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해운대의 콘도가 낯설어서도 이겠지만 파도 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잡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쉴 사이 없이 미려왔다가 사라지는 물보라를 바라보면서 하염없이 까만 밤을 새우고 말았다. 눈이라도 내렸더라면 좋았을 것을 가로등에 비친 파도는 하얀 포말만을 앞세울 뿐이었다.
▲ 길
비가 내리는 해운대의 하룻밤은 길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출발점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 걸어가고 있는 길 그리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생각하였다. 이렇게 생각해보아도 답은 보이지 않고 저렇게 접근해보아도 그 결과는 마찬가지다. 바다가 희미한 어둠 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아리송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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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된장국으로 아침을 먹고 양산 통도사로 향하였다. 겨울비가 마음을 을씨년스럽게 만들었다. 겨울에는 눈이 제격인데 비가 내리고 있으니 마음을 가라앉게 만들었다. 비 사이를 한 시간 여 동안 달리니 울창한 소나무가 반갑게 맞이해준다. 소나무의 갈라진 껍질이 세월을 말하고 있었다.
불보사찰 통도사.
불법승 3 보 사찰 중의 하나인 통도사다. 합천 해인사의 법보 사찰, 순천 송광사의 승보사찰과 함께 통도사는 불보사찰이다. 부처님 진신 사리를 모시고 있어서 적멸보궁에는 부처님 형상은 없다. 부처님이 바로 마음 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신 사리 앞에서 참 나는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본다.
▲ 앎
통도사 대웅전미 금강계단은 국보 290호다.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시고 있는 곳이어서 그런지 몸과 마음이 저절로 숙연해진다. 내 안의 나가 어디에 있는지 불을 밝혀본다. 금강계단을 돌아서니 보물 471호인 봉발탑이 마음을 잡는다. 미래에 다가올 부처님을 위하여 발우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법정 스님의 말씀이 생각이 난다. 깨어 있는 삶은 지혜로 살아가는 삶이다. 지혜는 알고 있는 걸어가는 길이다. 법정 스님은 진정한 앎이란 자신이 스스로 체험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내 안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세상을 직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앎으로 살아간다는 뜻일 것이다.
▲ 삶의
길
비오는 통도사에서 길을 생각하였다. 과거의 영원함과 영원한 미래가 겹쳐지고 있는 길을 걸어가고 있다. 향이 배어나는 적송을 뒤로 하고 나서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파도가 마음을 무겁게 잡고 있었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무게를 가져가버렸다. 하늘을 바라보니, 언제 비가 왔느냐하는 듯이 파란 하늘이 웃고 있었다.<春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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