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 속에서 짙밟힌 단풍의 모습은 품위를 잃지 않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시달림을 당하였으면서도 오히려 더욱 빛나고 있다. 단풍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는 일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고 있었다. 만약 그 것을 부담으로 여기고 있었다면 절대로 아름다움을 발할 수 없다. 밟히고 있어도 즐거움을 잃지 않기에 품위를 잃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단풍은 보지 못하고 있었다. 하얗게 내린 눈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발자국을 남긴다는 기쁨이 앞서다보니, 다른 것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설레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환희에 젖어 있을 뿐이었다. 단풍은 사람들의 그런 모습에 취하여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자신이 밟히는 것 쯤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는 표정이었다.
단풍의 모습을 보면서 내 안을 들여다 본다. 감내해야 하였던 고통들을 생각해본다. 원망하는 마음으로 대처하였었다. 다른 사람들은 날개를 훨훨 날고 있는데 나 자신만 날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다고 믿었었다. 모든 것이 내 탓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 다 내 안의 잘못이 아니라 외부의 탓이라고 믿고 있었다.
당연 가슴에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고 원망하는 마음이 넘칠 수밖에 없었다. 활화산처럼 타오르고 있는 감정은 악순환을 가속화시킬뿐이었다. 통제할 수 없는 마음은 끝없이 추락하게 만들었다. 품위나 향기는 아예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추하고 흉한 몰골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런 사실조차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단풍은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인생은 다른 사람이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부담이라고 생각하였던 모든 것들이 짐이 아니라 선물이란 사실은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어리석음은 구족한 세상의 모습을 바르게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밟힌 단풍 옆 호수에는 청둥오리들이 한가롭게 헤엄을 치고 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유연하고 넉넉한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세상은 언제나 그 자리에 그렇게 있을 뿐이다. 그 누구에게도 똑같은 조건으로 공정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억울할 것도 없고 차별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구속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구속이 아니라 선물이었다. 시련은 꽃을 피워내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일 뿐이었다. 그 시련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은 환희를 맛볼 수 없다. 단풍이 짙밟히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있는 당당함은 찾을 수 없다. 여유가 넘치고 있는 청둥오리의 안정감은 가질 수 없다.
한 해를 보내면서 나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결국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는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살아가면서 시련은 없다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련은 어려움이 아니라 살아있음을 축복해주는 선물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감사하게 된다.<春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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