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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많이 풀었습니까”
경기부양, 투기를 유혹하는 목소리 경기부양과 부동산의 딜레마
2007년 02월 04일 (일) 12:47:13 변영배 대기자 byun121212@daum.co.kr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은 1960년대 본격적인 경제개발과 함께 크게 움직이기 시작해 지난 40년간 4차례의 순환기를 가졌다. 부동산 가격은 도시화에 따른 수급 불균형과 공급시차, 경제성장에 따른 소득향상과 과잉 유동성, 경기변화에 따른 건설경기 부양 유혹, 부동산 투기심리에 대응한 제도와 정책 미비 등의 요인들에 의해 변동을 겪었다.

   
 
  ▲ 조선일보 2003년 12월 10일자. 2003년 10.29대책으로 집값이 잠잠해지자 지방건설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2006년 7월 12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이날 인사청문회는 청와대 정책실장에서 경제부총리로 옮겨온 권오규 후보자와 열린우리당 강봉균 정책위의장간 설전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주제는 경기진단과 경기부양. 두 사람은 과거 경제기획원(EPB)에서부터 상하관계로 일해 오며 인연이 깊었다.

강 의장=만약에 작년도에 4%밖에 성장이 안됐다면 내년쯤에서 6% 성장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게 없는 거란 말이에요. 경기부양이라는 것은 거시경제 정책을 운용하는 정책 당국의 인위적인 노력을 의미합니다.
권 후보자=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주거나 지나치게 확장적으로 경제 운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정책 방향은 잠재성장률 경로를 따라가는 한에 있어서는 인위적인 부양을 하지 않는다는 스탠스를 유지하는 것이 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강 의장=지금 체감경기가 너무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잠재성장률 기준을 놓고 보더라도 1, 2% 정도 성장을 높일 수 있는 방법만 있다면 이것을 해서 하나도 나쁠 게 없다 이게 제 생각인데.
권 후보자=저는 그점은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잠재성장률 경로에서 벗어나는 쪽으로 일단 경기가 들어가게 하면 그 다음 단계에는 분명히 잠재성장률 아래쪽으로 반작용이 생기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성장률 경로를 벗어나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속기록)

경기부양을 둘러싼 입장차는 얼마 뒤 제주에서 열린 전경련 하계포럼에서 다시 불꽃을 튀었다. 같은 달 29일 강 의장은 “건설경기는 정부정책에 의해 강온조절이 가능한 유일한 분야다. 건설분야를 단기적 경기관리 수단과 영역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 전반을 살리기 위해 ‘건설경기 부양’ 카드를 과감히 쓰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로 하루 전날 같은 자리에서 권 부총리는 “인위적 건설경기부양은 바람직하지 않다. 경기가 좋지 않다고 해서 재정을 투입해 건설경기를 띄우던 시절은 지났다”며 정반대의 입장을 밝혔다.


경기부양을 보는 관점

경기부양에 대한 입장은 기본적으로 한 나라의 잠재성장률을 어느 수준으로 보느냐에 달려 있다. 만약 잠재성장률이 낮은데도 이를 초과해 경기를 부양한다면(인플레이션 갭) 경기과열, 물가상승 등이 일어난다. 반면 잠재성장률이 높은데도 실질성장률이 여기에 못미친다면(디플레이션 갭) 경기침체 등의 부작용이 나타난다.

거시경제에 대한 시각차 외에 정치적 입지도 경기부양에 대한 입장이 갈리는 이유이다. 여론에 민감한 여당으로서는 체감경기와 일자리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경기부양에 적극적인 반면, 경제의 안정적 운용을 중시하는 정부는 경기부양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가 잠재성장률을 웃도는 경기부양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인위적인 경기부양은 당장의 약발은 좋지만, 궁극적으로 경제의 기초체력(성장잠재력)을 갉아먹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특히 부동산시장이 극도로 불안한 상황에서 재정확대, 규제완화 등 대대적인 경기부양은 투기심리를 자극해 큰 낭패를 초래할 수 있다.

