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특수전여단(UDT/SEAL)의 기치는 ‘불가능은 없다’다. 부대 건물 안으로 들어가 작전지원대 출입문 앞에 서면 같은 문구를 또 볼 수 있다. 사무실 배치도에 고(故) 한주호(韓主浩) 준위의 사진이 맨 위에 붙어 있고 계급·성명 아래 바로 그의 좌우명처럼 ‘불가능은 없다’가 쓰여 있다. UDT(수중폭파대)가 그이고, 그가 UDT임을 말해준다.
지난해 청해부대 1진으로 소말리아 해역으로 파병된 고 한주호 준위가 동료 대원과 함께 정박한 함정의 선저 상태 확인에
나서고 있다.
고 한 준위가 생전 특전 작전 수행능력 향상에 기여하기 위해 개발한 침투습격 사다리.
‘불가능은 없다’라는 말은 의지만으로, 개인의 역량만으로는 실현되지 않는다. 그 ‘불가능은 없다’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끊임 없이 생각하고, 준비하고 또 행동한다. ‘국가를 위해 희생할 수 있다’는 사명감을 공공연히 말해 온 고 한 준위가 그런 사람, 그런 군인이었다. 그의 이런 면모는 그의, 그리고 그를 포함한 부대의 임무 완수를 위해 얼마나 준비해 왔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부대원 절반이 그의 제자
그 준비는 역량 있는 후배 전투원을 양성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한 점에서 우선 찾을 수 있다. 고 한 준위는 35년 군 생활 가운데 무려 18년여를 교육훈련과 관계했다. 교육훈련대 보좌관 또는 훈육관으로서 특전 초급반 18개 차수, 중급반 8개 차수, 고급반 4개 차수, SDV과정 5개 차수, 해상대테러과정 5개 차수, 폭발물처리 과정 등을 지도했다.
UDT/SEAL 대원 절반 이상이 ‘호랑이 교관’인 그에게 ‘혼쭐’이 나고 또 따뜻한 격려를 받았다. 교육 수료 후 각 대원들이 어떠한 임무가 부여되더라도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완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데에는 그의 열정이 근저에 깔려 있는 것이다.
부대 차원의 교육훈련 발전을 위해 고 한 준위는 또 교수안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해상대테러 특수과정과 특수전 기초과정에 대한 교수안이 그것이다. 잠수교범에는 협조연구관으로서도 참여해 실전에 적용할 수 있는 우수한 교범을 완성하는 데 기여했다.
각종 교범도 그의 손 거쳐
풍부한 경험에 더해진 열정적인 근무자세, 끊임없는 연구자세, 부대에 대한 기여도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부대는 이것으로는 ‘그를 충분히 아는 데’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공개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뜻. “다만 특수임무와 관련된 작전교범과 임무수행철 등을 작성·제작해 실제 작전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다.
고 한 준위의 또 다른 면모는 그의 창의성에서 엿볼 수 있다. 그는 부대의 특수작전 수행능력을 높이고자 전투 또는 교육훈련 보조장비를 개발했다. 침투습격용 사다리, 저격수 횡이동 표적기, 탄·뇌관 보호상자 등이 그것이다. 부대 관계자는 “아이디어라는 게 단지 ‘반짝’ 떠오르는 게 아니지 않느냐”며 “얼마나 그의 임무에 정통하고, 또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해 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침투습격 사다리는 대테러 작전에서 담이나 함정에 오를 때 쓰이는 것으로 종래의 습격사다리는 중량과 부피, 그리고 이동성에 단점이 있었다. 고 한 준위는 4m·5m·7m·10m용으로 보완·설계해 어떤 함정에도 안전하고 신속하게 침투할 수 있도록 했다.
표적기 창안 명중률 대폭 높여
저격수 횡이동 표적기는 대테러 저격수를 비롯한 특전요원이 이동표적 사격훈련을 가능하게 했다. 그 전에는 훈련장 여건상 기동 중인 함정이나 차량·인원에 대한 사격훈련이 제한돼 왔던 것. 표적기는 보행(4km/h), 뜀걸음(10km/h), 차량(15km/h) 등 3단계로 속도 조절이 가능하다. 최초 설치 후 5일간 저격수 3명이 훈련하고 평가사격을 실시한 결과, 명중률이 크게 향상돼 부대에서 요구하는 명중기준을 단숨에 뛰어넘는 결과를 낳았다. 또 이 표적기는 제작 단가가 250만 원에 불과하다. 외부제작 시 소요되는 경비가 5830만 원이므로 5580만 원의 예산을 절감하는 효과도 얻었다.
폭발물처리용 탄·폭약 뇌관 보호상자는 2000년 폭발물처리대 중대장을 지낼 때 개선한 것. 종래의 보호상자는 플라스틱이나 나무로 제작돼 외압에 쉽게 변형돼 보호상자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었다. 또 작전 대기 중이거나 이동할 때 위험성도 뒤따랐다. 고 한 준위는 4개의 강철 재질의 원통형 뇌관상자를 제작, 운용했다. 폭발물 교육훈련은 물론 작전 및 긴급출동 상황에서도 뛰어난 안정성과 내구성으로 대원들이 안심하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교육훈련 안전관리도 만점특히
부대 관계자는 “고 한 준위의 경험과 연구는 부대 안전과도 직결된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각종 교육훈련 시 안전사고가 없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는 것이다. 안전 체크리스트를 누구보다 철저히 이행했고, 후배 교관들에게도 안전교육을 적극 강조했다. 그는 “3년 전, 부대 안전점검 때에는 단 한 건의 지적 사항이 없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고 한 준위의 한 기록에는 ‘국가를 위해 희생할 수 있다’는 표현이 나온다. 그는 타고난, 천생(天生) 군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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