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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인의 삶..피할수 없는 나의 운명" 류종철
2011년 08월 16일 (화) 15:47:41 안지승 기자 jinx1004@hanmail.net

과학의 발달은 인간의 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손쉽게 정보를 공유하고 사용하는 시대에 살게 했다. 포털 사이트에 검색만 하면 미사일도 만들 수 있다고 하니 과히 정보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아직도 풀어내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인간의 미래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무속인에게 불확실한 미래의 정보를 얻으려했다.

본기자도 오늘의 운세 앱을 다운 받아 매일 애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것이 만들어 지는 작금의 시대에 미신이라고 치부 될 수도 있는 무속인의 삶을 선택한  박수 ‘류종철’를 만나 보았다.

 

   

어떠한 계기로 무속인이 되었나?
10년 전 나이트클럽 DJ로 일할 때 처음으로 나에게 신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09년 11월 경 댄서의 오디션이 있었는데 처음 본 순간에 무속인이란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 댄서는 놀라며 맞다고 했다. 그 후로 인연이 되어 가깝게 지내던 중 함께 동반하여 어디론가 이동 하던 차안에서 갑자기 그녀가 “너에게 신이 온다”라고 말해서 깜짝 놀랐고 그 후 신에 대한 의문을 품고 무속인들을 찾아 다녔다. 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에는 거부감은 없었으나 내가 과연 신기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없어 점집 깃발만 보이면 찾아 들어갔다. 그 후에 100명이 넘는 무속인들을 찾아 다녔다. 그때 복채로만 500만원이 넘게 들었을 것이다. 제주도를 빼고 전국의 무속인을 찾아 다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무속인을 만나도 모두 짜고하는 말처럼 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17세 이후부터 신바람이 불어서 삶의 방향이 전환 되었다고 말해 주었다. 100명중에 약수동에 한 여성 무속인 만이 신내림을 만류 하였다. 내가 신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무속인의 삶이 힘겹기 때문에 피할 수 있으면 피해 가라는 이유였다.

 


신내림을 받기전에 어떤 징후가 느껴지었나? 신병란 것을 앓았나?
일반적으로 만신이 되기 전, 즉 신을 받기 전에는 신병이라는 것을 앓게 된다고 알고 있다. 나에게 별다른 신병은 없었다. 신병이란 것이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신을 받아야 할 사람이 다른 삶을 살고 있거나 무속인의 삶을 거부 했을 때 오는 것이다. 신은 자기 사람은 안 죽인다. 다만 주위의 사람을 괴롭힌다.  큰형이 어느 날 믿기 어려운 부도가 나서 하루아침에 이혼까지 하게 되었다. 가족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큰 매형이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고생을 하다 30대 초반에 젊은 나이에 돌연사 하였다. 작은 매형도 30대 초반 작업 중 손가락을 다쳐 병원에 갔더니 만성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골수 이식등 투병 생활을 하던 중 운명을 달리 하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어머니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아프다. 35년 동안 투병하시다가 재작년에 돌아 가셨다. 스승이나 선배 무속인은 “내가 아니라 어머니가 무속인의 길로 가는 게 옳았다.”라고 말했다. 생전에 어머니는 40명의 대식구를 책임져야 하는 큰며느리이셨고 당시 어머니의 상황에선 신명을 받는다는 것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러던 중 2009년 12월 31일 지방 나이트클럽에서 DJ일을 하고 있었는데 꿈에 어떤 사람이 어머니의 아픈 부분을 도려내는 꿈을 꾸고, 2010년 1월2일, 아버님을 뵈었는데 목에 혹이 발견 되었다. 전년 10월 달에 정기 검진을 받았을 때도 별 이상한 징후가 없었는데 병원을 찾으니 폐에서 시작된 암이 목으로 전이가 되었다고 했다. 병원 통원치료를 시작하고 4월엔 경과가 나빠져 입원 후 15일 지나고 돌아가셨다. 35년 동안 병상에 계시는 어머니 보다 아버님이 먼저 돌아가신 것이다. 그리고 5개월 후에 어머니도 아버님의 뒤를 따르셨다. 신을 모시고 나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조금 더 빨리 신을 받았다면 한분만이라도 살아 계시지 않을까? 싶어 많이 울었다.

 

   

어디서 누구에게 신내림 굿을 받았나?
인간사의 인연은 모두 따로 있는 것 같다. 처음에 만신에게 내림굿을 받으려 했다.
신을 받기 전에 1년 동안 그분을 찾아가 무속인의 여러 과정들에 대해 설명을 들었고 그분을 신어머니로 모시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분의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평소 친분이 있던 인천의 ‘홍성기’박수를 소개 해 주었다. 신을 내려 주는 여성 무속인의 경우 ‘신어머니’라 하고 남자 무속인인 경우 ‘신아버지’라고 한다. 홍성기 선생이 내 신아버지 인 샘이다. 인천 중구에 해월당 법당(무속인의 말로는 ‘전안’)에서 신을 모시고 있고 인격이나 지식이 남다른 분이다. 신아버지의 권유로 부천 도당 신령님에게 인사를 드린다는 의미를 두고 내림굿을 받았다. 내림굿전에 삼산을 도는데 세군데의 산을 도는 일종의 의식이다. 내림굿을 하는 신아버지의 본향 본산, 본인의 고향산, 바다의 용궁을 도는 것을 삼산이라고 한다. 삼산의식 중에 신명이 들어오는데 어머니가 오셨다. 원래 돌아가신지 1년이 안된 분은 올수 없다고 하는데 특히 하게도 어머니가 오셔서 우시더라, 전생에서 도를 닦고 신의 명패를 가지고 와야 신이 되는데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그 뒤에 증조할머니가 오셨다.
무당이라 말은 편하게 무속인을 낮추어서 부르는 말이다. 만신이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무속인은 주장이라는 신을 평생 모시지만 때때로 수많은 신이 내게 오고 가신다. 나의 주장은 친증조 할머니이다.

 


앞으로의 비전과 목표가 있다면?
무속인의 길을 선택한 건 부귀영화나 돈을 바라고 들어서진 않았다. 신을 모시고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남을 위해서 물질은 아니더라도 마음에 위안을 주며 살아야 하는 운명이란 생각도 들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전국의 무속인 50만이라고 합니다. 100명 중에 1명은 무속인인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신이라는 이유로 터부시하고 주류 문화와 사회에서 배척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미신이란 말이 제가 알기론 일제시대 때 일본인들이 우리문화를 말살하고 원할한 통치를 위한 수단으로 신사를 모시기 위해 처음으로 사용한 거라고 알고 있습니다. 미신이 아니라 전통이라고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원하던 원치 않턴 한국의 신에 대해서 배웁니다. 금도끼 은도끼의 산신령님은 저희가 모시고 있는 신령님이고 단군신화에 나오는 단군도 천신입니다. 별주부 전의 토끼간이 필요 했던 용왕님도 그렇습니다. 정확한 비유라고 하긴 그렇지만 목사님이나 스님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아직 애동이라(신을 받은지 얼마 안된 무당) 기도하고 많이 배워야 하겠지만 지금도 기도를 드릴 때 나로인해 모든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평안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문의 : 류도령 (010-3905-8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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