◆ 참여정부의 뼈아픈 실책
참여정부도 딱 한 번 경기부양의 유혹에 흔들린 적이 있다. 그 결과 투기의 부활이라는 뼈아픈 교훈을 얻게 된다.

   
 
  ▲ 건설업의 국민경제적 비중이 커짐에 따라 건설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사진은 2006년 서울 은평뉴타운 공사현장  
 
2004년 6월 18일 열린 경제장관간담회에서 당시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성수기인데도 건설·제조·서비스업은 물론 농업부문에서도 고용증가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포문을 연 뒤 며칠 뒤 정례브리핑에서 “건설수요는 올 4분기부터 내년에 걸쳐 전반적으로 가라앉을 것이며, 건설투자의 급감을 막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한다.
당시는 2003년 10·29대책으로 건설경기를 중심으로 내수가 위축되면서 침체된 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한창 힘을 얻고 있을 때였다.


조선일보 2003년 12월 10일자. 2003년 10.29대책으로 집값이 잠잠해지자 지방건설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건설경기 회복을 돌파구로 정한 이 부총리는 다음달 1일 사회간접자본(SOC) 등 건설투자를 확대하고, 주택건설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의 ‘건설경기연착륙방안’(7·1방안)을 발표한데 이어 8월에는 전국에 골프장 250개를 지어 일자리를 만든다는 ‘골프장 경기부양론’을 들고 나온다.

때마침 한국은행도 당시 3.75%인 콜금리 목표치를 13개월 만에 3.5%로 낮춘다. 당시 박승 한은총재는 “예상치 못한 고유가로 경제성장률이 떨어진데다 내수는 더디게 회복되는 반면 수출·건설경기가 너무 빠르게 식고 있다. 금리인하가 물가를 자극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경기를 살리는 게 더 급하다”고 인하 배경을 설명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이 부총리는 “오히려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이 있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한은의 콜금리 인하가 결정되던 바로 그날, 당시 재경부 이종규 세제실장은 “부동산경기가 하락할 때 쓰는 정책은 상승할 때의 정책과 같을 수 없다”며 종합부동산세 등 부동산세제의 완화를 시사한다.
이 때를 기점으로 정부와 여당 안에서 종부세 도입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당시 청와대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 등을 중심으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나섰지만, 2004년 말 입법과정에서 종부세 과세대상은 원래 생각했던 공시가격 6억원 이상에서 9억원 이상으로 완화되고, 가구별 합산도 개인별 합산으로 크게 후퇴한다. 시민단체는 종합부동산세가 ‘종합구멍세’가 돼버렸다며 정부를 강하게 비판한다.


   
 
  ▲ 조선일보 1999년 4월 9일자. 당시 정부는 주택경기 활성화를 위해 대대적인 규제완화를 실시한다.  
 
정책후퇴의 신호

잇단 건설경기 부양책, 종부세 후퇴는 시장에서 정책 후퇴로 받아들여졌다.
2003년 10·29대책 이후 1년 넘게 잠잠했던 집값은 2005년 들어 판교신도시분양, 강남 압구정동 초고층 재건축 추진 등 휘발성 강한 재료와 겹치면서 다시 오르기 시작했고, 정부는 2005년 8·31대책을 통해 후퇴시켰던 종부세 등을 원상복귀시켜야 했다.

종부세의 후퇴와 원상복귀 과정은 원칙의 후퇴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잘 보여준다. 특히 투기심리가 팽배한 부동산시장에서 작은 후퇴의 신호 하나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런 의미에서 투기꾼들이야 말로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봄이 온다’는 믿음의 수호자이자 기다림의 달인이다. 이들은 아무리 혹독한 투기근절책이 나와도 언젠가는 풀린다는 사실을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이들의 소위 ‘학습효과’를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경기부양의 요구였다.

