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렸다. 첫눈이 내리는 날(12월 2일) 눈을 찾아 달렸었다. 전주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었지만 전북 순창군 강천사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 것도 함박눈이. 금방 주변의 세상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였다. 자연의 위대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 누가 온 누리를 한 순간에 바꿀 수가 있단 말인가. 자연 말고는 불가능하다.
사람의 마음이란 그렇게 약할 수가 없었다. 눈을 찾아 나선 길이지만 정작 눈이 엄청나게 내리고 있으니, 두려움이 앞선다. 지난날의 경험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었다. 작년의 폭설(2005년 12월 4일)로 고창에서 전주에 오는데 10 시간이 걸렸던 기억을 되살리고 있었다. 걱정이 시작되니, 걷잡을 수가 없었다.
낭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다. 즐거워하는 마음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푸른 소나무 위에 내리는 눈의 모습도 조금도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두려운 마음이 생기기 전에는 그렇게 마음을 들뜨게 만들던 풍광들이 갑작스레 바뀌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것이 바로 마음이란 것이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빨간 단풍잎에도 하얀 눈이 쌓이고 있었다. 가을에 겨울이 겹쳐지고 있으니 묘하였다. 마음에 불안함이 없었다면 그 것에 취해 감동을 주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감동은커녕 오히려 위기의식만이 몸과 마음을 서두르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성적으로 그럴 이유가 없다고 부정해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스트레스와 스트레인.
자극이 되는 일상의 모든 것들은 스트레스가 아니다. 그 것은 스트레스의 원인이 될 뿐이다. 즉 일상의 일들은 스트레스가 아니라 스트레인인 것이다. 스트레인이 스트레스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스트레인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스트레인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대하게 되면 스트레스는 존재하지 않지만, 부담으로 다가온다면 스트레스가 되는 것이다.
오관을 통해서 감지되는 바깥세상의 일들이 내 안의 마음과 일치가 되면 감동이 된다. 외부의 자극과 내부의 반응이 일치되는 현상을 내적참조체제라고 한다. 행복해지기 위한 선결 조건이기도 하다. 자극을 받는 것으로부터 감동을 받게 되면 그 사람은 언제나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강천사에 내리는 첫눈도 바로 자극이다. 소나무에 쌓이고 있는 정경이 내면의 마음과 일치를 이루고 있을 때에는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안의 마음이 걱정과 불안으로 흔들리게 되자, 그 평형 상태가 깨져버렸다. 동시에 감동도 사라지고 내리는 눈은 스트레인에서 스트레스로 전환된 것이다.
내리는 눈은 같다. 감동으로 느껴지던 때와 스트레스로 변한 상태에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직 마음이 달라진 것일 뿐이다. 하얗게 변한 소나무들을 바라보면서 행복이 무엇인기를 깨닫게 된다. 행복은 다른 사람이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임을 알게 된다. 첫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다. 그 속에서 여러 생각을 하면서 한참 동안을 서 있었다.<春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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