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타결된 지 이제 보름이 지났다. 정부는 그 협상결과를 토대로 피해가 예상되는 국내 산업에 대한 지원대책과 경쟁력 강화 방안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타결 다음날 발표된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따른 국내 보완대책’, 그리고 이를 토대로 12일 국회에 보고된 내용을 두고 일부 언론에서 ‘알맹이 없는 FTA대책’, ‘앵무새 발표’,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비판하고 있다.
지난 3일 발표한 보완대책 추진방향은 정밀화를 그리기 위한 ‘데생’ 단계와 같은 것이다. 정부는 이 ‘데생’에 제대로 된 색을 입히기 위해 피해산업에 대한 영향분석을 진행 중이며 이를 토대로 구체적인 피해대책과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이 같은 로드맵은 이미 3일 밝힌 바 있다. 한미FTA를 폄하하고 흠집 내기에 몰두하고 있는 일부 언론은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선동식 보도를 하고 있다.
4월 영향분석→5월 크로스체킹→6월 대책안 확정
정부의 ‘보완대책 마련 로드맵’은 다음과 같다. 정부는 농·수산업, 제조업,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이달 말까지 한미FTA 체결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피해에 대해 영향분석을 완료키로 했다.
영향분석에는 한국개발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노동연구원, 농촌경제연구원 등 10개 국책연구기관이 참여해 그 결과를 토대로 부문별 피해규모를 추정한다는 방침이다.
이들 연구기관들은 각 부문별 영향분석을 놓고 서로 크로스체킹(이중 점검)하고 시나리오별로 피해규모를 산출하는 방식으로 정밀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예를 들어 명태 등 수산업에 대한 영향을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동시에 분석해 서로 비교 수정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이뤄진 피해규모 추정결과를 토대로 6월 초 각 부처별로 피해보전 방안(폐업지원방안 포함)을 마련하고 6월 말에 경제정책조정회의를 거쳐 정부 대책안을 확정하게 된다.
일부 언론 또 다시 ‘주먹구구식 대책’ 종용하나
이 로드맵대로라면 그림이 완성되는 시기는 6월 말이다. 이 이전에 구체적 대책을 내놓으라는 것은 피해규모에 대한 정확한 산출이 뒷받침되지 않은 ‘주먹구구’식 대책을 종용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과거 이 같은 ‘주먹구구’식 대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알고 있다. 한·칠레 FTA 체결 당시 정부 용역으로는 향후 10년간 발생되는 농업부문의 피해가 5860억원이었지만 과수 농가와 정치권의 요구로 세 차례나 추가 대책이 발표되면서 FTA 이행지원기금만 1조2000억원으로 불어났다. 그러나 칠레산 포도·복숭아·키위가 밀려와 소득이 80% 이상 감소한 농가에 대해 지급할 계획이었던 소득보전 보조금은 이들 과일의 시장 수요 증가로 가격이 올라 지급한 사례가 한 건도 나오지 않았다.
또 폐과수원 지원 보조금은 1만1000여 농가에 지급됐지만 현재는 검역문제로 수입되지 않는 복숭아 과수원을 폐업하는 농가(9000여 농가)에 주로 투입됐고 가장 큰 피해가 우려됐던 포도(시설포도)는 오히려 재배면적이 한·칠레FTA 발효전인 2003년보다 늘어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한미FTA와 관련해서도 예상되는 피해규모는 주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농민단체에서는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면 한우 가격이 절반 아래로 떨어져 사실상 한우 농가가 다 망한다고 하지만, 농림부는 한꺼번에 개방되는 것도 아니고 한우의 경쟁력도 있어 10% 정도 가격 하락이 예상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제약업계에서는 오리지널약의 특허기간 연장으로 제네릭약(카피약)의 출시가 늦어지면 5년간 최대 12조원에 이르는 피해가 발생한다고 주장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5000억원 선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장 피해보상대책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과거의 전철을 그대로 밟으라는 주장과 다를 것이 없다. 또 피해규모 산출 근거가 불확실하면 국회나 이해단체의 반발로 그 규모가 또다시 부풀려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철저히 따져봐야 국민혈세 낭비 막는다
전문가들은 직접 보상과 경쟁력 강화 방안 모두 필요하지만 농업 등 분야에 대한 직접 보상은 사회적인 형평성을 위해 철저한 근거에 의해 보상수준을 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또 한미FTA를 반대하는 일부 언론은 협상개시 전 피해산업에 대해 충분한 연구가 없었고 피해대책 마련에 뒷짐을 지고 있었다고 호도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이미 지난해 4월부터 피해대책을 수립하고 있었다.
다만 피해규모를 정확히 산출하기 위해서는 협상결과가 최종적으로 나와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이처럼 후속작업을 하는 것이다. 피해산업에 대한 적정한 보상은 중요하다. 그러나 피해규모가 부풀려지고 그에 따라 혈세가 낭비된다면 그 피해는 전국민이 입게 되는데, 이를 종용하는 것이 합당한지 되새겨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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