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경제 규모에서 세계 10위이지만 과연 문화도 과연 그런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자신있게 대답하기 어렵다. 다행히 최근 세계 곳곳에서 확인되는 한류 바람은 우리의 문화 정체성에 대해 자긍심을 불어넣는 계기와 동력이 되고 있다.

또한 동시에 ‘소프트 파워’라고 할 수 있는 한류에 대한 객관적 평가작업도 요구된다. 평가작업은 세계 속 한국의 문화역량에 대한 막연한 자긍심에 안주하지 않고 우리의 문화경쟁력에 대한 객관화를 통해 향후 ‘문화강국’을 위한 초석을 놓는 일이다.

최근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이 발표한 ‘OECD 주요 국가의 문화경쟁력 분석보고서’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보고서는 문화경쟁력에 대한 연구의 목적을 “최근 한류가 촉발한 일정 정도의 문화적 자신감을 확실하게 문화적 자존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는 종합적인 ‘문화건강진단’”이라고 했다.

	▲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 故 백남준씨의 작품 중 스미소니언 박물관이 영구소장하고 있는 3작품 중 ‘US 맵(map)'과 `메가트론 매트릭스(Megatron Matrix) 두 점이 내부보수를 끝내고 지난 1일 재개관한 스미소니안 박물관 미국 미술관에 영구전시 되었다.

'문화외교정책'…미 시각에서 각국 문화 소개

◆ 미국: 2000년대 미국의 문화정책 방향은 예술과 문화가 시민의 삶, 지역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예술이 더 이상 ‘예술로서의 예술’로 받아들여지던 시대는 지났다. 연방의 각 주에서는 우선 보다 많은 사람들이 평등하게 문화예술 시설,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문화를 반영하는 프로그램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다.

문화를 창조적 산업으로 부흥시켜 지역경제 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도록 문화예술에 투자를 하고 그에 따른 수익, 일자리 창출, 세금과 같은 부가적 수익을 이뤄 세입을 증대시킬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미국 문화예술 정책의 큰 특징은 연방정부가 거대한 하나의 청사진에 의해 정책이 수립되는 것이 아니라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복잡한 관계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문화예술 분야를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2003년의 경우 미국 사적영역이 ‘예술, 문화, 인문학’ 영역에 기부한 액수는 총 122억달러로 정부의 지원금이나 문화예수기관의 공공기금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이중 개인들의 기부가 50%를 차지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특징은 미국의 ‘문화외교’ 정책과 ‘재난경영’ 프로그램이다.

문화외교 정책은 지난 2001년 9·11 테러 이후 실질적으로 중동을 겨냥하고 있다. 최근 설립된 라디오 방송 ‘라디오 사와(Radio Sawa)’는 국회로부터 지원받아 아랍 대중음악과 뉴스를 미국인의 시각에서 방송하고 있다.

재난 경영프로그램 역시 9.11테러와 허리케인 카트리나 등 국가적 재해를 겪은 후 효과적인 재난 대비 프로그램이 미국의 문화예술기관들과 예술정신을 유지하는데 있어 꼭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시작됐다.


지방정부도 문화전략 개발 의무

◆ 영국: 시대에 따라 조금씩 정책적 주안점이 달라지고는 있으나 문화예술이 국민의 문명화에 기여한다는 관점과 함께 국가 이미지 제고를 위해 문화예술을 지원하고 있다.

1947년 세계 최초로 준 독립적 예술지원기관인 대영예술진흥원이 설립됐으며 1970년대는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아트센터를 건립하는 등 지역 문화시설 확충을 통해 국민예술 향유 기회를 늘이고 문화예술교육 강화와 지역예술인 지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예술정책이 추진됐다.

경제위기를 겪고 난 후 1980년대에 와서는 문화민주주의 정책이 점차 퇴색하면서 시장논리에 기반을 둔 예술경영이 강조됐다. 이 시기의 문화정책은 관광진흥 외화획득과 같은 부가가치가 중시됐으며, 기업도 예술지원을 기업홍보전략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2003년 이후에는 영국 예술위원회(Arts Council of English)에서 문화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잉글랜드 전역에 통합된 문화전략을 개발하고 지역 발전과정에서 문화가 강력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런던 외 8개 지역에 지역문화 컨소시엄을 설치했다. 지방정부는 지방문화전략 개발을 의무화했다.


모든 시민이 문화재 향유 권리…쉬운 접근 위해 철도 등 건설

◆ 스페인: 스페인의 문화정책은 18세기부터 본격화돼 인문주의 영향 아래 한림원, 왕립도서관, 왕립극장 등 광범위한 문화기구들이 만들어졌다.

19세기 자유정권 시절에는 왕권, 교회, 귀족, 지방자치구에 귀속된 재산의 상속권을 해제하는 작업이 진행되면서 재산을 지키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과학예술지방위원회를 설립해 지방 도서관이나 고고학박물관을 지었다.

하지만 1939년부터 1975년 프랑코 정권 시기는 한마디로 문화에 대한 통제와 간섭의 시기였다. 

	▲ 금세기 가장 멋진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는 스페인 구겐하임 박물관.

1951년 창설된 정보관광부는 검열과 문화통제작업이 주업무였다. 프랑코 정부는 독재정권의 유지하기 위한 수법으로 축구, 투우, 영화, 라디오 등 대중소비를 목적으로 한 ‘도피문화’ 정책을 동원해 사회통합을 추진하는 것과 동시에 정치적 무관심을 이끌어 냈다.

이후 1977년 문화부가 창설됐고 1982년부터 1986년까지 훼손된 역사와 예술적 유산에 대한 평가와 보존 작업을 착수했다.

2004년 총선이후 사회노동당이 들어서면서 문화부 조직이 재정비됐으며 이슬람 열풍까지 되살아나고 있다. 스페인에 남아 있는 이슬람 문화는 21세기 유럽과 아프리카, 지중해와 대서양,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잇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루이스 알베르토 데 쿠엔카와 스페인 문화부 장관은 “스페인 문화는 고대의 그리스 로마 문화에서부터 게르만과 이슬람, 심지어 아메리카의 인디언 문화까지 수용해 조화롭게 발전시켰다는데 특징이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중앙정부는 시민들이 자국의 문화재에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고속도로나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 투자도 늘리고 있다. 스페인은 전체 국가 예산 중 1%를 문화재 유지비로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