투기꾼들에게 가장 화창한 봄날은 역설적이게도 IMF외환위기였다.
IMF외환위기 이후 경기부양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였고, 경기부양을 이유로 각종 부동산관련 규제가 대대적으로 풀리기 시작한다.

◆ IMF외환위기 이후 대대적인 경기부양
2001년 2월 7일, 건설업계가 마련한 당시 김윤기 건설교통부장관 초청 간담회.
이날 행사에서 김 장관이 “올해 건설예산의 85%를 상반기 중 집행하는 등 건설경기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운을 떼기 무섭게 건설사 사장들의 요구가 쏟아졌다.

이중근 부영회장=과거 투기억제 수단으로 도입된 양도세는 주택보급률이 100%에 육박하는 만큼 폐지돼야 한다. 집을 살 때 부담하는 취득·등록세도 주택업을 제조업으로 분류해 감면해 달라.
박성대 대동주택 명예회장=유지, 관리가 미흡해 붕괴사고가 일어나도 건설업계의 책임으로 돌아온다. 시설물의 유지, 관리비 책정을 늘려야 한다.
김언식 삼호건설 사장=대한주택보증 출자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으나 주택보증의 부실화로 출자금은 날아가고 대출 빚만 남게 됐다. 주택보증 출자금은 업체가 원해서 낸 게 아니라 주택업을 하려면 의무적으로 내도록 했던 것으로 출자금이 없어졌으니 대출금도 탕감해줘야 한다. (중앙일보 2001년 2월8일)

그리고 3개월 뒤인 5월 23일, 정부는 생애최초 주택구입자에게 집값의 70%까지 대출해주고, 2001년 말까지 구입한 신축주택에 대해 양도세 면제, 취득·등록세 50% 감면 등의 내용을 담은 ‘건설산업 구조조정 및 투자적정화방안’(5·23방안)을 발표한다. 국민의정부 들어 10번째 발표된 주택경기 활성화 대책이었다.
당시 정부는 1998~2001년 5월까지 3년 6개월동안 모두 10번, 평균 4개월에 한 번꼴로 부양책을 내놓은 것이다. 정부는 밀물듯이 밀려드는 업계의 요구를 대폭 수용해 대대적으로 규제를 풀어서라도 건설경기를 살리는 것이 절실했다.

   
 
  ▲ 조선일보 1999년 4월 9일자. 당시 정부는 주택경기 활성화를 위해 대대적인 규제완화를 실시한다.  
 
2001년 2월 청와대가 대통령 취임 3주년을 맞아 공개한 김대중 대통령의 메모에는 당시 대통령이 건설경기부양을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김 대통령의 노트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지방경제 어렵다는 여론, 건설경기 위축, 재래시장 문제, 기업 지방 이전, 지방건설업 자율조정, SOC사업 조기 시행’ 등의 친필 메모가 적혀 있었다.

취임 1년 반 만인 1999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IMF졸업’을 공식선언했던 정부는 같은 해 8월 말 대우그룹 사태, 다음해 3월 현대그룹 ‘왕자의 난’ 등으로 경기가 급속히 얼어붙자 경기부양효과가 큰 주택시장 부양책을 쓰기 시작한다.


대대적인 규제완화


조선일보 1999년 4월 9일자. 당시 정부는 주택경기 활성화를 위해 대대적인 규제완화를 실시한다.
1998년 먼저 아파트 분양가를 자율화한데 이어 99년 아파트 분양권 전매 허용, 아파트 재당첨 제한 폐지 등의 조치를 잇달아 내놓는다. 또 2000년부터 아파트 임대사업을 장려하고, 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자금을 지원하는 대책 등을 본격화한다.
2001년에는 2003년 6월까지 전용 25.7평 이하 신규 주택을 취득할 때 취득·등록세 25% 감면, 부동산 투자회사가 부동산을 취득할 때 취득·등록세 감면, 소형주택 구입자금 저금리 지원 등의 지원이 잇따른다.
이런 조치들은 정부가 암묵적으로 투기를 감수하더라도 주택경기를 부양시키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한 것이었다.

