을 배어나오고 있었다.

‘몸이 아픈 것이지, 내가 아픔 것이 아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처님께서는 無我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라고 하는 존재는 원래 없는 것이라고 하였으니, 느끼고 있는 통증 또한 허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니, 통증을 견디는데 조금은 힘이 되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극복하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통풍을 앓아온 지가 오래 되었다. 통풍이란 병은 바람만 불어도 아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혈액에 요산이 쌓여서 신경을 압박함으로 발생하는 병이다. 바른 생활을 하지 않으면 어김없이 나타난다. 거짓말을 할 수 없다. 특히 식생활에 조금이라도 방심하게 되면 어김없이 나타는 것이다.

밤새 고통 속에서 헤매다가 날이 밝았다. 통증이 조금 잦아드니, 살 것 같았다.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있으니,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다 감사하기만 하다. 아픈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나아가서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하니 말이다. 병으로 고통 받은 사람의 눈에는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큰 축복을 받고 있는 것인지를 실감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숨 쉬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된다. 아프면 평상시에 할 수 있었던 일들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장애 없이 걸어가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알게 된다. 행복은 바로 평범한 일상에 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이런 깨달음을 주는 병이 얼마나 고마운가.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할 일이다.<春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