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시냇물에 하얀 왜가리의 모습이 한가롭다. 시선을 정하지 않고 바라보는 눈길에 여유가 넘친다. 날개를 펴보기도 하고, 겅중겅중 뛰기도 한다. 구속하는 형식은 없다. 하고 싶은 대로 자유를 즐기고 있다. 바람 부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기도 하고, 내키는 대로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휴식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마음을 잡는다.

  왜가리는 여름 철새다. 그렇다면 당연 이 곳 삼천천(전북 전주시 소재)에 있어서는 안 된다. 지금의 3월 4일이니 따뜻한 지방에서 보내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제는 아주 눌러 앉은 모양이다. 때가 되어도 날아가지 않고 한 곳에 머물고 있으니, 텃세가 되어버린 모양이다. 그만큼 살기가 좋아진 모양이다.

  삼천천은 도심의 한 가운데를 뚫고 흘러가고 있다. 시내의 양 옆에는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공원이다. 운동을 하면서 삶의 여유를 찾는 사람들의 모습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시냇물 한 가운데에서 사람들의 시선일랑은 아예 상관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우뚝할 수가 없다.

  왜가리가 휴식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것의 기능을 생각하게 된다. 왜가리의 행동에는 우선 질서가 없다. 다시 말하면 의미의 단절이다.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게 된다면 거기에는 분명 일목요연한 순서가 존재한다. 목적 달성을 위하여 그 곳을 향해 집중되어 있는 것이 일이다. 이런 연결성이 集積 되어 있을수록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왜가리의 자태에서는 그 것을 찾을 수가 없다.

  왜가리의 행동에서 그런 의미를 찾아낼 수 있었다면 느낌은 분명 달랐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일관성도 없고 행동마다 단절됨으로서 휴식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새들도 이런 여유를 통해 새로운 힘을 축적하고 있다. 긴장된 근육을 이완을 통해서 삶의 활력을 되찾고 있었다.

  왜가리의 휴식이 우뚝한 것은 그 동안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부지런히 모든 일을 다 완수하였기에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만약에 근면하게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다면 느긋하게 휴식을 즐길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을 남겨두고서 한가하게 놀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휴식은 과거에 대한 포상이고 내일을 위한 준비다. 지난 일을 마무리하였기에 가질 수 있는 자격을 가지게 된 것이고, 질 높은 휴식을 통해 새로운 창조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접근하게 되면 휴식의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휴식은 장식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다.

  돌아다본다. 휴식을 즐길 수 있었는지 생각해본다. 긍정적인 대답을 하기가 힘들다. 질적으로 우수한 휴식을 보내본 기억이 별로 없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보통이었고, 소일거리를 찾지 못해서 빈둥거린 기억이 앞선다. 휴식은 부지런히 일한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니, 권리를 찾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지천명의 나이를 넘어서 이순을 향해 달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바빠지고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빨라지고 있는 세월의 속도를 늦추고 싶어진다. 그러나 마음이 조급해지면 질수록 현실은 정 반대다. 휙휙 지나가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하다.

  나이 따라 시간의 속도가 빨라진다고 한다. 그런 소리가 우스개 소리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얼굴에 주름살이 늘어가게 되니, 그 것을 온몸으로 체감하게 된다. 생각으로는 감지할 수 있던 속도감을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피부로 감지할 수 있게 된다. 어찌 그렇게 빨리 가는지 야속하기만 하다.

  눈 뜨면 하루가 시작하고 돌아서면 하루가 지나가버렸다. 월요일인가 하면 어느 사이에 토요일이 되어 있다.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달이 금방 가버리고 일년이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다. 잡으려고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세월은 놀리기라도 하듯이 성큼성큼 저만큼 앞서 가 있다.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안타까움이 커지는데 휴식을 즐길 여유가 있을 리가 없다. 더군다나 그렇게 살아왔다. 보릿고개를 넘으면서 절박한 것은 먹고 살아남는 일이었다. 호구지책을 강구하는 일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으니, 휴식은 내일이 아니었다. 그 것은 먼 다른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하루 세끼를 걱정하지 않게 된다면 그 것이 천국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달렸다. 잘살기 위하여 몸부림을 치며 온몸으로 뛰고 또 뛰었다. 그래도 불만은 없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현실이 그러하였으니, 받아들이고 수용하였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보니, 낯설어진 것이다. 내가 아닌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고 당혹스러워진 것이다.

  무엇을 위하여 달려왔을까? 누구를 위하여 그렇게 안간힘을 썼을까? 휴식 같은 것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고 진력한 결과가 이런 것이라니, 허탈하였다. 마음이 공허해지니, 온 몸에서 힘을 빠졌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소심해져버린 내 모습이 싫다. 자신감을 상실하고 당당해질 수 없는 내 자신이 정말 미워진다.

  시냇물 한 가운데에서 휴식을 만끽하고 있는 왜가리의 모습이 그렇게 눈부실 수가 없다. 소심해진 마음을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당당하게 휴식을 즐길 수 있는 태도를 가져야 하겠다. 한정된 인생의 길에서 나에게 주어진 권리를 포기하는 일은 분명 어리석은 일이다. 그동안 정말 열심히 뛰어왔으니, 이제는 휴식을 즐겨도 될 때이다.<春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