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저녁놀이 곱다. 어찌나 아름다운지 온 몸에 황홀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붉은 기운은 구석구석에 배어들어 주체할 수가 없을 정도다. 정면으로 햇살을 받고 있노라니 파노라마처럼 지난날들이 펼쳐진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한 해의 여러 일들이 겹쳐진다. 격한 감정으로 분노하게 하기도 하였고 진한 감동으로 전율하기도 하였었다.
일이 일어나던 그 시절에는 감당할 수 없어 울고 웃었다. 극복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고통으로 인해 고뇌하였고 번민하였었다. 즐거운 일에는 염치없이 방방 뜨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신나고 좋았던 기억보다는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이 더 많다. 감당할 수 없어 초조해하고 고통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던 일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기억의 편린들이 되살아나, 붉은 저녁놀의 환한 빛의 조명을 받게 되니 모두가 소중한 보물로 변신한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그렇게 힘들게 하였던 일들이 돌이켜보게 되니,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있었다. 나를 훨씬 더 성숙하게 마들어주었고 그런 아픔이 있었기에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었다.
삶의 잘을 풍요롭게 해주는 요소에는 즐겁고 기뻤던 일도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것보다는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일들이 삶의 향을 더욱 진하게 해주고 있었다. 극복하기 어려운 슬픔이 더욱 더 우뚝하게 만들어주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가.
하얀 차 꽃이 해넘이의 빛에 더욱 빛나고 있다.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 꽃의 모습에서 시간의 소중함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붉은 빛과 어우러져 멀어져가고 있는 한해를 돌아다보라고 손짓하고 있다. 내 안의 참 나를 찾아보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은 모두 다 내 안의 마음에 의해 울고 웃지 않은가.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와 공통점에 대해서 말한 내용이 가슴에 와 닿는다. 감옥과 수동원의 공통점을 외부 세계와 단절되었다는 점이고 차이점은 생각의 차이라고 한다. 감옥에 있는 사람은 감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수도원에 있는 사람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붉게 타오르고 있는 해넘이는 분명하게 해주고 있다. 올 한 해도 어김없이 멀어지고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모두가 보낸다. 결코 그 누구도 비켜갈 수는 없다. 그러나 한 해를 보내는 마음이 어떠냐에 따라 시간의 의미는 달라질 것이고 인생의 의미도 정 반대가 될 것이다.
붉은 햇살을 받으면서도 하얀 색깔을 잃지 않고 있는 차 꽃처럼 살아간다면 그 사람에게서는 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세상의 물결에 휩쓸리고 있다면 그 사람에게서는 행복이나 즐거움이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시간의 의미를 창조하는 것은 모두 다 개인의 몫이다. 해넘이의 붉은 빛이 환상적이다.<春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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