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가을을 아쉬워하는 마음이 모아진 물방울이 반짝인다. 속까지 훤히 들여다보일 뿐만 아니라 그 영롱함이 우뚝하여 바라보는 이의 시선을 잡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속절없이 사라지는 세월 속에 위안을 받을 수 있다. 무심한 세상에 텅 비어버린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힘이 느낄 수 있다.
통도사의 절은 꽉 차 있다. 세상에 알려진 사찰의 명성에 걸맞게 전각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입구의 부도전만을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종루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건물들이 빼곡하게 차 있다. 웅장하고 장엄한 모습에 저절로 몸이 숙여진다. 찾는 이의 마음을 압도해버린다.
통도사는 불보사찰이다. 대웅전에 부처님이 모셔져 있지 않다.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사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각들로 꽉 차 있는 것에 반하여 부처님을 모시고 있지 않으니, 대조를 보인다. 있음과 없음의 조화라고나 할까. 모든 것이 비어 있음을 강조한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諸法無我)
대웅전의 텅 비어 있는 곳을 바라보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 것도 같고 그렇지 않은 것도 같다. 잡념을 없애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가 하는 수련이고 잡념이 잡념이란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참 수련법이라고 하였던가. 텅 비어 있는 허공을 바라보면서 손에 잡힐 듯 하다 멀어지는 진리가 안타깝게 만든다.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자비다. 자비는 사랑이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근본 요소다. 사람이 사람다워질 수 있는 까닭은 바로 사랑을 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하지 못해 초조해하고, 사랑에 젖어서는 사랑이 사라질까봐 노심초사한다. 사랑하는 이는 사랑을 지키기 위하여 몸부림을 치고, 아직 사랑을 얻지 못한 사람은 사랑을 찾아 울부짖는다.
울고 웃는 사랑은 무엇일까. 프롬은 사랑을 절대자의 분여라고 하였다. 의지와는 상관이 없다는 의미다. 사랑은 활화산처럼 분출하는 감정을 은은하고 부드럽게 만들 수 있는 온유의 힘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참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어도 사랑이 존재하면 인정하고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섬새하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하여도 놓치는 법이 없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까닭이다. 터질 것 같은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미세한 것을 상세하게 수용할 수 있는 힘이다. 사랑은 자유다. 사랑은 모든 것을 허용한다. 용서하지 못할 것이 없고 구속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파란 하늘을 날아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다.
통도사의 단풍잎에 걸린 물방울의 영롱함에서 사랑을 본다. 섬세함을 발견할 수 있고 자유를 찾을 수 있다. 사랑한다는 이름으로 구속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사랑은 간섭이 아니다. 사랑은 온유이며 경이로움을 창조하는 바탕이다. 투명함에 배어 있는 세상에 빠져들고 있었다.<春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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