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선진화

LG카드 사태가 있은 지 2년여가 흐른 지난 2006년 6월 각 언론에서는 당시 긴박했던 상황과 정부의 노력을 평가했다.

2003년 참여정부가 출범과 함께 터진 LG카드 유동성 위기 사태는 일순 우리 금융시장 전반을 일촉즉발 연쇄위기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신용카드사 건전성·유동성 문제가 지속될 경우 △신용카드산업 붕괴에 따른 소비자금융 혼란 및 신불자 급증 △신용카드채 보유 금융회사의 건전성 악화 △신용카드채 편입 펀드에 대한 대규모 환매에 따른 채권시장 붕괴 등으로 금융시장 불안이 가속화 돼 결국 금융시스템 전체가 마비되는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각 언론사는 “카드 빚 스트레스로 자살 잇따라” “신용카드 빚 갚으려다 강력범죄” “카드피해로 이혼 등 가정불화” 등 제목으로 당시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카드사 유동성 위기 문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조정자 역할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해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로서는 금융시장에서의 막대한 손실보다 금융권 공동관리를 택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옳은 결정이었다.

당시 정부는 상황별 연구·분석을 통한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끈질긴 설득을 해나갔다. 구조조정 방안은 시장참가자들 스스로가 결정했다. 결국 이를 통해 LG카드 유동성 위기 사태를 수습에 성공했다. 또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감독규제를 합리적 개선하면서 금융시장 안정과 카드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발판도 마련했다.

■ 신용카드사태를 해결하라

신용카드산업이 우리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2년. 2001년 4분기에만 1조1000억원의 흑자를 달성하며 황금알을 낳는 사업으로 인식됐던 신용카드사업은 카드사간 과잉경쟁과 정부의 감독 규제, 지속된 경기침체 등이 맞물리며 2002년 4분기에는 1조6000억원의 대규모 적자 위기에 직면했다.

여기에 2003년 3월 발생한 SK글로벌의 분식회계사건은 금융위기의 기폭제가 됐다. 시장에서 우량채로 평가 받던 신용카드 채권은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는 천덕꾸러기가 됐으며, 결국 신용카드채의 발행과 유통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신용카드업계 전체가 부도 위기에 직면했다.

정부는 SK글로벌 사태 후 시장안정을 위한 조치에 적극 나섰다.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신용카드사 종합대책’(2003.3)과 ‘금융시장안정 종합대책’(2003.4)을 추진, 신용카드사의 강도 높은 자구노력 유도, 규제완화, 유동성 정상화 지원 등을 통해 전체적 위기를 한고비 넘길 수 있었다.

정부의 대책이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는지는 당시 언론보도 “4.3대책, 유동성 해갈”(머니투데이 2003.4.4.), “카드위기론 한숨 돌리나”(한국경제 2003.6.26), “카드채 문제 고비 넘겼다”(매일경제 2003.7.1) 등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시장대책이 개별 신용카드사의 경영부실 개선까지 견인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다른 카드사보다 심하게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어왔던 LG카드는 결국 유동성 위기사태를 맞았다.

채권금융기관들은 LG카드 문제를 개별회사의 경영실패에 따른 위기로 평가했지만 정부의 판단은 달랐다. 정부는 LG카드의 시장점유율이 20%에 달하고 회원이 1000만명을 넘는 등 LG카드의 부도는 금융시장 전체를 붕괴시킬 위험이 있다고 보고 다시 적극적인 조정 역할을 수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용카드사들은 구조조정, 부실채권 정리 등으로 당시의 위기를 극복, 현재 건전성과 경영실적이 크게 개선됐으며 LG카드는 완전히 정상화 된 것으로 평가된다. 신용카드사들은 2005년부터 흑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2003년 28.3%에 달하던 연체율은 2004년 18.3%, 2005년 10%에서 지난해에는 7.1%까지 하락했다.

