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계장님, 작년에 우수사례 발표대회 계획서 어떻게 만들었어요?”
“이 팀장님, 출장 승인 결재해 주세요.”
“김 사무관, 업무 협의해야 하는데 도대체 어디 간 거야?”
앞으로 1~2년 뒤면 정부부처 사무실에서 이런 말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사람과 경험이 중시되던 공직사회가 시스템과 지식중심으로 체질이 바뀌고 있다. 2007년부터 도입된 통합업무관리시스템 ‘온-나라 시스템(On-nara BPS) 때문이다.
1월 현재 54개 전 중앙부처에는 공무원 개개인 업무부터 국가 전략까지 하나로 묶은 ‘온-나라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다.
온-나라 시스템 도입 이후 우선 공무원의 아침이 달라졌다. 공무원이 출근해서 온-나라 시스템에 로그인하면 다른 직원이 보낸 메일이나 장관 지시사항 등 처리해야 할 일이 메모로 도착한다. 이를 반영해 하루 일정을 입력하면 일정관리 창에는 같은 팀원의 하루 일과가 동시에 표시된다. 조회를 하지 않아도 부처와 팀의 업무가 진행되는 상황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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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무원의 업무는 계획부터 집행, 종료까지 목적에 맞춰 추진되고, 이력은 사료로 남는다. '온-나라 시스템' 기본구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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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의 업무는 계획부터 집행, 종료까지 목적에 맞춰 추진되고, 이력은 사료로 남는다. '온-나라 시스템' 기본구조.
일정은 과제와 바로 직결된다. 공무원이 하는 일이 정부 기능, 국정과제에서 어디에 해당하는지 연결돼 관리된다.
하루 일을 마치고 그날의 업무성과를 기록하면 이는 자동적으로 관제관리카드에 쌓여 성과분석과 평가에 활용된다.
공무원 업무 하나하나 실적으로 차곡차곡
업무진행과정에서 생산된 기록은 초안부터 수정본까지 자연스럽게 기록으로 남아 집행과정에서 누가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누가 어느 부분을 수정했는지 알 수 있다. 만일 담당 사무관이 심사를 거쳐 연구용역을 발주했는데, 담당 팀장이나 국장이 선정업체를 바꿨다면 그 이유와 변경이유도 고스란히 남는다. 1~2년이 지나 연구용역에 문제가 있다면 책임을 물을 곳이 분명해지는 것이다.
온-나라 시스템에 저장된 업무활동은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관리시스템으로 넘어가 ‘사료’로 보존된다. 실제로 하모니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행정자치부 사무실에서는 일부 사무실을 제외하고는 서류철이 대부분 사라졌다. 서류를 철해 놓을 이유도, 보관할 공간도, 서류를 찾아 들춰볼 필요도 없게 된 것이다.
온-나라 시스템은 정책형성과정을 투명하게 기록하는 청와대 ‘e-지원(知園) 시스템’과 업무와 성과를 시스템으로 연계한 행자부 하모니 시스템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아이디어를 낸 청와대와 시스템을 보급하는 행정자치부가 먼저 시험평가를 치른 셈이다.
지금까지 정부 행정시스템이 업무관리, 기록관리, 지식관리, 예산시스템 등 개별업무를 전자화한 것이라면 온-나라 시스템은 이를 한꺼번에 묶어 중복업무를 없애고, 행정업무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일을 컴퓨터와 통신을 이용해 처리하는 수준을 넘어서 업무 시스템 안에서 비로소 모든 일이 진행되는 것이다.
온-나라 시스템, 정부의 아침을 바꿀 것
행정자치부는 2007년 시작과 함께 정부 모든 부처에 도입된 온-나라 시스템이 지금은 공무원의 아침을 바꾸고 있지만 적응기간이 지나면 정부의 아침을 바꿀 것으로 기대한다. 정부혁신본부 이종민 교육홍보팀장은 “행정의 투명성으로 ‘철밥통’, ‘무사안일’이라는 공직의 비판적 이미지를 말끔히 벗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평가, 기록, 지식관리, 지시사항 이행 등 개별적으로 관리되던 정부업무가 '온-나라 시스템'으로 통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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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기록, 지식관리, 지시사항 이행 등 개별적으로 관리되던 정부업무가 '온-나라 시스템'으로 통합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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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사회 업무의 투명성, 책임성이 높아지는 새로운 시스템이 접목되면서 공직사회의 반응도 다양하다. “불필요한 결재 대기시간이 줄어들어 효율성이 높아졌다”, “지시사항, 평가 등의 자료를 따로 만들지 않아 편리하다”는 긍정적인 여론뿐만 아니라 “일보다 업무카드 기록을 잘하는 사람이 성과평가를 높게 받는 것이 아닌가”, “일일이 감시받는 느낌”이라는 거부감도 없지 않다.
