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바다 앞에 서 있으니 정지되었다. 착각인 줄은 알지만 그림이 되어버린 느낌을 지워버릴 수 없다. 하늘과 바다가 딱 붙어 있다. 그 것을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도 동시에 그 속의 하나가 되어버린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밀려오는 파도가 없었다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기 어려웠을 것이 분명하다.
멀리 서 있는 등대를 바라보면서 동적인 것과 정적인 것을 생각한다. 움직이는 것은 그 것대로 아름다움이 있고 움직이지 않는 것은 또한 그 것 나름대로의 미가 있다. 이 둘이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시너지 효과를 발생한다. 등대와 느릿느릿 움직이는 바닷물이 하나가 되어 차분함이 돋보인다. 조급함이나 성급함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돌아다본다. 걸어온 길을 관조해본다. 떠오르는 생각은 온통 분주함이다. 어디에서 시작하여도 마찬가지다. 종종걸음을 쳤고 밀리면서 살아왔다.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급하게만 달려왔다. 단조로운 일상이었지만 쉬지 않고 밀려오는 일상의 파도를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헐떡거리고만 있었다.
속전속결.
내가 원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말았다. 아니 살아남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원하지 않았지만 빨리 해치우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었다. 그렇게 점점 길들여졌고 결국은 그 것이 온 몸에 배어버린 것이다. 습관으로 자리를 잡아버린 것이다.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서둘렀을까. 나 자신을 위하여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빨리빨리’ 병을 고치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먹고 마시는 일 그리고 행동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조급하게 달리기만 하였다. 목적의식은 물론 없었다. 그렇게 움직이는 것에 대해서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인생의 길, 그 끝은 어디일까?
과정은 다양하겠지만 살아 있는 생명 모두의 끝은 같다. 그 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죽음이다. 그 길이의 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다. 속전속결의 태도는 더 빨리 죽어가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화살처럼 달리는 세월을 원망하면서도 왜 나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등대와 바다는 빠르지 않다. 파도 또한 서두르는 법이 없다. 하얀 포말이 없다면 바닷물은 아예 정지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보단 많은 나이가 되니, 느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절감한다. 음미하고 반추하면서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 얼마나 큰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삶과 죽음도 결국 내 안의 문제가 아닌가. 가능하면 천천히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아야 하겠다.<春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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