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나무꾼이 있었다. 어느 날 깊은 산 속으로 나무를 하러 갔다 큰 호랑이를 만났다. ‘어이쿠, 이젠 죽었구나. 나는 죽어도 괜찮지만 이제 늙으신 어머니 혼자 어떻게 살아가시나.’ 이렇게 마음속으로 외치던 나무꾼은 그 순간 문득 꾀를 하나 생각해 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호랑이라도 한 번 속여보고 죽자는 배짱이 생겼던 것이다. “아니, 호랑이 형님이 아니십니까?” 나무꾼은 호랑이 앞에 넙죽 엎드려 절을 올렸다. “뭐? 나보고 형님이라고? 흥, 오래 살다 별 일 다보겠네. 난 너 같은 사람을 아우로 둔 적 없다.” 호랑이가 사람처럼 말을 할 줄 알았다. 그 순간 나무꾼은 재빨리 머리를 돌렸다.

“형님이 사람 말을 할 줄 아는 것은 바로 태어날 때 원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그러시는데, 내가 태어나기 전에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여기 이 산속에서 호랑이를 만나 혼절했답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니 호랑이가 아들을 물고 어디론가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형님은 원래 사람인데 호랑이가 기르는 바람에 호랑이 형상이 된 것입니다. 어머니 말씀이 사실이라면 나의 형님이 맞습니다.” 나무꾼의 말을 듣고 나서 호랑이는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나무꾼의 말이 맞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호랑이는 어미 호랑이로부터 “너는 주워온 자식이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먹이 사냥을 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어미 호랑이는 더욱 그 말을 강조하며, 혼자 당당하게 살아가길 바란다는 말을 남긴 채 죽었다. 그때부터 혼자가 된 호랑이는 너무 외로워 가끔 사람이 사는 마을까지 내려갔다 돌아온 적도 많았다. 이상하게도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이 녀석 말이 맞을지도 몰라. 내가 어려서 사람이었기 때문에 커서 호랑이의 형상으로 변한 후에도 사람이 그리워지는 모양이구나.’ 호랑이는 어린 아들을 잃고 한이 맺혀 살아오신 어머니를 생각하자 가슴이 미어지는 듯하였다. “여보게 아우! 어머니는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 어린 아들을 산속에서 잃고 얼마나 애를 태우셨을까?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이 산속에서 편하게 지내고 있었다네. 이제라도 내가 어머니를 도울 방법은 없을까?” 호랑이는 아주 진지하게 말하였다. 나무꾼은 이때다 싶어 재빨리 꾀 하나를 생각해내어 말했다.

“아이고, 형님! 어머니가 불쌍합니다. 요즘 노환이 드셔서 방안에만 누워 계신데, 사슴뿔이 좋다는 데도 그것 하나 구해다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 재주에 사슴을 잡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요.” “음, 어머니 병환에 사슴뿔이 좋다고 하더냐? 그렇다면 염려 말거라. 내가 보름에 한 번씩 사슴을 잡아다 주겠다.” 호랑이는 말을 마치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숲 속으로 사라졌다.

그 다음부터 보름이면 나무꾼이 사는 집 앞마당에 사슴 한 마리가 놓여 있곤 하였다. 호랑이가 사냥을 해서 물어다 놓은 것이다. 나무꾼은 뜻하지 않은 횡재를 하였다. 사슴 고기를 익혀 어머니와 배불리 먹고, 또한 녹용과 가죽을 장에 내다 팔아 돈도 많이 벌게 되었다. 그 후에도 호랑이는 약속대로 보름에 한 번씩 사슴을 잡아다 나무꾼이 사는 집 앞마당에 던져놓고 사라졌다. 나무꾼은 이제 나무를 하지 않고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을 잘 살았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났다. 나무꾼은 어머니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그런데 그 후부터 호랑이는 나무꾼에게 사슴을 잡아다 주지 않았다. 호랑이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아는 모양이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나무꾼은 다시 먹고 살기 위해 나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게를 지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는데, 숲 속에서 호랑이 새끼 두 마리가 꼬리에 흰 헝겊은 매단 채 슬피 울고 있었다. “얘들아! 너희들은 왜 울고 있니? 배가 고픈 모양이로구나?” 나무꾼이 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살아계실 때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우리 할머니가 사람인데, 그래서 보름에 한 번씩 사슴을 잡아다 할머니께 갖다 드렸대요. 그런데 얼마 전 그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너무 슬픈 나머지 며칠 동안 굴 속에 들어앉아 ‘어머니!’를
외치며 슬피 우셨어요. 그러다가 며칠 전에는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고 마셨어요. 그래서 우리는 지금 아버지를 조상하느라 꼬리에 흰 헝겊을 매달고 슬피 우는 거랍니다.”

나무꾼은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혹시 그 호랑이가 진짜 자신의 형님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얘들아! 나는 너희들의 삼촌이란다. 우리 집에 가서 같이 살도록 하자.” 나무꾼은 호랑이 새끼 두 마리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친조카처럼 호랑이 새끼들을 열심히 키웠다. ‘설마 호랑이 새끼가 친조카일 리 있겠는가?’ 가끔 그런 생각이 들긴 하였지만, 나무꾼은 호랑이가 효성스럽게 사슴을 잡아다 자신의 어머니에게 바친 것을 생각하며 그 새끼들을 아주 정성을 다해 키웠다. 호랑이의 은혜에 대한 보답이었다.

-짐승들도 효도를 할 줄 아는데 사람이야 두 말할 필요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효도’라는 말은 아는데,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앎’이란 진정한 의미에서 ‘알지 못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효도’는 행동으로 표현될 때에만 진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좋은 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