이에 대해 ‘온-나라 시스템’을 전 부처에 보급하고 있는 행정자치부 정순교 변화관리팀장은 전자결재 시스템을 처음 도입할 때 종이에 익숙하던 공직사회가 달라진 점을 예로 들며 “평가까지 한 번의 사이클이 지나면 좋아진 점을 실감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업그레이드된 새 옷에는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정 팀장의 자신감은 2005년 하모니 시스템을 도입한 행정자치부가 도입 초기 시스템에 대한 직원만족도가 절반을 간신히 넘었지만, 1년이 지난 2006년에는 90%를 넘은 경험이 바탕이다.
◆ '온-나라 시스템' 잘 쓰고 계신가요
프로그램 적응교육을 거쳐 1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된 온-나라 시스템에 대한 공직사회의 기대와 우려를 행정자치부 변화관리팀의 도움을 받아 문답식으로 풀어본다.
- 아침에 나와서 하루 일정을 일일이 기록하다 보면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지 않다.
△ 일정 등록은 일을 계획적으로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하나 쌓이면 이것이 자신의 업무실적이 된다. 사생활을 적는 일정이 아니라 공적인 업무를 기록하는 것이다. 관리자나 국민의 입장에서 업무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당연하다. 계획을 등록하면 업무와 관련된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할 수 있어 매일 회의할 필요도 없어진다. 하루 일정이라고 꼭 아침에 넣을 필요는 없다. 아침에 회의가 있거나 출장을 다녀오면 전날이나 그날 오후에 입력해도 된다.
- 계획→실행→완료로 이어지는 체계는 청와대처럼 기획업무에 맞지 매일 비슷한 일을 하는 부서에서는 적합하지 않다.
△ 과제관리카드는 정부의 기능 중에 자신이 하는 업무가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공무원이 하는 일은 정부의 기능을 집행하는 것이다. 일이 따라 정부의 비전, 전략, 세부기획 등 비전달성에 어디에 해당하는지 명확해서 업무의 목적의식이 뚜렷해진다. 이는 집행과 정책에 따라 달라질 성격이 아니다.
- 담당업무를 하고 있는데 민원전화가 와서 이를 처리하느라 1시간 넘게 걸렸다. 이런 것도 기록하나. 어디까지 기록하고 무엇은 생략할 수 있나.
△ 시간, 중요도, 업무관련성을 따져서 본인이 판단할 문제다. 특히 업무추진이나 본인의 업무와 관계된 상관성에 따라 실적에 입력하면 된다.
일하는 사람과 안 한 사람 차이 확연해 질 것
- 일지를 관리하느라 시간을 허비한다. 또 일보다 기록을 잘하는 사람이 평가를 좋게 받는 것 아닌가.
△ 안 하던 것이라 처음에 시스템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이는 곧 줄어든다. 몇 달만 지나도 일정관리 등 추가되는 시간은 채 5분도 안된다. 또 온-나라 시스템에 적응하면 일을 한 사람과 일을 안 한 사람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 실적이 자연스럽게 쌓이는 것이지 없는 실적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 기록할 수 없지만 부처의 업무, 팀원의 업무를 위해서 시간을 써야 할 때도 있다. 기록하는 일을 중심으로 하다 보면 팀원 간에서 업무협조가 잘 되지 않을 수 있다.
△ 온-나라 시스템 뿐만 아니라 개인별 성과가 강화되면서 조직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이다. 팀 업무의 윤활제 역할이 업무로 기록되지 않는다. 이러한 점은 정성평가에서 반영해야 한다. 성과주의만으로 평가를 하면 오류가 있을 수 있다.
- 기존에 부처에서 쓰고 있는 프로그램과 연동이 안 돼서 두 번 일을 하는 경우도 생긴다. 행정력 낭비 아닌가.
△ 부처마다 전자결재 시스템이 달라 불편할 수 있지만 앞으로 이를 통합할 예정이다. 전자결재뿐만 아니라 국정관리, 기록관리, 지식관리, 전자통합평가, 예산 시스템 등 주요 국정운영시스템을 단계적으로 묶어 지금까지 두 번 세 번 반복하던 작업이 한번으로 줄어든다. 이렇게 되면 따로 관리자를 둬야 했던 지시사항관리 같은 업무가 줄어들고, 국무회의를 위해 수십 부씩 복사해야 하는 불필요한 업무가 없어진다. 평가를 위해 정부부처가 한 트럭씩 준비하던 종이서류도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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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un121212@daum.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