경기부양을 위한 확장적 재정, 통화정책이 총동원되면서 콜금리도 2001년 한 해 동안 모두 4차례 인하돼 사상 최저치인 연 4%로 떨어진다. 같은해 9월 19일 4번째 콜금리 인하를 결정한 뒤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당시 전철환 한은총재는 “미국 테러 참사에 따른 대외여건 악화가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콜금리 인하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대적인 규제완화와 풍부한 유동성으로 건설경기를 중심으로 서서히 경기가 달아오르고, 강남 재건축단지를 중심으로 투기조짐이 나타나자 2002년부터 부동산정책은 완연한 안정정책으로 돌아선다.
당시 청와대 건설교통비서관이었던 이춘희(현 건교부 차관)의 회고다.

“2001년 경기가 싸늘할 때 5·23부양대책을 발표하고 한 달 뒤 당시 이기호 경제수석에게 업무보고를 하면서 ‘이제부터는 투기대책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대부분 집값이 오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면과제는 투기억제가 아니라 경기부양이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내가 걱정했던 것이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1년 12월부터 집값이 오르기 시작했고, 연말 이 수석에게 투기대책을 발표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래서 2002년 들어 1·8대책, 3·6대책 등이 발표됐다.”


대대적인 규제완화로 투기가 부활할 조짐이 보이자 2002년 완연한 안정정책으로 돌아선다. 표는 재정경제부, 김종찬 저서 '황금낙하산' 109페이지 인용

2002년 들어서는 1, 3, 9, 10월 등 하루가 멀다 하고 안정대책이 쏟아진다. 주택경기 부양을 위한 대대적인 규제완화의 효과, 확장적인 통화정책에 따른 유동성 과잉 그리고 IMF외환위기 이후 3년(1998~2000년)간 연간 50만호를 밑돈 주택공급 부족분 등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집값 상승도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1970년대 말 부동산 1차 순환기, 80년대 말 2차 순환기 등 집값 폭등기 때의 공통적 특징은 과잉 유동성과 주택공급 부족이 집값 상승의 원인이었다. 2001년 이후부터 참여정부 기간 내내 지속된 최근 집값 파동은 이러한 2가지 원인 외에도 이전 정권에서 이뤄진 대대적인 규제완화의 부작용이 한꺼번에 노출됐다는 특징을 갖는다.


규제완화의 부작용

국민의정부 시절 IMF외환위기 이후 침체된 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추진된 대대적인 규제완화가 결국 부동산투기 부활이라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2003년 초 당시 인수위 경제2분과로부터 부동산관련 대책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이렇게까지 많이 풀었습니까”라고 말했다.(이춘희 현 건교부 차관의 회고)
건설경기부양을 위해 일정 수준 규제를 푸는 과정에서 투기억제를 위한 필수 규제마저 무장해제 시켰다는 지적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03년 참여정부 출범 이후 발표된 일련의 대책들은 이전 정권에서 마구잡이로 해체된 투기억제책을 다시 원상복귀 시키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 82년의 경험
경기부양을 위해 섣불리 규제를 풀었다가 부동산투기를 일으켰던 경험은 5공화국 시절인 1982~84년에도 있었다. 1982년은 이철희·장영자 사채파동을 수습하기 위해 자금이 집중적으로 풀린데다, 그린벨트에서도 목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초지조성계획’(10년간 1조원 투자사업)이 발표되면서 부동산경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앞서 1980년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하는 등 경기침체가 가속화되자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여러 차례 양도소득세를 내리거나 각종 건축규제를 풀고, 부동산 거래자금의 출처 조사와 특정지역에 대한 투기활동에 대한 감시를 중단한다.
이러한 규제완화의 효과가 누적되면서 1982년부터 한동안 잠잠했던 투기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투기조짐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1982년 11월, 당시 김준성 경제부총리는 긴급대책회의를 열어 대책마련에 나선다. 이에 따라 1983년 4월 아파트 불법전매, 아파트 구입자금 출처, 부동산 중개업소의 불법 거래중개행위 등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는 등 주택시장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4·18조치’가 발표된다.
1982년 12·22 주택투기억제대책, 1983년 2·16 부동산투기억제대책에 이은 3번째 대책이었다.

