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정책을 실행하는 군청 공무원이 무슨 책임이 있습니까? 형평성에 맞지 않는 정책은 개선돼야 하는데 정부가 도무지 작은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20일 오전 10시 충남 서천군청 2층 대회의실. 국민권익위원회가 마련한 이동신문고 상담장에는 지역주민들의 불만에 찬 목소리들이 이어졌다.
제각각 지적도나 사진, 신문 기사 등을 펼쳐보이며 자신들의 애로사항을 상담자에게 설명하느라 여념없다.
한참 생업으로 바쁜 이른 오전 시간이지만 지역주민들의 억울함을 해결해주는 이동신문고가 서천을 방문한다는 소식에 군민들이 몰려들었다.
지난해 장마로 농경지 침수피해를 입은 박민수(64. 서천군 장항읍)씨는 정부가 3ha 이상 농민들에게만 피해 보상을 해줘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대다수 농민들은 3ha 규모의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대농이 아니다” 라며 “다 똑같이 피해를 봤는데 소농이라는 이유로 보상을 못받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냐”며 반문했다. 줄곧 규정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전해들은 박씨는 이날 권익위 개별상담을 신청해 불합리한 법령 개선을 건의했다.
자신의 민원이 과연 받아들여 질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고 이동신문고 현장을 찾았던 민원인들은 억울함을 하소연 한 것으로도 많은 위안을 받은 듯 했다.
물론 이들의 민원은 정식 접수돼 정밀조사와 위원회 심의절차를 거쳐 처리된다.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이날 취임 후 처음으로 이동신문고 현장을 찾았다.
그 동안 현장조정회의에는 참석했지만, 직접 복지노동, 재정세무, 산업농림, 도로교통, 민·형사 등 분야별 조사관과 법률상담전문가를 이끌고 이동신문고 현장에 나온 것은 처음이다.
공식적인 행사에 형식적으로 사진만 찍고 다녀가는게 아니었다.
제기된 민원과 관련한 사항을 충분히 숙지해 상반된 양측의 의견을 듣고 궁금한 점은 꼼꼼하게 물어봤다.
대법관을 지냈던 전력 때문인지 법률적인 문제는 민원인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도 해줬다. 소송을 통한 갈등해결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서천군 기산면 두북리 노기래 이장은 “두북리 일원의 친환경농업단지는 농업용수가 부족해 영농에 심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며 영농철이 오기 이전에 기존 용수로를 이용한 양수장 설치를 요청했다.
한국농어촌공사 이창엽 금강사업단장은 “올해 9월 양수로 설치공사에 착수, 농번기 이전인 5월까지 완료하고 내년 5월까지는 용수로도 확장해 줄 계획이라고 대답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양 측이 어느정도 합의를 이루는 듯했다. 하지만 노 이장이 양수장 설치에 앞서 우선 이동 양수기라도 설치해 줄 것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 단장이 “예산상의 문제로 지금 당장 곤란하다”고 거절하자, 노 이장은 “매번 예산타령이다. 이제 더 이상 신뢰를 못하겠다”고 되받아쳤다.
양 측의 얘기를 경청하던 김영란 위원장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김 위원장은 “ 이왕 양수장 설치해 주시기로 한거 한번 더 배려해주시죠”라고 이 단장에게 요청했다.
이 단장이 이를 수용하자 김 위원장은 합의서 문구에 들어갈 단서 내용까지 세심하게 알려주는 배려를 보였다.
이어 진행된 지역사회단체 간담회에서는 서천지역의 최대 현안인 화력발전소 관련 문제가 집중 제기됐다.
김 황백화 피해대책 지역민 협의회 김형천 회장은 “지난해 12월10일 서면지역 김 양식 어장에서 발생한 김 엽체 황백화 현상이 비인·마서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며 “이는 서천화력발전소의 온배수와 유해성 화학물질 배출에 따른 원인”이라며 피해대책과 원인규명을 촉구했다.
나소열 서천군수는 “국립수산과학원 해조류바이오센터의 1차 조사 결과는 용존무기질소량이 현저하게 낮아 발생한 현상으로 추정됐다” 며 “영양염 부족원인은 파악할 수 없고 여러가지 규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앞으로 매년 이런 문제가 생길 것인데 서천화력발전소 측이 특단의 대책을 세워줄 수 없는지 상의해 보겠다”고 밝힌 뒤 곧장 현장을 찾았다.
윤리경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지역주민들과의 소통
김 위원장 “기업과 지역민간 갈등 바람직 하지 않아”
서천화력발전소 현장 방문에서는 김 황백화에 대한 원인 규명을 위한 용역비 지원을 두고 군수와 서천화력발전소장 간에 치열한 설전이 이어졌다.
서천화력발전소 강영희 소장은 “당시 김 황백화는 보령, 전남 등 서남해안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난 전국적 현상인데, 불분명한 원인을 두고 발전소가 연구 용역 비용을 지급하고 나선다면 그 결과를 누가 믿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나 군수가 “군과 군민, 발전소가 추천하는 인사들이 조사에 참여해 용역을 진행한다면 이 문제는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라고 설득했지만, 강 소장은 “발전소가 용역조사 비용을 지급한다면 김 황백화 원인을 인정하는 거나 마찬가지이며 다른 지역에도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서천화력발전소측이 용역비용 지급을 완강히 거부하자 김영란 위원장이 “최근 기업들은 윤리경영을 펼치고 있고 윤리경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소통”이라며 “지역주민들에게 사회적인 투자와 혜택을 준다는 차원에서 접근해 달라”고 당부했다.
또 “민원이 발생하고 김 황백화 현상이 유독 서천이 심한데 충분히 조사 용역 할 수 있지 않나”라며 “기업과 지역주민들의 갈등은 바람직 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날 권익위는 김 황백화 원인과 관련된 피해 원인 조사 용역 실시 방안을 농림수산식품부·한국전력 등과 지속 협의키로 했다.
이 밖에 김영란 위원장은 어메니티 마을을 찾아 장애인의 날을 맞은 장애인들을 격려하고, 요양원을 찾아 노인들을 위로했다. 장애인들과 함께 김 생산 현장을 찾아 직접 만들어 보고 구매도 했다.
권익위의 이동신문고 현장 방문은 이날 서천군을 시작으로 21일 부여군, 22일 청양군에서 잇따라 열린다.
특히 김 위원장은 22일 한국토지공사 아산사업본부에서 ‘천안∼아산 21번국도 확장공사’ 때 폐쇄된 횡단보도와 지하차도(아산시 배방읍 소재)를 다시 만들어달라는 인근마을 주민들의 집단민원을 직접 해결할 예정이다.
아울러 권익위는 올해 들어 지난 3월까지 인천 남동산업단지, 부산 녹산산업단지 등 전국 9개 시·군·구에서 이동신문고를 운영해 현장합의 9건, 고충민원접수 18건, 상담안내 80건 등 총 107건의 민원을 상담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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