■ 신불자 370만, 도덕적 해이 막을 개인 신용관리 제도화

‘신용불량자’는 참여정부 출범을 전후해 가장 흔히 회자되던 경제용어 중 하나였다. 국민의 정부가 외환위기로 출범 당시 어려움을 겪었다면 2003년 참여정부 출범을 전후해서는 ‘신용카드대란’과 ‘신용불량자’가 가장 큰 경제·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신불자는 단순한 가계신용 위기 등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신불자 증가는 금융회사의 입장에서 부실채권의 증가를 의미하고 결국 수익성과 자산건전성을 크게 훼손, 전체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경기부양책 등으로 소폭이나마 줄어들던 신불자 수는 경기침체 및 신용카드 관련 감독강화 조치 등에 따라 2002년 하반기부터 빠르게 증가했다. 2001년 245만명이던 신불자 수는 2002년 264만명, 2003년에는 372만명에 달했다.

참여정부는 신불자 문제가 점차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회생이 가능한 신불자에 대해 특성별 신용회복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구제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시장의 원리에 모든 것을 맡겨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부의 신불자 대책은 재정지원을 통한 단기적이고 일회적 구제가 아니라,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면서 금융기관간 협의(정부는 조정자 역할)를 바탕으로 신용회복지원대책을 마련하는 일관된 방향으로 추진됐다. 신불자에 대한 철저한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신용불량자 종합대책(2004.3)’이 마련됐으며, 소득수준이 너무 낮아 채무재조정을 신청하기 어려운 계층을 위해 ‘생계형 금융채무 불이행자 대책(2005.3)’이 추진됐다.

신불자 대책 발표 후 신불자들은 원금 탕감이 없어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했고, 정상채무자들은 신불자만 지원한다고 비판하며 차라리 신불자가 돼 채무재조정을 받겠다는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정치권 역시 원금탕감, 공적자금 조성을 통한 신용회복지원 등의 주장을 쏟아냈다. 하지만 정부는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고 자기책임 원칙에 따른 금융거래 관행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원금탕감이 없다는 원칙이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2003년 3월 295만명에서 2004년 4월 382만명까지 늘었던 신불자는 2005년 말에는 297만명으로 줄었다. 또 종합대책 후 금융기관의 신용평가결과 중시, 개인의 능력범위 내 금융거래 관행 정착 등으로 신규 신불자도 감소하는 추세다.

참여정부 들어 제도 개선 등도 지속 추진돼 선진 금융시스템에 필수적인 개인신용관련 인프라의 정비도 이뤄졌다. 개인 신용평가회사(CB) 설립을 지원하는 한편, 신불자 등록제도를 폐지(2005.4)해 금융회사의 자발적 정보 공유와 신용평가능력을 높이도록 하는 등 신용정보시장의 환경을 바꾸었다. 또 법원의 개인회생제도 도입 등 신용회복지원제도 역시 크게 개선됐다.

■ 금융선진화 통한 ‘금융허브’ 구축 목표

2003년 상반기의 금융불안은 외환위기 이후 5년 동안의 구조개혁 등 개선에도 불구, 우리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참여정부는 카드사태, 가계대출 급증 등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금융시장 안정에 힘쓰는 한편, 금융구조조정정을 지속 추진함으로서 금융시스템 선진화 노력을 강화했다. 정부의 다각적 노력에 힘입어 금융시장은 차츰 안정돼 갔으며 2005년은 금융시장이 외환위기 이후 커다란 충격 없이 안정된 모습을 보인 첫 해로 기록됐다.

그동안 ‘안정’에 급급했던 금융시장을 ‘선진화’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들이 더욱 활발해졌다. 금융산업을 경제 핵심 성장동력으로 육성해야 하며 이를 위해 ‘금융허브’를 추진해야 한다는 논의는 인수위 시절부터 시작됐다. 정부는 2003년 12월 ‘동북아 금융허브 추진전략’을 확정했지만 2005년 6월 ‘제1차 금융허브회의’ 이후 추진계획은 본격화 됐다.

당시 회의에서 추진전략을 재검토·보완했는데 그 동안의 여건변화 등을 감안, 기존 로드맵의 일정을 단축했다. 특화금융허브 구축은 2012년에서 2010년으로, 최종목표 달성 시점은 2020년에서 2015년으로 앞당기기로 했다. 이러한 방향 속에서 정부는 80개의 세부추진과제를 설정, 진행해오고 있으며 올해는 금융인프라 구축을 마무리하는 해다. 정부는 그동안 경쟁력 있는 제도적·환경적 인프라 구축을 위해 금융시스템 개혁을 진행했다.