1978년 8·8조치 이후 침체됐다가 1982년을 전후해 반짝했던 부동산시장은 당시 5공 정부의 투기억제 대책으로 다시 1986년까지 침체기로 빠져든다.
규제완화의 유혹은 언제나 경기부양의 목소리와 함께 시작되며, 규제완화를 동반한 섣부른 경기부양책은 결국 투기의 부활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은 1982년의 경우에는 어김없이 맞아떨어졌다.

◆ 경기부양의 정치논리
그렇다면 왜 경기부양의 요구는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일까.
이는 경기 자체가 상승기와 하강기를 반복하는 자율적인 순환사이클을 갖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재정과 금융통화라는 정책수단을 동원해 경기의 진폭을 줄이는 경기부양은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 문제는 한 나라의 경제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잠재성장률을 초과하는 수준)으로 인위적으로 경기를 자극할 경우 각종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특히 경기 하강기에는 생산 감소, 실업증가 등으로 경기부양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기 때문에 여론에 민감한 정치권은 인위적 경기부양의 카드를 꺼내드는 경우가 많다. 이중 선거는 가장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절이기 때문에 인위적 경기부양의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선거가 끝난 뒤에는 반드시 부동산투기라는 부작용이 연례행사처럼 뒤따르곤 한다. 6공화국 출범 직전인 1987~88년이 대표적이다.

당시 여야 대선후보들은 전국을 돌면서 선심성 개발공약을 남발, 이들이 지나간 곳은 어김없이 땅값이 폭등하곤 했다. 특히 당시 노태우 후보가 서울과 설악산을 잇는 동서고속전철을 건설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하자 해당지역 땅값은 평당 50만원에서 150만원으로 뛰어올랐고, 역시 노 후보의 공약이었던 서해안종합개발계획으로 평당 8000원짜리 녹지가 1만5000원으로 치솟았다.

2007년 1월 현대경제연구원이 1995~2004년 4월까지 총 8번의 전국 선거(대선, 국회의원선거, 동시지방선거 등)를 분석한 결과 1998년 2회 동시지방선거를 제외한 7번의 선거에서 선거가 열린 달의 전국 아파트 값이 6개월 전과 비교해 빠르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동안 평균 가격상승률은 약 2.8%였으며, 특히 강남은 4.05%의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는 선거를 앞두고 강력한 경기부양책이 등장하는데다 각 후보들이 득표를 위해 그린벨트 해제, 재건축규제완화, 도시재개발사업 등 각종 선심성 공약을 쏟아내 투기심리를 자극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 건설업과 경기부양
그렇다면 경기부양의 요구가 나올 때마다 건설업이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직접적으로는 건설업의 특성상 전후방산업연관효과, 고용창출효과가 매우 커 경기부양의 효과가 가장 화끈하기 때문이다. 2005년 건설산업연구원은 1조원의 건설투자가 이뤄지면 대략 2만8000명의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1조9900억원의 부가가치가 창출돼 경제성장률이 0.1%포인트 높아진다고 분석하고 있다.


건설업의 국민경제적 비중이 커짐에 따라 건설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사진은 2006년 서울 은평뉴타운 공사현장


건설업의 국민경제적 비중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경제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막대한 비중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은행, 통계청 등에 따르면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건설업의 국민경제적 비중은 2005년 9%였다. 한 나라에서 생산되는 총 부가가치 중 9% 가량이 건설업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또 2005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대비 건설투자의 비중은 19%였다.
특히 건설업의 총 부가가치 비중과 GDP 비중이 1990년대 초를 전후해 급격히 높아졌다. 부가가치 비중은 1985년 7%에서 1990년 11.3%, 1995년 11.6%까지 높아졌다가 2000년 8.3%로 다소 낮아진다. 또 GDP 비중 역시 1980년대까지 15% 안팎에 머물다가 1990년 22%로 높아진 뒤 1998년까지 20%대를 유지하다가 1999년부터 다소 낮아지고 있다.

