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자락에 서니 자꾸만 뒤를 돌아다보게 된다. 허전한 마음을 주체하기 어려워 길을 나섰다. 가까운 모악산의 산모퉁이에 위치하고 있는 귀신사를 찾았다. 귀신이라고 하면 쉽게 죽은 혼백을 떠올리는데, 그런 뜻은 아니다. 돌아올 귀(歸) 믿을 신(信)을 쓴다. 인생을 나타낸 것이란 생각이 든다. 떠나면 분명히 돌아와야 하니까.
대적광전.
보물 제 826 호다. 얼마 전까지 보수 공사를 위해서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는데 말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마음을 꽉 잡는다.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는 절의 중심으로서 권위와 위엄을 보이고 있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空 사상과 자비의 마음이 저절로 샘솟는 듯 하다.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얻는 것이 있다.
대적광전을 바라보고 있으니 먼저 느껴지는 것은 단순미다. 그렇게 크지 않은 건물이지만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것이 간결미의 극치하는 생각이 든다. 꾸밈이 많지 않고 건물 전체에 흐르고 있는 곡선의 단순함이 삶의 길을 제시해주고 있는 듯 하다. 단청이 되어 있지 않음으로 더욱 더 마음을 끄는 힘을 가지고 있다.
대적광전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克己다. 참 나는 누구이며, 나를 찾기 위한 길을 보여주는 것 같다. 나를 이길 수 있다면 바른 인생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무아인 나의 실체를 모르고 나에게 집착함으로서 방황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자꾸 취하려고만 하니 헤맬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방황의 늪으로 인도하는 것들은 밖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게으름의 타성에 젖어 있는 것도 내안의 일이요, 거짓된 나를 참 나로 잘못 알고 집착하면서 욕심을 부리는 것 또한 내안의 일이 아닌가. 살아가면서 자꾸만 방만하게 일만 벌려놓고는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는 것도 바로 내 안의 일이 아닌가.
부처님의 그윽한 눈빛에 취해 한참 동안을 서 있었다. 말은 없었지만 마음을 때리는 울림이 있었다. 방울 소리가 소란하다 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고요하고 말이 없어도 전해질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알 수 있다. 내 안의 것들을 하나씩 생각하고 분석해본다. 실상과 허상을 나눠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처음부터 나는 구족하다고 하였다.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는 가르침이었다. 나를 이긴다는 것은 참 나를 둘러싸고 있는 거짓된 나를 벗겨내는 일이 아닐까. 나태하고 욕심으로 넘쳐나는 마음은 참 나가 아니고 거짓의 나다. 그 것을 바로 알고 자각하는 것이 바로 나를 이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늘이 파랗다. 탐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는 야생 차 꽃이 피어 있었다. 하얀 꽃 이파리가 미소 짓고 있다. 내 안을 볼 수 있을 때 나를 찾을 수 있고 나를 찾게 되면 구족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것이 바로 나를 이기는 것이라고. 낮은 곳으로 임하면서 섬기는 마음으로 절실하게 정진하면 나를 이기는 일은 결코 어렵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귀신사에서 돌아갈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본다.<春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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