우선 금융허브 구축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인 외환제도의 선진화를 위해 외환자유화를 가속화했다. 자본거래 허가제를 신고제로 완화(2006.1)하고, 해외에서의 원화환전을 확대(2006.4)했으며, 당초 2011년까지 완료키로 한 외환자유화 계획을 2년 앞당겨 2009년에 마무리하기로 했다. 지난해 OECD는 우리나라의 외환자유화 수준을 85%로 평가한 바 있다.

정부는 특히 자본시장관련 규제의 획기적 개편을 위해 2005년 증권·선물·자산운용·신탁 등 자본시장 관련 법률의 통합을 우선 추진키로 결정, 2006년 자본시장통합법을 입법예고했다.

또 수요자 입장에서 상시 금융규제 개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로베이스 금융규제개혁’을 추진했다. ‘제로베이스’는 규제로 볼 수 있는 모든 사항을 리스트로 작성, 규제의 필요성에 대해 원점(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 하는 제도. 1단계 제로베이스 개혁(2005.11)을 통해 101건의 개선과제를 발굴, 현재까지 46건을 완료했으며, 지난해에는 2단계 개혁을 통해 102건을 발굴,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3단계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 선진금융 인프라 구축, 성공적 평가

금융허브 추진전략은 중장기 과제로 아직 그 성과를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선진금융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는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받는다.

금융시장 규모가 지속적으로 확대 돼 홍콩, 싱가포르 등 기존 허브와의 격차가 급격히 좁혀지는 추세다.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지난 2003년 3293억달러에서 2005년 7227억달러로 증가했고 외환시장 일일거래액은 120억달러에서 223억달러로 늘었다. 시장의 규모가 커지다보니 우리 금융시장을 노크하는 외국금융회사들도 많아졌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사는 2002년 6개에서 2006년 6월 현재 12개로 두배나 늘었다. 세계 최대 독립 자산운용사인 피델리티가 신규로 진출(2004.10)한 데 이어 △프루덴샬 자산운용부문 아시아 지역본부 설치(2006.1) △다비하나인프라 자산운용(2006.7) △골드만삭사의 외은지점 신규 진출(2006.6) 등 외국금융회사들의 국내진출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우리 정부의 금융허브정책 방향과 실현가능성 등에 대한 외국기관들의 시각 역시 긍정적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은행(FRB) 의장은 지난해 4월 열린 ‘FT 아시아 금융센터 회의’에서 “한국은 실물경제 기반과 잠재력이 큰 주식시장, 선물, 옵션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보유하고 있어 자체시장이 없는 홍콩, 싱가포르보다 금융허브가 되기에 훨씬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영국의 유력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한국은 최근 자산증대와 규제완화로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지역으로 부상했다”(2006.5.1)고 보도했으며,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이 금융허브를 추진함에 있어 최우선 과제로서 자본시장통합법, 외환자유화, 금융규제 완화 등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올바른 방향”(2006.6.8)이라고 평가했다.

■ 국제경쟁력 강화 등 과제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노력 등을 통해 우리 금융시장은 질적·양적으로 성장했지만 국제경쟁력과 효율성 측면에서 볼 때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특히 금융시장의 국제화 측면에서는 미흡하다는 평가다. 채권시장에 대한 외국인 참여는 전체 채권발행액의 0.6% 수준으로 낮고, 외국기업의 국내 상장 실적도 전혀 없다. 또 높은 교육수준에도 불구, 금융전문인력은 국제적 수준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다.

외국자본의 국내진입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정립하는 부분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미국계 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된 이른바 ‘먹튀(먹고튀기)’ 논란은 외국자본유치 논란을 불러왔고, 국민들의 외국자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졌다. 물론 일부 외국자본 자체에 문제가 있는 사례도 있지만 외국자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금융허브 구축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재정경제부 임승태 금융정책국장은 “금융허브로 도약하기 위해 외국자본의 긍정적 측면은 공정하게 평가돼야 한다”며 “정부는 관련 법령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등 금융시장 관리·감독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임 국장은 또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인 부실금융기관 정리, 시장규율정립 등으로 우리의 금융시장은 이제 어느정도의 위기상황에는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고 평가하며 “정부는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을 통해 개방화·국제화 속에서 금융산업을 핵심성장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한 정책들을 차질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