1990년대 초를 전후해 건설업의 비중이 획기적으로 커진 것은 이 시기 분당·일산 등 5개 신도시를 포함, 주택 200만호 건설이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까지 25만호 수준에 머물던 주택건설 실적은 1989년 46만호로 늘어났다가 1990년 사상 최대인 75만호까지 폭증한다. 건설과열을 빚자 1991년 들어서는 잇달아 건설경기 진정책을 내놓아야 할 지경에까지 이른다.

이처럼 주택 200만호 사업을 계기로 건설업의 국민경제적 비중이 확고해짐에 따라 건설업의 부침에 의해 국내 경기 전체가 오르락내리락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인위적 경기부양을 위해 가장 먼저 건설업, 특히 주택부문을 자극하게 되는 구조적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토건국가적 사고방식

건설업이 경기부양의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역사적 뿌리는 1960, 70년대 개발연대의 토건국가적 사고방식일 것이다.
토건국가란 원래 우리처럼 건설업이 비대해진 일본의 정·관·건설업계의 부정적 공생관계를 분석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다. 상지대 홍성태 교수(사회학)는 “개발국가의 가장 타락한 형태가 바로 토건국가”라며 “토건국가는 토건업과 정치권이 유착하여 세금을 탕진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국가를 뜻한다”고 말했다.

홍 교수에 따르면 개발독재시대 비대해진 건설, 토건업은 자신의 국민경제적 비중이 커짐에 따라 건설, 토건업이 경착륙하면 경제가 갑작스럽게 침체에 빠진다는 논리를 앞세워 주기적으로 경기부양의 요구를 들고 나온다는 것이다. 반대로 대규모 공공사업을 일으키고 이에 투자하는 것을 전체 경제성장과 동일시함으로써 끊임없이 대규모 토목·건축사업을 부추기게 된다.

과도한 건설투자(특히 주택부문)의 문제점은 건설업의 한계자본계수(GNP 한 단위를 늘리는데 필요한 자본량)가 제조업에 비해 크기 때문에 수요 진작 효과는 크지만 생산유발효과는 크지 않은, 기본적으로 소비성 투자라는 점이다.
따라서 적정수준을 넘어선 건설투자는 경기부양이라는 반짝 효과는 크지만 장기적인 성장동력 확충에는 별 효과가 없다.


과거의 부정적 유산과 결별

2001년 한국과학기술평가원이 1970~94년까지 25년동안 투자유형별로 1조원을 투자했을 때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결과 건설경기 부양에 쓸 경우 △첫 해에 0.42%의 경제성장 효과가 나타나지만 △5년 후 첫해 대비 마이너스 0.01% △20년후 마이너스 0.16% △30년 후 마이너스 0.31% 성장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1조원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할 경우 △첫 해에 0.25%의 경제성장을 가져온 뒤 △5년 후 첫해 대비 0.06%로 성장률이 떨어지지만 △10년 후 0.24% 성장으로 높아지고 △30년 후 1.54% 성장하는 등 시간이 흐를수록 성장기여도가 높았다.

2006년 7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당시 권오규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인위적 경기부양을 요구하는 정치권의 요구에 대해 “나는 조금 생각이 다르다”고 답했다. 이 한마디는 개발독재시대의 토건국가적 사고와 손쉬운 단기 경기부양 처방, 부동산투기를 무릅쓰고서라도 경기부양에 매달리는 모험주의적 정책관행 등 부정적인 과거유산에 대한 참여정부의 결별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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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적인 규제완화로 투기가 부활할 조짐이 보이자 2002년 완연한 안정정책으로 돌아선다. 표는 재정경제부, 김종찬 저서 '황금낙하산' 109페이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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